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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도와드립니다

푸딩

    *트리거 워닝; 본 편에는 다소 폭력적인 묘사가 포함돼 있습니다.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지명은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중국에서는 호적도, 국적도 없는 이들을 흑해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버젓이 이곳에 있으나 태어나지도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란다. 아무렴 가난한 부모에게서 버려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유사 인간 행세나 하고 다니는 나 같은 놈들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이미 개처럼 길바닥을 전전하는 건 익숙하다. 거무튀튀한 곰팡이가 쌓인 그곳에서 유일하게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건, 갓 뒈진 동물의 거죽 안밖에 없으니.

 

 

 

 

​

​

 

​

 

 

    나는 이름이 없다. 모두가 태어나자마자 자연스레 얻는다고들 하던 그것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에서 이름이 없는 이는 내가 유일했다. 엄마, 아빠, 심지어 내 두 살 위의 형도 버젓이 가지고 있었으니까. 나는 여섯 살이 될 동안 집 안에 숨어 있어야 했고 행여 운 좋게 외출하는 일이 있어도 형의 이름을 써야 했다. 아빠가 형과 나를 구분하기 어렵다며 구두로 지어 준 이름은 형의 이름과 다르게 밖에서 절대 쓰지 말아야 했다.

    딱 한 번, 형이 실수로 내 이름을 부른 날부터는 아예 집 안에서조차 나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게 금지됐다. 졸지에 이름을 뺏긴 처지가 된 나는 울면서 물었다. 왜 나만 이름이 없냐고. 그 물음에 생선 냄새를 지독하게 풍기던 여자는 아무 표정 없이 이야기했다. 단지 내가, 형보다 늦게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죽은 생선을 팔던 우리집은 가난했다. 하루 치 수입은 고작 한 명이 변변찮게 살고 먹기도 어려울 정도로 쥐꼬리만 했지만 엄마와 아빠는 학교에 다니는 형을 끔찍이 아끼고 대했다. 그들의 정성은 어린 내가 학교에 갈 날만 기다리게 만들 정도로 지극했다. 나는 불꽃이 하늘을 꽃피우는 새해가 얼른 찾아오기를 누구보다 기다렸다. 하루하루 잠에 들 때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숫자를 세고 또 세며 생각했다. 해가 지나면 나도 학교에 갈 나이가 되고, 그렇게 되면 나도 이름이 생길 거라고.

    그러나 꿈보다 크게 가진 기대는 꼭 꺾이는 법이라고 했던가. 해가 바뀌고 내가 발은 디딘 곳은, 학교가 아닌 차가운 길바닥이었다.

 

    그날 엄마와 아빠는 오랜만에 형이 아닌 나를 데리고 길에 나섰다. 뒤이어 도착한 장소는 처음 보는 곳이었다. 철골끼리 부딪치는 소리와 여자들의 귀곡성 사이로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희뿌연 담배 연기가 퀴퀴하게 퍼지는 그곳은 말 그대로 살풍경에 가까웠다. 성채 입구서부터 겁을 잔뜩 집어먹은 나를 부모가 데려간 곳은 사창굴이었다. 홍등이 즐비한 그곳은 아무렴 일전에 엄마가 아빠에게 아는 이가 있다고 했던 그 가게인 것 같았다.

    얼마 안 가 가게 안에서 나온 사람은 몸 전체에 코를 찌르는 냄새를 두른 남자였다. 엄마는 내 손을 그대로 남자의 손에 쥐여주는 대신 무언가를 건네받고는 아빠와 함께 말없이 등을 돌렸다. 허무하지만 부모라는 이들과의 연은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얄팍한 인연이라는 실의 마무리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절절한 이야기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많지 않은 일곱이라는 나이에, 부모에게서 버려졌다.

 

    그 후 언제, 어떻게 그 가게에서 도망쳐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곳에서 길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는 점과 사창가 안에는 아편으로 절여진 사람이 아주 많았다는 것만은 또렷이 기억한다. 그 안의 누나들은 종종 담배 심부름을 가던 나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우울한 말들을 쏟아내곤 했다. 바로 다음 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똑같은 곰방대를 문 채 고객들에게 아양을 떨어댔지만.

    그들은 대개 자신을 데리고 도망쳐 달라는 말과, 차라리 자신을 죽여 달라는 말 혹은 누군가를 죽일 거라는 말, 모를 이의 이름을 부르며 사무치게 그립다는 말 등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노래했다. 눈에 칠했던 붉은 화장이 광대까지 내려온 한 누나는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나를 붙잡고는 이렇게 말했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 있지 않아 그곳을 도망쳐 나왔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마냥 되는 건, 죽는대도 싫었으니까.

 

​

 

    빚 갚아야지, 좆만아.

 

    이 개같은 곳에 굴러먹은 것도 벌써 십삽 년째인데, 별 좆같은 꼴을 다 본다. 방금 전까지 제가 엉덩이를 붙이고 있던 바닥에 침을 탁 뱉은 우영이 인상을 썼다.

 

    “내가 뭔 빚을 갚아. 돈 없어서 쫄쫄 굶고 있는데.”

    “빌린 건 꼬박꼬박 갚아야 된다, 뭐 그런 말 안 배웠어?”

    “학교 나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그러는 아저씨는 뭔 근거로 나한테 돈을 내놓으래?”

 

    종종 있다. 이런 식으로 벼룩의 간을 털어먹는 부류가. 윗대가리들 믿고 찔러 보다가 안 되면 마는, 그런 하잘것없는 양아치들 말이다. 몸을 뉘던 골목 앞 가게 주인의 등쌀에 못 이겨 잠자리를 옮긴 게 엊그제인데 벌써 이런 시비에 털리다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전에 자던 골목이 딱 좋았는데. 우영은 지지리도 없는 자신의 재수를 탓하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을 얹었다. 딱 보면 몰라요? 나 쥐뿔도 없는 거.

    아무래도 오늘은 재수뿐 아닌 팔자가 악독한 날인가 보다. 우영에게 날아온 건 조롱이 아닌 묵직한 주먹이었다. 어제 잠자리가 사나웠나. 아니면 그냥 여느 때보다 좀 더 박복한 날인 걸까. 그는 저를 둘러싼 덩치들 사이에 고꾸라져 몸을 잔뜩 웅크리면서도 생각했다. 씨팔, 빵 좀 작작 훔칠걸.

 

    “이제 갚을 생각이 좀 드냐? 꼬맹아.”

    “네 눈에는 내가 낼 돈이나 있어 보이냐?”

​

    멍청한 질문에 헛웃음을 뱉은 우영이 중얼거렸다. 진짜 돈을 뜯어내려 작정하고 온 것 같긴 한데, 이렇게 해서는 털어먹기도 전에 필시 목숨이 먼저 끊어지고 말 것이라고. 그는 제 위로 쏟아지는 매서운 몰매질을 견디며 자꾸만 어룽어룽 빠져나가려는 정신을 부여잡으려 애썼다. 여기서 이딴 새끼들한테 맞아 뒈질 순 없다, 억울해서 절대 못 죽는다ㅡ, 따위의 오기를 되새김하면서.

 

    “허……. 별 미친 새끼를 다 보겠네. 야, 옮겨.”

​

    장정 둘의 등쌀에 졸지에 일으켜진 우영은 어딘지 모를 골목을 지나 한 사무실까지 이끌려왔다. 거의 반쯤 끌리다시피 온 탓에 거친 바닥에 마찰된 발등이 화끈거렸으나 그는 오직 자존심 하나로 입술 하나 씨근거리지 않고 그곳에 도착했다. 우영은 발길질에 내쳐진 몸뚱어리를 바닥에 납작 늘어뜨리면서도 생각했다. 차라리 제대로 맞는 곳이 그 쿡쿡 쑤시는 골목길이 아닌, 매끈하고 차가운 바닥이라 다행이라고.

 

    “좀 와 주셔야겠는데요. 애새끼가 여간 질긴 게 아닙니다. 일단 사무실로 옮겼는데, 예, 예……. 죄송합니다.”

​

    하도 맞아 먹먹한 귀에 통화 소리가 맺힌 지 얼마,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낸 건 줄곧 우영을 괴롭히던 덩치들에 비해 비교적 얄쌍한 체형을 가진 한 남자였다. 남자가 들어서자마자 매질을 뚝 멈추고 묵례를 하는 것으로 보아 아무렴 높은 자리에 앉은 이인 듯했다. 자신이 딛고 있는 대리석 바닥과 같은 무늬의 베스트를 입은 남자는 당연하나 우영이 아는 얼굴은 아니었다. 얄쌍하고 매섭게 올라간 눈, 마치 스크래치같이 왼 눈썹에 세로로 난 상처, 보기 좋게 뻗은 코. 모로 보나 한 번쯤 스쳤다면 잊어버릴 수 없는 안면이었다.

 

    “그쪽이 대가리인가 봐. 난 영 본 적 없는 얼굴인데, 내가 그쪽한테 뭔 빚이 있어서 갚으래. 누구랑 착각하고 이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잘못 봐도 단단히 잘못 봤어요, 형씨. 아파 뒈지겠네, 씨발…….”

 

    퉤ㅡ, 돌바닥에 납작 뱉어낸 타액이 불긋한 혈흔과 섞여 기분 나쁜 색을 낸다. 끙, 소리를 내며 기신기신 몸을 일으켜 앉은 우영이 짜증스러운 기색과 함께 말을 덧붙였다. 가만히 있던 사람 찾아와서 빌리지도 않은 돈 내놓으라고 지랄하질 않나, 없다니까 죽기 직전까지 패질 않나……. 요새 깡패 새끼들은 다 이래요? 종일 맞느라 쑤시는 무릎을 붙잡고 마저 일어선 그가 치미는 욕지거리를 억누르며 먼지로 엉망인 바지를 털어냈다.

 

    “어차피 배상금 내놓으라 한들 귓등으로도 안 들을 거고, 뭐, 이딴 마굴에서 청구할 구멍도 없고…….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할 테니까 이제 그만 보내 줘요.”

    “정백안.”

    “…….”

    “아는 이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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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제 아비의 이름에 우영의 표정이 굳어 든 건 순식간이었다.

​

    “보내,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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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뒤에 사람 하나가 갈 텐데, 도망칠 생각은 마. 요새 깡패 새끼들은 똑똑해서 금방 찾으니까. 이죽이는 얼굴이 저렇게나 재수 없을 수 있을까. 우영은 그만 생각을 멈추고는 입술을 감쳐물었다. 터진 입안에서 기분 나쁜 비린 맛이 난다.

 

    “이거, 명함. 혹시 먼저 찾아올 생각이 있으면 여기로 와.”

    “…….”

    “일할 곳 없어도 연락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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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세 코앞까지 온 남자가 건넨 건 아이보리색의 명함이었다. 형압으로 움푹 팬 문구는 우영 그 또한 익히 아는 업종이 즐겨 쓰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도와드립니다, 라니. 웃기고 자빠졌네.

 

    “별 같잖은ㅡ,”

    “보내라니까.”

    “아직 말 안 끝났어,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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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어라 쏘아붙이려던 그는 그러나 그럴 새도 없이 덩치들로 인해 보기 좋게 사무실 밖으로 쫓겨난 꼴이 되었다. 분에 겨워 한참이고 씨팔, 좆팔 찾으며 단단히 잠긴 문에다 화풀이하던 우영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하릴없이 손에 든 명함을 들여다봤다. 거칠거칠한 종이 가운데에는 방금 전 보았던 흥신소에서 쓸 법한 문장이 박혀 있었고, 그 바로 밑으로는 이름으로 보이는 음각이 새겨져 있었다. 崔傘. 아마 방금 마주친 남자의 것이리라. 응당 우산은커녕 칼이나 쑤시고 다닐 법한 놈과 어울리는 이름은 아니었다.

    딱 봐도 값이 나가 보이는 옷을 걸치고 저를 향해 샐그러지게 웃던 남자의 표정을 회상하며 힘껏 크래프트지를 구긴 우영이 저를 내친 낡은 철문 위로 입안에 고인 타액을 뱉으며 결심했다. 저 새끼를 꼭, 죽이고 말겠노라고.

 

​

​

    “혹시나 해서 확인해 보니까 청소가 덜 됐더라고요. 요새 경찰이 움직이기 시작한 건 아시죠. 이러다 덜미 잡히기 십상인 것도 아실 테고. 다음 건부터는ㅡ,”

    “야.”

    “…… 나중에 다시 통화합시다.”

    “네가 최산이냐?”

    “돈 낼 구멍은 좀 생겼어?”

​

    달칵ㅡ, 퍽 경쾌한 소리와 함께 휴대전화를 닫은 산이 우영의 부름에 응하듯 반문했다. 돌아본 그는 어제처럼 정신 나간 패턴의 옷을 입고 있었다. 보라색 실크 셔츠 위에 어지럽게 수놓인 짐승의 무늬는 근사해 보이긴커녕 아무렴 굴욕적인 어제를 떠올리게 했다. 구겨진 명함을 꺼내 바닥에 패대기친 우영이 산을 향해 눈을 치떴다. 저 새끼만 죽이면 억울하게 진 빚을 갚을 필요가 없다. 크게 침을 삼킨 것을 시발점으로 등 뒤에 숨겼던 칼을 꺼낸 우영이 제 앞의 남자를 향해 매섭게 달려들기 시작한 건 순식간이었다.

 

    “죽어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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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이 없는 건지, 이건 무모한 정도를 넘어섰다. 제 앞코를 툭 두드리고는 맥없이 바닥을 나뒹구는 명함을 보던 산이 길쭉한 다리를 들어 제게 득달같이 덤비는 우영의 배를 걷어찼다. 커헉, 볼품없는 소리를 내며 나가떨어지는 앳된 얼굴에는 정말이지 아무 계획이 없어 보인다. 저러다 금방 뒈지지. 중얼이며 저를 향해 걸어오는 산에, 요란하게 기침을 하던 우영이 냅다 일어나 도로 달려들었다.

    무의미한 시도를 반복하면서도 우영은 끝을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열 번 죽으라는 말을 입에 달고 덤볐다가 산에 의해 나동그라졌고, 열한 번 일어나 또다시 그를 찌르려 들었다. 승산 없는 싸움에 목숨 거는 그가 산은 진심으로 걱정되었지만서도 한편으로는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래저래 원한 산 일은 많았으나 이렇게 쥐뿔도 없는 놈이 담그겠다며 찾아온 건 또 처음이었으니까.

 

    챙ㅡ, 발에 챈 칼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빠르게 바닥을 구르다 이내 소파 밑단에 단단히 박혔다. 가벼이 숨을 내쉰 산이 자세를 낮춰 쭈그리고는 손에 든 것도 없는 주제에 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우영의 볼을 꽉 쥐었다.

​

    “아무렴 금방 죽기에는 아까운 얼굴인데.”

    “좆까, 사기꾼아.”

 

    우영은 볼을 잡힌 와중에도 산을 향해 온갖 욕을 뱉어댔다. 잔뜩 살이 밀려 우물거리면서도 저주의 말을 퍼붓는 데에 여념 없는 당돌함이 참으로 우스꽝스러웠다. 형형히 빛나는 눈과 맞댄 채 잠자코 그 욕설들을 듣던 산이 이내 그를 접대용 테이블의 상석으로 안내했다. 말이 안내지, 죽으라고 소리치는 우영의 목덜미를 끌어올려 억지로 앉힌 거나 다름이 없었지만.

 

    “얘기 좀 하자.”

    “아가리 놀릴 시간에 혀 깨물고 뒈지기나 해.”

    “정백안 그 남자가 대책 없이 들고 튄 돈만 해도 천이 넘어.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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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석 자를 듣자마자 곧장 입을 다물어 버리는 우영에 산은 생각했다. 정말이지, 알기 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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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개월 전에 찾아왔더라고, 돈 좀 빌려달라고. 건물 하나 담보로 잡고 내줬더니 글쎄, 여태 감감무소식이네. 기다리다 기다리다 가 봤더니 이 사람이 거짓말을 쳤더라. 하긴, 도박꾼에 아편 중독자가 대체 무슨 돈이 있어서 건물을 잡고 있었겠어. 거죽을 벗겨 유통하자니 빌려간 작자는 이미 비쩍 곯아서 돈도 안 돼, 자식이라는 새끼는 열다섯에 진즉 요절해 저세상에 가 있어.”

    “…….”

    “그럼 내 돈은? 누가 갚을까.”

​

    금세 표정을 지운 산의 눈은 말 그대로 서늘함을 담고 있었다. 고갤 숙인 채 여즉 입을 닫고 있는 우영을 지나쳐 그가 앉은 소파 맡에 쭈그린 산이 날이 단단히 박힌 칼을 단번에 뽑아내었다. 이걸로는 맞아도 안 죽어. 감염돼서 죽는 거면 모를까. 중얼거림과 함께 도로 몸을 일으킨 산이 우영을 향해 난감하다는 듯 눈을 접어 웃어 보였다.

 

    “지금 당신 몸 어딘가에 이거 쑤셔 넣어도 그쪽은 할 말 없어.”

    “…… 그래서.”

    “그러니까, 나랑 일하자고.”

 

    아까는 생판 여우인 줄 알았더니, 잘 보니 뱀이 따로 없다. 형편없이 표정을 구기는 우영에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샐쭉 입꼬리를 올리는 얄미운 모습이, 거기에다 보기 좋게 눈꼬리를 휜 모양새가 아무렴 먹이로 둔 쥐의 몸을 휘감고 잡아먹을 궁리를 하는 뱀에 가까웠다. 개새끼……. 아무리 봐도 을의 위치였다. 하릴없이 들끓는 욕설을 억지로 안으로 집어넣은 우영이 이를 악물었다.

 

 

 

    잘 생각해 봐.

​

    생각해 보긴 개뿔이. 당장 먹고 죽으래도 없을 돈을 구하러 다니는 건 미친 짓이다. 그렇게 사무실에서 떠밀려 나온 우영은 혹여나 하는 마음에 구석탱이에 있는 인력 사무소에 서성거려 보았으나 얼마 안 가 그마저도 관두었다. 수중에 아무것도 없는 그가 지금부터 일해 돈을 갚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천지에 아는 이 없는 박복한 팔자에 큰돈을 빌릴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겨우 젖을 뗀 나이에 우영을 이 길바닥으로 몰아세운 거로도 모자라서 이제 와 자신들의 돈을 갚으라며 등 떠민 게 바로 그의 부모가 아닌가.

    애초에 고민할 만한 것도 없었다. 대가리를 죽이는 데에 무참히 실패한 우영에게 남은 선택지라고는 고작 두 가지에 불과했으니. 죽을 때까지 숨어다니다 걸려 곰팡내 나는 길바닥에서 인생을 끝내든가, 혹은 억울해도 제 부모의 돈을 갚든가. 그러나 그는 죽어도 전자와 같은 허탈한 여생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죽였으면 죽였지, 내가 왜 죽어. 그게 우영의 피이자 심장인 모토였으니까.

    그런 그에게 남은 선택지라고는 이제, 하나뿐이었다.

 

    “야.”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네.”

    “일단 밥 줘. 나 삼 일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어.”

​

    또 웃네, 저 새끼. 우영은 산의 말간 웃음이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어젠 잘 들어갔고?”

    “친한 척하지 마. 아,”

    “……?”

    “위에 조심. 여기 수도관이 오락가락해서 까딱하면 감전되니까.”

​

    여기서 통구이 되면 나야 좋겠지만, 일단 밥은 좀 얻어먹어야지. 우영 그가 일러 준 골목은 예부터 입에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곳이었다. 배선이 넝쿨처럼 붙어 있는 천장을 가로지르는 수도관이 녹슬어 자주 누수가 발생하는 탓에 위험하다고. 성채 내 지리를 모를 리 없는 산이 슬며시 입술을 눌러 웃음을 참으며 뒤따른 건 우영에게 비밀이라 할 수 있겠다.

    우영이 산을 데려간 곳은 그가 아는 노점 중 제일 비싼 곳이었다. 「靑林閣(청림각)」, 흰 천 위에서 붉게 펄럭이는 글자를 걷어낸 산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이미 자리에 앉아 먹을 것을 고르느라 고심인 우영이었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시켜.”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여기, 우육면이랑 콘지랑…… 아, 샤오롱바오도 주세요. 그쪽은?”

    “됐어.”

    “그럼 그렇게만 주세요. 면 좀 많이 주시고요.”

 

    唔该. 손을 모아 감사 인사도 잊지 않은 우영이 저를 빤히 쳐다보는 산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올렸던 광대를 쭉 꺼트렸다. 찻잔의 이 빠진 테두리를 손으로 문지르며 샐쭉한 표정을 짓는 그에 산은 얼핏얼핏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려 야단이었다. 호기심에 명함을 내민 건 맞았으나 이렇게까지 즐거운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어제 저를 죽이려 들던 놈이 맞나, 싶을 정도로 뻔뻔하게 나오는 제 앞의 빚쟁이가 여간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아니었다는 소리다.

    음식이 나온 후에도 그는 산의 광대를 괴롭혔다. 산이 수저 쪽으로 손만 옮겨도 금세 눈을 치켜뜨고 흘끔흘끔 쳐다보는 게 아무렴 제 먹이를 뺏길까 노심초사하는 작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게 맛있냐고 물어도 대답을 하는 일은 없고, 그저 바삐 움직이던 숟가락을 잠깐 멈추고는 조용히 음식만 씹어 삼키다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작게 머리통을 끄덕이는 것이 다였다.

    산은 우영의 허기를 오히려 반기는 쪽에 가까웠다. 어디로 다 들어가는 건지 크게 한 입을 물어도 곧잘 부풀 생각을 않는 볼부터, 만두피를 찢는 투박한 젓가락질과, 흘러나온 육즙을 황급히 훔치는 두툼한 입술까지. 불평불만 없이 제 앞의 빚쟁이이자 직원인 남자를 마음껏 들여다볼 수 있었으니까.

 

    “근데.”

    “……?”

    “일하는 조건이 뭐야.”

    “이제 얘기할 마음이 좀 생겼어?”

    “말이나 해.”

    “한 건 당 3 퍼센트씩 까 줄게. 어차피 다른 일로는 죽을 때까지 네 빚 다 못 갚을 테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지.”

    “그러는 형씨는.”

    “나?”

    “그쪽은 왜 그렇게 나를 쓰려고 하는데. 이거 순 사기 아니야?”

    “내 쪽은 마침…… 일손이 부족하네.”

    “난 사람 못 죽여.”

    “응.”

    “때리지도 못해. 피 보면 구역질해서.”

    “칼 들고 내 배 쑤시려던 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 잠은?”

    “어?”

    “나 집 없어.”

    “왜, 어제 쳐들어온 것처럼 재워 달라고 떵떵대면서 말하지.”

    “그럼 재워 주게?”

 

    음식에 처박았던 고개를 들어 냉큼 묻는 우영에 산은 결국 눌러놓은 웃음을 와르르 터뜨렸다. 난데없는 타이밍에 눈꼬리를 한껏 휜 채 목젖까지 들썩여가며 신나게 웃는 그에 떨떠름한 표정을 얼굴에 띄운 우영이 말없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밥맛 제대로 떨어졌다. 쯥, 소리를 내며 언짢은 얼굴을 한 우영을 아는지 모르는지, 산은 한참이 지나도록 상기된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잘 곳 없으면 사무실에 있어, 오는 사람들이랑 겸사겸사 안면도 좀 트고. 그전에 유치원 앞에 목욕탕이 있다고 들었는데……. 한번 가 봐.’

 

    목욕값이라 하기에는 꽤 많은 액수를 쥐여준 남자 덕에 오랜만에 거적때기가 아닌 제대로 된 옷을 걸치고 남은 돈으로 긴 머리칼을 넘길 끈까지 산 우영은 그길로 사무실에 발을 들였다.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불과 어제 코피를 줄줄 쏟던 곳이 하루아침 사이에 잠자리가 되다니. 어제까지 저를 죽기 직전까지 때리던 패거리의 밑에 들어간 건 누구라도 굴욕감을 느낄 일이다만 자존심과 같은 호화로운 감정에 연연할 처지가 아닌 우영은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어찌 됐든 하루아침에 잘 곳도, 먹고 죽을 구멍도 생긴 셈이다. 여차하면 늘 그랬듯 먹고 째면 될 일이었다. 일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자. 천으로 된 소파에 길게 누운 우영은 생각을 관두고 눈을 감는 쪽을 택했다. 어차피 지레 겁먹고 고민해 본들, 부딪히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니.

 

​

 

    눈을 뜨고 처음으로 우영의 시야에 들어온 건 굉음과 함께 골목 사이로 보이는 비행기가 아닌 커다란 실링팬이었다.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킨 그가 고개를 양쪽으로 툭툭 꺾으며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들어오자마자 자는 데에 급급해 미처 제대로 보지 못한 실내가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사무실 안은 예전 살던 집과 견주어 본다면 반도 채 되지 않는 크기에 불과했지만 분명 마계촌 내에서는 널널한 편에 속하는 수준이었다.

    흰 바탕에 균열이 간 듯 검은 무늬가 그려진 대리석 바닥 위 직사각형 모양의 유리 테이블, 누구의 취향인지 모를 촌스러운 꽃이 수놓아진 포도주색의 패브릭 소파, 그리고 상석 바로 뒤에 위치한 중역 책상. 가구랄 것은 고작 이것들이 다였다. 명패 하나 없는 책상을 지나친 우영이 가죽으로 된 의자에 몸을 푹 뉘었다. 작은 창문에서 빛이 어룽거리며 새어들어오는 걸 보니 아직 아침인 듯했다. 낮보다 밤에 활발한 이곳에서 빛이 드는 시간이란 곧 마굴이 잠에 드는 시간이라는 소리였다. 후, 숨을 내뱉은 우영이 다시금 묵직하게 내려앉으려는 눈꺼풀을 감았다.

 

 

 

    한숨도 자지 못한 눈이 무겁다. 얄쌍한 눈을 느리게 끔뻑이던 산이 하품을 쩍 했다. 어젯밤 우영을 사무실로 돌려보내고 난 후부터 줄곧 일의 연속이었다. 최근 정부가 움직일 낌새를 보이고 있어 며칠 한껏 예민해진 시기였던 터라 통 누워 본 기억이 없을 정도였다. 침대를 곧 애인이라 칭할 만큼 잠이 많은 산에게는 먹지 못하는 것보다 수면이 부족한 이 상황이 훨씬 고역에 가까웠다. 자꾸만 새어 나오려는 하품을 한 번 더 내지른 산이 비척비척 사무실 문을 열었다.

 

    “허어…….”

 

    문을 열자마자 매캐한 담배 연기가 그의 방문을 화답하듯 달려든 탓에 산은 실내에 꽉 찼던 연기를 모두 맞아야 했다. 연기 안으로 얼핏 보이는 인영은 아무래도 제 자리에 앉아 있는 듯했다. 겨우 눈을 제대로 뜬 그는 제일 먼저 탄식 섞인 숨을 내뱉었다. 실루엣의 주인은 예상대로 그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반쯤 누워 발을 걸친 책상 위에는 종이로 된 성냥갑과 함께 담배 보루가 무자비하게 헤쳐져 있는 채였다. 모두 서랍에 있던 것들이었다. 다리를 휘적여 우영의 앞까지 간 산이 이미 헤집어진 서랍 안과 태연히 입술로 담배를 옮기는 우영을 번갈아 보다 중간이 끊긴 왼 눈썹을 까딱였다.

 

    “내가 쥐새끼 하나를 들였네.”

    “서랍에 쌓여 있더만 왜 남이 피우던 걸 뺏어가고 지랄이야, 지랄이.”

 

    졸지에 제 몫의 담배를 빼앗긴 우영이 짜증스레 소리를 높였다. 꼭 있는 놈들이 더 해요. 빡빡하게 굴긴. 두툼한 입술을 비죽 내밀며 불평하는 그에 헛웃음과 함께 필터를 죽 빤 산이 뒤이어 우영의 턱을 잡아채고는 그의 얼굴을 향해 숨을 내쉬었다. 후우ㅡ, 길게 내뱉는 연기에 우영의 표정이 구겨 들어간 건 그야말로 삽시간이었다.

 

    “아, 씨발……! 뭐 하냐고.”

    “이제 만족해?”

    “넌 언제 뒈지냐?”

    “빚은 다 받아내고 죽어야지, 죽어도.”

 

    필터를 진득이 빨아들인 산이 마지막 모금을 뱉음과 함께 책상 위로 꽁초의 끝을 지져 껐다. 미친놈, 됐으니까 빨리 죽어. 우영의 저주를 덕담 삼아 들으며 뒤로 돌아 느리게 기지개를 켠 그가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잠을 깨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본인의 말을 빌려 마음이 약해 사람을 협박하는 것도, 돈을 받아내는 것도 하지 못하는 우영은 산의 몫과는 조금 결이 다른 일을 시작했다. 간판만 내걸고 제대로 운영하지는 않았던 흥신소 일이 그의 주된 업무였다. 그마저도 말만 흥신소였지, 유통하다 성채 내에 흘린 금니를 찾아 주거나 가게에서 가족같이 키우던 고양이를 찾아 주는 등 사실상 하는 일은 심부름센터에 가까웠다.

    우영은 자신의 일에 퍽 만족한 듯 보였다. 처음에는 사무실에만 들어앉아 있던 그가 곧잘 일하러 나간다며 자리를 비우곤 했으니까. 산으로서도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실상 돈줄은 모두 채무업에 쏠려 있었기에 이렇게까지 열띠게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만 산 그는 우선적으로 입을 다물기로 했다. 매일같이 사무실에 들어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만족할 만한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땀과 습기에 젖은 채 뻔뻔스레 내미는 손에 지폐를 얹어 주면서도 산은 별말이 없었다. 오늘은 무얼 하다 왔는지 푹 젖어 걷어 올린 소매 밑으로 보이는 단단한 팔뚝은 잔뜩 성이 나 있다. 아예 어디서 수건 하나를 구해 와 목에 걸치고는 엉망으로 묶인 머리칼을 풀어헤치던 우영과 눈이 마주친 산이 그대로 눈꼬리를 보기 좋게 접었다.

    제 앞의 신참에게 궁금한 건 많았다. 항상 어딜 가는 건지, 가서 뭘 하는 건지. 어떤 사람을 만나고 또 무슨 밥을 먹는지. 노골적인 시선이 익숙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주머니 속에 받은 지폐를 구겨 넣고 목욕 갈 채비를 하는 우영을 불러 세운 산이 샐쭉 웃으며 말했다. 내일은 같이 가겠다고.

 

​

 

    늘상 하는 지랄인 줄 알았는데, 진심이었나 보다. 꼭두새벽부터 사무실에 찾아와 준비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있는 산에 하마터면 날의 초장부터 욕으로 시작할 뻔했다. 여느 때처럼 긴 머리칼을 뒤로 넘겨 묶는 것을 끝으로 나갈 채비를 끝낸 우영이 불편한 표정을 얼굴에 내건 채 문 앞에서 멀뚱멀뚱 저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이 새끼, 진짜 뭐 하는 놈이지.

    짐승의 거죽을 그대로 벗겨 씌운 듯한 괴랄한 무늬의 셔츠는 여전했으나, 잔머리 하나 없이 왁스로 넘겨 험악한 얼굴을 그대로 드러냈던 머리칼이 오늘은 이마를 덮고 있었다. 그 밑으로 감은 듯 아닌 듯 반쯤 뜬 눈을 느리게 굴리며 우영을 쳐다보는 산은 아무리 봐도 둔한 바보에 가까웠다.

 

    “너 할 일 없냐?”

    “응, 오늘은.”

    “일 없으면 가서 잠이나 자, 졸려 뒈지겠다는 눈깔로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

    “아침부터 찾아와서 감시는…….”

​

    걷은 소매 위에 걸쳤던 재킷을 다시 챙겨 입은 산이 궁시렁 소리를 내며 그를 지나쳐 문을 나서는 우영의 뒤를 따랐다. 오늘은 어디 가? 하고 물어도 묵묵부답인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것 같다. 산은 제 옆의 우영이 불과 몇 주 전 저를 담그러 쫓아 들어온 사내라는 건 이미 새하얗게 잊은 듯했다.

    골목에서부터 올라오는 습기가 금세 얼굴 위로 달라붙어 땀과 같은 형태로 주욱 떨어진다. 원체 건물이 밀도 높게 올라와 있어 볕이 잘 들지 않았기에 온도는 오히려 다른 곳보다 낮아 서늘한 편이었으나 홍콩 우기의 습도는 마굴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손등으로 턱에 맺힌 물방울을 훔치며 눅눅한 숨을 내뱉은 산이 서 있기만 해도 축축 늘어지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골목을 이리저리 잘만 쏘다니는 우영의 뒤를 마저 따랐다.

    새카맣게 곰팡이가 핀 골목에서 피어오르는 악취는 아편굴 특유의 매캐한 연기와 섞였다가 고소한 빵 냄새로 바뀌기도 했고, 소독약 냄새가 되기도 했으며 인위적인 분 냄새로 덮이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덧 탁 트이는 시야에 고개를 든 산이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성채는 거의 모든 건물이 고층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딱 한 군데, 중심부만큼은 낮은 단층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무렴 이곳이 목적지였는지 이내 우뚝 멈춘 우영의 걸음에 맞추어 선 산이 정면에 걸린 간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养老院」. 녹 낀 간판에 쓰인 검은 글씨는 분명 양로원이 맞았다.

 

    “야.”

    “……?”

    “따라 들어가는 건 좋은데, 대신 입 다물고 있어.”

    “왜?”

    “얼굴을 봐라. 보고 안 놀라겠나.”

​

    눈썹을 따라 길게 난 상처, 험상궂은 인상까지. 굳이 나쁜 일 하는 사람이라는 걸 티 낼 필요는 없다는 게 우영의 의견이었다. 가만히 눈을 끔뻑이던 산은 어차피 이 바닥 인간이면 어린애 빼고 다 알 텐데, 하고 말을 얹는 것보다 고갤 끄덕이는 쪽을 택했다.

 

    붉은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내벽을 끼고 들어가니 요양을 하는 듯한 백발노인들이 더러 있다. 내부는 처음 들어와 보는 산과 달리 우영은 이미 이 양로원이 익숙한 듯 여러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

    “할아버지, 저 왔어요. 오늘은 어디. 아, 예. 예. 알죠. 주세요. 저녁 전에 다시 올게요.”

​

    짙은 초록색의 무언가를 손에 든 우영은 그렇게 또 산을 지나쳐 앞장섰다. 그를 따라 다시 몇 개의 골목을 지났을까, 나온 곳은 눈에 퍽 설은 곳이었다. 좁은 골목의 양옆으로 들어 서 있는 가게에서는 소독품 냄새가 났다. 이번에 면허를 따지 못한 치과 의사들이 대거 성채로 들어왔다더니, 아무렴 그들의 장사터인 듯싶었다.

    밖에다 산을 세워 두고 가게에 들어갔던 우영은 생각보다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기다리며 문 담배가 채 반쯤 사그라들지도 않았으니까. 내미는 손에 습기로 눅눅해진 담배와 성냥갑을 쥐여주니 자연스레 옆에 서서 불을 붙인다. 아, 씨. 왜 이렇게 안 붙어. 우영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금방이라도 비가 떨어질 듯 습한 날씨를 느끼던 산이 입을 떼었다.

 

    “며칠 뒤면 폭우 시작이라던데.”

    “어.”

    “우산은 있어?”

    “사무실에 많잖아.”

​

    아, 탄식을 뱉는 소리에 산이 무슨 일이냐는 듯 눈썹을 치켜 올린다.

​

    “사무실에 쌓인 우산 주인들 다 뒈졌냐?”

    “…….”

    “죽은 사람 거 쓰면 재수 옴 붙는다던데.”

    “음……. 아마 아닐걸.”

    “아마 아닐걸?”

 

    존나 징글징글하다. 인상을 구기며 도로 벽에 몸을 기대는 우영에 머쓱한 듯 목덜미를 긁던 산이 부쩍 짧아진 담배를 떨어뜨렸다. 이름도 모를 곰팡이가 검게 핀 바닥에 떨어진 흰 필터가 이내 거무스름한 물에 젖어 점점 불씨를 죽여 간다.

 

    우영이 하는 일은 산의 생각보다도 훨씬 소소했다. 몸이 불편한 노인을 대신해 쓰던 틀니를 회수하고, 새것을 가져다주는 것. 주름이 자글거리는 손으로 우영의 손을 부여잡고 감사 인사를 하는 노인과 그에 웃으며 화답하는 우영은 단연 하루 이틀 본 사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곳저곳에 붙잡혀 얼굴도장을 찍느라 여념 없는 우영을 뒤로하고 산이 먼저 건물을 빠져나왔을 때의 하늘은 저녁놀이 뉘엿하게 지고 있었다. 굉음과 함께 노란 하늘을 가르고 지나가는 비행기는 아무렴 장관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건물 안에서 나온 우영은 지폐를 손에 쥔 채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게, 안 받는다니까……. 머리를 긁적이며 주머니에 돈을 쑤셔 넣은 그가 빤히 저를 쳐다보고 있는 산에게 툭 말을 던졌다. 뭘 그렇게 봐.

 

    “요새 이런 거 해?”

    “어. 꼽냐? 어차피 돈은 다 네가 하는 일에서 채울 거 아니야.”

    “그냥. 잘하고 있다 싶어서.”

 

    입꼬리를 죽 올리고 우영의 정수리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뗀 산은 예상대로 짜증 섞인 일갈을 들어야만 했다. 왜 웃냐며 쏘아붙이는 우영에도 생각보다 귀여운 일을 하고 있어 그렇다는 말은 끝내 참아낸 그가 이내 주린 배로 화제를 돌렸다.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어 멱살 잡힐 필요는 없으니까.

 

 

 

    “마굴 안에 이런 데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배 많이 안 고프대서.”

​

    陰澳飯店. 원목의 문패에 양각으로 튀어나온 금속의 글자가 등불에 의해 노르스름하게 번쩍인다. 산이 우영을 데리고 온 곳은 얌오판디엔이라는 한 주점이었다. 날것의 냄새가 나는 야시장 노점과는 달리 동양풍의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는 가게는 딱 보기에도 퍽 고급스러웠다.

 

    “괜찮으면 아무거나 시킬게.”

​

    익숙한 광동어를 들으며 턱을 괸 우영이 주위를 가만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게는 칸막이로 방을 나누어 놓은 구조로 되어 있었다. 오동나무를 깎아 만든 문창살을 젖히자마자 보이는 붉은 내벽 위에는 창살과 같은 색의 팔각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가벽이 세워진 산의 뒤켠엔 층을 쌓아 올린 선반에 서방에서 들어온 술이 가지런히 장식돼 있는 채였다.

    얼마 안 가 주로(酒壚)에 올라온 술은 당연하게도 우영이 태어나 처음 보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투명한 유리잔에 채워진 황금색의 액체는 저번날 밀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장 몰래 직원들과 급히 나누어 마셨던 싸구려 맥주와는 단연 비교되는 때깔을 갖고 있었다.

 

    “마셔 봐. 꽤 괜찮아.”

    “……? 넌.”

    “술 잘 안 해서.”

    “아, 같이 안 마시면 재미없잖아.”

    “오히려 반길 줄 알았는데.”

 

    두툼한 입술을 불퉁하게 내미는 우영에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몇 번 고민하는가 싶던 산이 이내 잔을 들어 시원하게 들이켰다. 어차피 마실 거면서. 금세 풀린 티를 내며 뒤따라 마시는 우영에 산의 표정마저 풀어진 건 모름지기 기분 탓은 아니었다.

 

    “나 빚 얼마나 까였어.”

    “음…… 한 3 할 정도.”

    “야, 한 일이 몇 갠데 그것밖에 안 까.”

    “…….”

    “…… 3.5.”

    “지금 나랑 협상하자고?”

    “씨발, 이 속도면 돈 갚느라 관짝에도 못 눕겠네.”

    “그것도 나쁘지 않지.”

    “미쳤냐. 차라리 혀 깨문다.”

​

    죽어도 싫다고 질색하는 우영에 웃음을 터뜨린 산이 빈 잔에 술을 채웠다. 죽이네 마네 하던 처음에 비하면 분명 가까워진 게 맞는 것 같다ㅡ, 는 게 산의 생각이었다.

 

    “따라오길 잘했다.”

    “난 불편하기만 한데.”

    “그래?”

    “그럼 넌 상사가 따라다니는데 안 불편하고 배기겠냐?”

    “너 나 윗사람으로 생각하지도 않잖아.”

    “아무튼.”

    “내일도 같이 가.”

    “…….”

    “대신 말 한마디 안 하고, 뒤에만 있을게.”

    “…… 아, 귀찮은 새끼.”

​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더니. 분명 뒤가 더러운 일을 하는 놈이 맞음에도 웃을 때에는 영락없이 속없어 보인다. 말이 속없어 보인다는 거지, 어찌 보면 멍청해 보인다는 소리다. 허튼짓 하지 마, 입 다물고 웃고만 있어. 아까는 그냥 가만히 있으라며. 차라리 웃는 게 더 바보 같으니까 웃으라고. 비운 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은 우영이 긴 호흡을 뱉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달큰한 스카치 향이 입안을 감돈다.

 

​

 

    산은 아예 작정이라도 했는지, 제 일을 모두 직원들에게 미뤄두고 본격적으로 우영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우영이 움직일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가만히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런 그를 귀찮아할 수도 있는 우영이 조용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산은 감시라고는 하나 얌전히 뒤에서 우영이 하는 양을 지켜보더니 며칠이 지나고 나서는 곧잘 일을 도와주었다. 심지어 저번 날에는 오히려 그의 도움으로 일과가 빠르게 끝나기도 했다. 하나가 할 일을 둘이 하니 효율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처사였으나 모든 일을, 하물며 생활마저 혼자 해내던 우영은 그 사실이 마냥 어색하기만 했다.

    둘은 당연한 수순처럼 일이 끝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같이 밥을 먹었고 어느 날에는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으며 아예 사무실에서 함께 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더디게 줄어들던 둘 사이의 간극은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좁혀져 갔다. 우영은 어느새부턴가 저를 부를 때 산이 사용하는 영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졌고 산은 우영에게 거리낌 없이 이름을 듣게 되었다. 다시 말해 길바닥에 나앉은 날 스스로 첫 번째 이름을 지운 우영은 ‘영’이라는 두 번째 이름을 얻음과 동시에 산이라는 파트너와 동행하게 된 셈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최 사장, 누군가에게는 씨발 새끼로 통하던 산은 유년 시절보다도 제 온전한 이름을 더 많이 듣게 되었다는 소리다.

 

    “영아, 다음은 어디?”

    “직조 공장. 근데 그전에 공사 일 좀 도우러 가야 돼. 양씨 아저씨가 시간 나면 와 달래서.”

    “같이 갈까?”

    “아니, 가 있어. 아저씨 너 싫어해. 무섭대.”

    “우산 들고 가.”

    “됐어, 금방 가. 끝나고 사무실 갈 거냐?”

    “아니, 오늘은 집에.”

    “…… 그래?”

    “가 볼래? 여기서 사무실보다 가까운데.”   

    “…….”

    “먼저 끝내고 데리러 갈게.”

 

    내미는 검은 우산에 제법 단호히 고개를 저으니 잠깐 멈칫하는가 싶더니 마이 안쪽을 뒤적여 이내 우산 대신 담배를 쥐여주고는 씩 웃는다. 산다운 행동에 덩달아 입꼬리를 말아 올린 우영이 주머니 깊숙이 담뱃갑을 찔러넣었다. 이따 봐. 어느덧 다음 시간을 기약하는 일이 익숙해졌다. 벽돌색의 셔츠 깃을 바로 한 우영이 그대로 뒤로 돌아 빗물이 새는 골목으로 뛰쳐들어가기 시작했다.

 

 

 

    “…… 뭐야, 이거.”

    “요새 집에 통 들어오질 않아서 정리가 좀…….”

    “아니, 벽지 뭐냐고.”

​

    하마터면 술이 담긴 봉지를 툭 떨굴 뻔했다.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도 않은 채 산 쪽으로 시선을 돌린 우영이 인상을 팍 썼다. 원색에 가까운 보라색 벽지가 사분면에 붙어 있는 방 안은 낡았으나 깔끔했던 맨션 외관과는 단연 정반대의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내가 보라색을 좋아해서. 별로야?”

    “말이라고 하냐.”

​

    고개를 절레 내저은 우영이 멍청히 서 제 볼을 긁는 산을 지나쳐 아몬드색 테이블에 사 온 것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고기 국수, 라오포빙, 그리고 고량주까지. 술의 경우 들어오기 전 노점에서 이미 얼큰히 잔을 맞댄 둘이었으나 차마 고량주는 포기할 수 없다는 우영의 의견으로 산 것이었다. 누들 박스를 연 우영이 여즉 우두커니 서 있는 산을 보며 제 앞을 향해 턱짓했다. 계속 그러고 있게? 퉁명스러운 말과 함께였다.

    탈탈 돌아가는 선풍기도 창문 너머로부터 풍겨오는 우기의 습도를 이기지 못했다. 빗물에 젖은 바지를 벗어낸 산이 검은 민소매에 트렁크 차림으로 자리에 돌아와 잔에 남은 술을 마저 들이켰다. 담배 대신 성냥개비를 물고 낄낄거리는 우영은 진즉 웃옷을 벗어 던진 탓에 덜렁 청바지 하나만 입은 채였다. 그때의 술은 반 정도가 비워져 가고 있었다.

 

    “소문 들어 보니까 너, 돈이라면 지옥까지 쫓아가서 받아낸다며. 아저씨들한테 들었어.”

    “음…… 글쎄. 안 가 봐서 모르겠는데. 나 거기 가면 가 있는 동안 너 도망칠 거잖아.”

    “미친놈……. 갈 데나 있냐, 내가.”

​

    취기에 누그러진 웃음소리가 방 안에 기분 좋게 퍼진다. 테이블에 반쯤 기대 비식비식 새어 나오는 실소를 내뱉던 우영이 이내 말을 얹었다.

 

    “최산.”

    “응, 영아.”

    “너 삼합회에 있었다며.”

    “…….”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놈이었네.”

​

    거기서 어떻게 나왔어? 묻는 우영의 목소리가 빗물을 타고 이내 사라진다. 말없이 잔을 내미는 산에 자연스레 병을 기울인 우영이 제 앞의 남자를 빤히 쳐다봤다. 운을 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간결하고 더 잔인했다. 손가락 자르면 나가게 해 준다길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제 검지를 썰었단다. 그것도 고작, 날이 중지 손가락만 한 단도로.

   

    “어떻게 됐어.”

    “보는 대로.”

​

    분명 산의 손에는 열 손가락이 멀쩡히 붙어 있었다. 습관처럼 테이블을 손끝으로 두드리던 그의 검지에는 큰 흉이 져 있었지만.

 

    “반도 못 잘랐어. 날이 너무 무뎌서 썰리지가 않더라. 그래도 뼈가 보일 때까지는 잘랐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대로 나왔어. 그날 보스가 죽었거든.”

    “…… 이 바닥치고 복잡한 사정 없는 놈 없다더니, 진짜인가 보네.”

​

    들은 적 있다. 흑방에 있는 이들 중 삼합회에 발 들이지 않은 놈은 극히 드물다고. 산의 검지를 응시하며 손바닥 안에서 잔을 굴리던 우영이 나직이 물었다. 그럼 지금은, 그쪽이랑 연락 안 해?

 

    “말했잖아. 결국 자르는 데에 실패했다고.”

 

    산이 애매하게 웃으며 우영의 시선이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는 검지손가락을 접어냈다. 꿈틀거리는 손등뼈를 말없이 넘겨보던 우영이 산의 손 위에 큼지막한 제 손을 겹친 건 순간이었다.

​

    “많이 아팠냐?”

    “…….”

    “그래, 아팠겠지. 생살을 찢는데.”

​

    주먹과 엄지 사이에 가두어 숨긴 흉터를 훑은 우영이 산의 검지손가락을 펼쳤다. 습기에 젖은 손끝이 문지르는 감촉은 축축하고도 뜨뜻미지근했다.

 

    “우영아.”

    “…….”

 

    느릿하게 손을 움직여 우영의 손가락과 마주 얽은 산이 손바닥을 틈 없이 맞대었다. 손과 손 사이 이음새에서부터 살이 스치는 소리가 생경하게 피어오른다. 비 비린내 가득한 허공에서 시선이 맞붙자마자, 둘은 누구 할 것 없이 입술을 맞부딪혔다.

 

​

 

    담뱃갑을 집어 든 산이 덜 마른 필터에 불을 붙였다. 후우ㅡ, 숨을 뱉자 보라색 벽지 위로 희뿌연 연기가 퍼진다. 곧이어 바스락거리는 기척이 들리더니 장미색의 이불 위로 맨손이 불쑥 올라온다. 협탁 위 재떨이에 재를 떨어뜨린 산이 잠자코 그 손가락에 담배를 끼우자 이내 우영이 몸을 일으키고는, 산의 가슴팍을 베개 삼아 머리를 댄 채 길게 필터를 빨았다.

 

    “불편하면 사무실 가서 잘래?”

    “아니.”

    “처음에는 여기 싫다며.”

    “어. 벽지 색 바꿔, 존나 촌스러워.”

    “다음에도 올 거야?”

 

    묻자 우영이 커다란 눈을 굴려 시선을 맞춘다. 가만히 저를 내려다보는 산과 그의 어깨에 남은 잇자국을 번갈아 보던 우영이 담뱃재를 털며 입을 열었다.

 

    “벽지 바꾸면.”

    “내일 바꿀게.”

 

    가라앉은 웃음소리가 들린 건 그 후이고.

 

 

 

    그날 이래로 그들의 일상은 전과 같았으나 우영이 사무실보다 산의 집에서 잠을 청하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것에서 다른 점이 딱 하나 있었다. 우영은 평소처럼 긴 머리칼을 묶는 것을 끝으로 준비를 마치고 바쁘게 성채 내를 돌아다녔고 산은 그의 뒤를 따랐다. 가끔은 산에 의해 일이 일찍 끝나기도 했으며 그런 날에는 술과 함께 허기진 배를 채우고는 함께 산의 집으로 귀가했다.

    둘은 시선이 오가기만 하면 너 나 할 것 없이 종종 배를 맞대었다. 꼭 결핍을 온기로 채우려는 이들처럼 두툼한 입술을 감쳐물었고 살 위에 녹진한 혀를 붙였으며, 그렇게 흉진 손가락을 얽었다. 정사가 끝나고 난 후 그들은 종종 나란히 헤드에 기대앉아 담배를 피웠다. 새로 도배한 회색 벽지에 빗물이 새어들어 검은색에 가까운 색을 낼 때까지도 산과 우영은 이와 같은 관계를 이어갔다. 그때의 홍콩은 줄곧 내리던 빗줄기가 점점 얇아지고 있었다.

 

    “태풍 온대. 들었어?”

    “방금 너한테 들었어.”

    “비 그치면 옥상 가 보자. 전부터 궁금했어.”

    “그래.”

    “그리고 에어컨 좀 달아, 좋은 걸로.”

    “집에 들어오는 일이 잘 없어서…….”

    “이젠 아니잖아.”

 

    조용히 우영의 허벅지에 기대 누운 산이 눈을 나른하게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움직일 때마다 얇은 이불에 스쳐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낸다.

 

    “야.”

    “…….”

    “산아.”

    “응.”

    “근데, 안 물어봐?”

    “뭘?”

    “내 얘기.”

    “좋은 얘기 아니잖아. 하기 싫을까 봐.”

    “괜찮은데.”

 

    마디가 툭툭 불거진 손이 산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투박한 외관과는 상반되는 손길로 조심스레 머리칼을 넘기던 우영이 넌지시 물었다. 들을래?

    일곱 살로 시작되는 그의 이야기는 분명 불행한 서사로 가득했으나 정작 화자이자 주인공인 우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골목 생활 하면 시비 털리는 게 한두 번이 아니지. 그래서 처음에는 너희 직원들도 그냥 그런 양아치 새끼들인 줄 알았어. 맨션 입구에서 자다 보면 자기네 건물이니 자릿세 내야 한다고 별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 하는 놈들이 많거든.

 

    “하루는 죽어도 돈 없다니까 일해서라도 내라면서 매음굴 쪽으로 끌고 가데. 가 봤으면 알겠지, 너도. 홍등가 사람들 아편 없이는 못 사는 거. 떠밀려서 그대로 엎어졌는데 눈이 마주쳤어. 살아 있는 사람 말고, 시체랑. 근처에서 얘기 들어 보니까 아편 때문에 생긴 빚 갚을 길이 없어서 도망치려고 했대. 그래서 죽기 직전까지 먹였다더라. 그렇게 하고 싶으면 원 없이 하다 뒈지라면서. 웃기지 않아? 여기서 나가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개죽음당한 거잖아. 죽으면 아무것도 안 남아. 쥐새끼들한테 살은 죄 뜯길 테고 뼈도 얼마 안 가 부스러지겠지. 편하게 눈 감기는, 씨발. 것도 다 있는 놈들한테나 해당되는 얘기지. 그래서 사는 거야, 아무것도 안 남는다는 게 억울해서. 죽는대도 누릴 건 다 누리고 볕 잘 드는 데에서 죽으려고.”

    “…….”

    “근데.”

 

    또렷하던 목소리가 사그라든다. 머리칼에 얹었던 손을 옮긴 우영이 산의 귓바퀴를 느리게 문지른다.

 

    “나 너 때문이면 여기서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아.”

 

    어둡지만 올곧고, 바른 눈. 산을 내려다보는 눈동자에는 단연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산은 곧 잠에 든 우영을 품에 가만히 안으면서도 생각했다. 우영은 차라리 말을 아꼈으면 아꼈지,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런 그가, 오늘, 저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우영이 마음을 연 건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전처럼 적대적으로 굴지 않았고, 오히려 다정하게 성을 떼고 이름을 불러 주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오늘 우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관계의 진전과는 결이 다른 문제였다. 단순히 마음을 연다는 것을 넘어 의지의 표시에 가까웠다.

 

    미묘한 감정에 한숨을 길게 뱉은 산이 담배를 물었다. 둘 중 그 누구도 정의 내린 적 없는 관계 속에서 우영이 내뱉은 고백 아닌 고백은, 결국 산의 불면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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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이 며칠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항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경찰에 소탕령이 내려왔다고 했다.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닌지, 최근 들어 성채 내에 경찰로 보이는 이들이 자주 돌아다녔다.

    사라진 그에게 연락을 취할 수단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전화라고는 사무실에 있는 전화기가 다였고 예상한 대로 산은 그마저도 받지 않았다. 이번 일이 예삿일이 아니라던 저번 날의 양씨 아저씨의 말을 떠올린 우영이 여전히 감감무소식인 산에 두툼한 입술을 감쳐물었다.

 

    사실 산이 없는 지금이 도망치기에는 가장 제격이었다. 그동안 밖을 자주 나다니는 우영을 많이 봐 온 업소 사람들이 그의 외출을 말릴 이유도 없을뿐더러 제 옆에 붙어 감시하던 이마저 사라진 거니까. 그러나, 다만 애석하게도, 우영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분명 우습게 들릴 게 확실하지만 그의 머리는 도주보다 산에 대한 생각에 더 기울어 있었다는 소리다.

    경찰이 움직인다. 그동안과 같이 말뿐인 해산 권고가 아니었다. 직접 돌아다닌다는 건 즉, 이곳을 청소하겠다는 소리에 가까웠다. 몸을 일으킨 우영이 급히 나갈 채비를 했다. 무작정 거리로 나와 전과 다를 바 없이 불온하고도 평안해 보이는 곳을 둘러보던 그가 손에 쥔 겉옷을 무심코 걸치려다 순간 멈칫했다. 베이지색의 면 재킷에는 익숙한 향이 짙게 남아 있었다. 제 주인을 닮은 나무의 향은 매큼하고도 따뜻했다. 후으……. 담배 연기 대신 숨을 깊게 내쉰 우영이 앞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잔머리를 툽툽하게 쓸어넘겼다.

 

    종일 이곳저곳을 쏘다니던 우영의 티셔츠는 이미 습기를 잔뜩 머금어 본래의 흰 빛깔보다 더 눅눅한 색을 내고 있었다. 푸르던 하늘이 홍등을 닮은 색으로 져 갈 때까지도 우영은 산을 찾아다녔으나 집에도, 같이 갔던 식당에도, 노점 근처에도 그는 없었다. 실상 산이 채무 걷이를 업으로 삼는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그 외의 건 정말이지 아는 게 없었다. 어딜 자주 가고, 누구와 이야기하며 그때의 목소리가 어떤지 우영으로서는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삼합회, 정부, 소탕령, 청소. 네 가지 단어가 계속해서 눈앞을 빙빙 도는 듯했다. 하릴없이 사무실로 발을 돌리면서도 그러했다. 마굴 밖으로 도망쳤을까. 아니면, 지금쯤 도주 중인 걸까. 그렇다면 사무실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으나 명쾌한 대답은 좀체 나올 생각을 않는다. 이 상황에서 확실한 건 하나였다. 모르긴 몰라도 체포되면 끝이라는 것. 범죄에 예민한 정부가 발 벗고 나선 마당에 조직에 몸담고 있는 이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우선 들어가서 한 번만 더 연락해 보고, 다시 나와서 찾아보자. 땀송이가 맺힌 이마를 쓸어넘긴 우영이 사무실 문을 연 찰나였다.

 

    너 뭐야.

    거기 서ㅡ!

 

    좆됐다. 사무실 안에 가득한 남색의 제복을 보자마자 뒷걸음질 친 우영이 곧장 온 길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간과하고 있었다. 비단 산만이 위험한 게 아니라는 걸. 사무실 내에 누가 얼마나 더 삼합회와 연줄이 있을지 모른다. 우영을 제외한 모두가 그러했을 수도 있고, 몇몇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는 그 모든 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산과 함께하는 이들은 전부 청소 대상에 불과했고, 이는 당연히 우영도 포함이었다.

    걸리지 않고 이 좁은 골목을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기에 뛰고, 또 뛰었다. 셋에서 넷으로, 넷에서 여섯으로. 뒤로 따라붙은 경찰의 수는 순식간에 불어났다. 헉, 헉. 턱 끝까지 숨이 찬다. 고막까지 쿵쾅거리는 심장은 당장 터진대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다. 행여 미끄러운 바닥을 잘못 밟는다 치면 그대로 끝이었다. 최산은 어디 있을까. 잘 벗어나긴 한 걸까. 알고 있었다면 왜, 나에게, 말하지 않은 걸까.

    휘청, 코너를 끼고 돌려던 몸이 예상과 다르게 기운다. 아무래도 생각이 너무 많았나 보다. 빠르고 확실하게 저를 향해 달려드는 검은 바닥에 고개를 돌린 우영이, 눈을 꽉 감았다.

 

    “너ㅡ,”

    “너무 늦었지.”

 

    바닥 대신 저를 바치고 있는 산과 눈을 맞춘 우영이 이내 입을 다물었다. 인사는 이따 하자. 뛸 수 있지? 산의 눈꼬리는 평소와 같이 휘어져 있었으나 목소리만큼은 웃고 있지 않았다. 가까운 곳에서 터지는 실탄 소리를 기점으로 둘은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급히 숨을 들이쉴 때마다 오물 특유의 악취와 곰팡내 사이로 낯익은 향수 냄새가 짙게 풍긴다.

 

    “허억, 씁, 헉…….”

    “하아……, 괜찮아?”

    “너, 씨발, 헉, 말도 제대로 안 나오네.”

    “잠깐 쉬자.”

​

    몸을 숨긴 곳은 한 폐상점이었다. 총 세 상가가 이어져 있는 건물은 한 번 들어오면 길을 잃기 쉽다는 소문이 떠돌 만큼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었기에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을 터였다. 너 때문에 죽는 건 괜찮을 것 같다는 게 이런 말은 아니었는데. 말 대신 터지는 신음을 삼키며 시멘트로 된 기둥에 기댄 우영이 그대로 몸을 미끄러트렸다. 산소가 부족한 머리가 미친 듯이 지끈거린다.

 

    “어디 갔었어.”

    “일 정리하느라 바빠서. 미안해.”

    “난 너 진작 밖으로 튄 줄 알았는데.”

    “내가 널 두고 어딜 가.”

​

    다정함을 머금은 목소리에 힘이 없다. 고개를 돌리자 위급했던 직전에는 차마 보지 못했던 산의 행색이 시야에 들어왔다. 평소와 달리 잔뜩 흐트러져 가닥가닥 내려온 머리칼, 반쯤 풀린 눈, 그리고…….

​

    “뭐야, 이거.”

    “아……. 그냥 스친 거야. 괜찮아.”

 

    손으로 누르고 있는 왼 아랫배 부근에 선명한 혈흔이 남아 있었다. 저를 말리려는 손길을 뿌리치고 셔츠를 걷어 올리자 한 뼘 크기로 길게 그어진 자상이 드러난다. 검붉게 변해 군데군데 딱지가 내려앉은 그곳은 적어도 몇십 분 안에 생긴 상처는 아니라는 걸 알리고 있었다. 진짜 스치기만 했어. 찔린 게 아니라. 상처를 응시하며 미간을 좁히는 우영에 그런 그의 어깨를 잡은 산이 그를 떼어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멀쩡해. 움직일 수 있어.”

 

    치명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셔츠가 젖어 들어갈 정도의 혈량에다 몇 시간 동안 치료도 못 한 상황이라면 후의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설상가상으로 건물 안을 울리는 발소리는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양로원으로 가. 너 하나 숨을 데는 있을 거야.”

    “야.”

    “나 버리라는 말 아니야. 정리할 게 있어서 그래.”

    “그럼 나도,”

    “…….”

 

    말을 붙이던 우영이 곧 입을 다물었다. 애매한 웃음을 내건 산의 표정에 순간 녹슨 칼을 손에 쥐고 저를 향해 웃던 얼굴이 겹쳐 보인다. 우영은 그가 난감함을 표할 때 이런 표정을 짓는다는 걸 익히 잘 알고 있었다.

 

    “…… 알겠어.”

    “영아.”

    “왜.”

    “나 살려고 가는 거야. 너랑 같이 여기서 나가려고.”

    “알아.”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커진다. 금세 코앞까지 온 것 같다. 조용히 몸을 일으킨 우영이 먼지 묻은 다리를 털었다. 얼굴에 의문을 띄우고 저를 올려다보는 산과 시선을 맞춘 그가 눈앞을 가리는 머리칼을 도로 넘겨 묶었다. 꽁지를 질끈 잡아당기는 손등에 핏발이 바짝 서 있다.

 

    “나도 내 살길 찾으러 가려고.”

    “……?”

    “이따 보자.”

 

    보기 좋게 입꼬리를 올린 우영이 상점 밖으로 튀어 나간 건 순식간이었다. 거기 서! 발포하겠다! 하든지, 개새끼들아! 두꺼운 혀를 죽 내밀어 도발한 그가 곧장 상가 밖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세 번째 골목을 통과했을 때에는 여섯에서 넷으로, 그다음 골목을 돌았을 땐 넷에서 다시 다섯으로, 노점 거리에 다다라서는 다섯에서 둘로. 따돌림과 추격을 반복하면서도 우영은 앞만 보고 달렸다. 방향 감각은 이미 상실한 지 오래였다. 그에게 여기가 어디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길이 있으면 뛰고 또 뛰었다. 그때의 하늘은 비구름에 가려 성채 내를 어둡게 비추고 있었다.

 

 

 

    “하, 씨발…….”

 

    일이 쉽게 풀릴 리가 없지. 우영이 부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바로 앞에는 총구를 들이민 경찰 하나가, 등 뒤로는 막다른 길이 그의 도주를 막고 있었다. 이제 와서 결백을 입증한다 한들 참작이 될 리가 없다. 공모 의심에 도주까지, 영락없는 사형이었다.

 

    “이 쥐새끼 같은 게…….”

    “깡패 놈들한테나 듣던 말을 경찰한테까지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양손을 머리 위로 치켜든 우영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너희 대가리 어딨어.”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위치를 말해.”

    “모른다니까.”

    “털어놓으면 넌 살려 주지.”

 

    절로 고이는 침을 탁 뱉은 그가 일소를 터뜨렸다.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이냐?”

    “…….”

    “좆까.”

 

    드르륵, 실린더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세게 감은 눈꺼풀이 절로 바르르 떨렸다. 생각보다 허무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야, 잡아!”

    “……?”

 

    뒤이어 울린 건 총소리가 아닌 고함이었다. 슬며시 눈을 뜨자 보인 건 급히 골목 밖으로 고개를 돌린 경찰, 그리고 벽 뒤에 가려 반쯤 보이는 익숙한 옷깃이었다. 찰나였으나 알 수 있었다. 우영과 눈이 맞닿은 이는 분명ㅡ,

 

    “…… 최산.”

    “걘 됐으니까, 저 새끼나 잡아! 우두머리다!”

    “네!”

 

    삑, 삐익. 호루라기 소리가 귀를 아프게 때린다. 금세 사라진 산의 뒤로 적지 않은 수의 경찰들이 지나갔다. 산과 함께 몸을 숨긴 상점은 창문이 넓게 나 있는 곳이었으니 산이 우영이 달려 나간 위치를 모를 리가 없었다. 아무리 우영 그가 길을 잃고 아무 곳으로나 무작정 달렸다고 한들, 산이 적어도 우영이 경찰들을 유인한 방향의 반대편으로 도주했다면 성채의 크기가 있기에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마주치지 못했을 터였다.

    그러나 산은 예상과 달리 우영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말인즉슨, 그는 의도적으로 우영이 도망친 길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최산, 이 미친 새끼가. 결론까지 도달한 우영이 급히 골목 밖으로 뛰쳐나갔으나 시야 속에는 산도, 그를 뒤쫓는 무리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추적추적 내리던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더니, 이젠 온몸을 흠뻑 적실 정도로 내린다. 장마가 끝난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비구름에 가려 어둠이 내려앉은 성채는 꼭 죽은 것만 같았다. 불이 꺼진 홍등의 거리 속에서 우영은 절로 힘이 빠지는 다리를 억지로 붙여 가며 산을 찾았다.

    정처 없이 헤매던 우영은 어느새 성채의 중앙에 가까워져 있었다. 눈에 익은 단층 건물이 그의 위치를 대신 말해 주는 듯했다. 철벅, 철벅. 발을 디딜 때마다 싸구려 운동화 안으로 빗물이 스미고, 눈꺼풀을 깜빡일 때마다 속눈썹 위에 내려앉은 빗방울이 마치 눈물처럼 떨어진다.

 

    양로원까지 고작 스무 걸음도 채 안 남았을 때였다. 타앙ㅡ!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총성이 들렸다. 기분 나쁜 예감이 든다. 산과 약속했던 도착지를 눈앞에 두고 행선지를 튼 우영이 총소리가 들렸던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비 비린내 속 익숙한 향기와 함께, 녹내가 코끝을 스친다.

 

    “…… 산아?”

 

    비좁은 골목 바닥에 한 남자가 쓰러져 있다. 아니지? 야. 목석같은 다리를 움직인 우영이 엎어져 있는 남자의 어깨를 잡아 천천히 돌렸다. 가슴팍을 중심으로 마치 꽃처럼 배어 나온 핏자국이 흰 셔츠를 점점 물들여 가고, 빗줄기에 스민 핏물이 허리께를 타고 흘러내린다. 반쯤 눈을 감은 이는 분명 산이 맞았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진 피부가, 그의 비극을 알리고 있었다.

 

    “야, 네가 왜 죽어……? 왜? 병신이냐? 아, 존나 웃기네……. 네가 왜 죽냐고, 씨발…….”

 

    “눈 떠. 야, 최산. 아니, 산아. 일어나……, 응?”

 

    눈동자에 빗물이 떨어져도 더 이상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 코끝에 미약하게나마 느껴지던 미지근한 바람이 서서히 꺼져 간다. 안 돼, 안 돼. 축 늘어진 산을 끌어안은 우영이 연신 소리쳤다. 야, 일어나. 산아, 죽지 마. 응? 제발, 흐, 제발……!

    근처 골목에서부터 인기척이 느껴진다. 불규칙하게 발을 움직이는 소리는 그 주인의 수가 적지 않음을 알리고 있었다. 최산, 너 살 거라며. 나랑 나가겠다며……. 일어나. 왜 여기서 죽어. 왜 씨발, 네가, 죽냐고. 반응 없는 몸뚱이의 이름을 부르짖는 소리가 곧 눈살을 찌푸리는 손전등 불에 의해 멎는다. 우영과 그가 끌어안은 산을 내려다보는 이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사람 살리라고 있는 게 경찰 아니야? 얘 죽어 가잖아. 빨리ㅡ, 빨리 조치 안 하고 뭐 해. 그러고도 너네가 사람이야?”

    “나와.”

 

    산의 앞을 가로막은 채 무릎을 바닥에 댄 우영이 애원하기 시작했다. 제발 살려 줘. 부탁할게. 제발, 제발……. 안광이 사라진 눈에서는 눈물 대신 빗방울이 흘렀다. 그는 강제로 몸이 일으켜져 포박되면서도 계속 한 문장만을 반복해 뱉었다. 살려 주세요. 얘 좀 살려 주세요…….

 

    “안 돼. 잠깐만. 산이가 아직ㅡ, 씨발, 놓으라고!”

 

    꼭 어미를 잃은 짐승마냥 산의 이름을 부르짖는 우영의 귀에 나지막한 비웃음이 맺혔다. 이미 죽은 놈 이름을 왜 자꾸 불러대. 뭐, 사랑하기라도 했어? 우악스레 뒤로 잡아끄는 느낌에 버둥거리던 우영이 급히 손을 앞으로 뻗었다. 조금만, 조금만 가까이 가면 닿을 것 같다.

 

    커헉ㅡ, ……

 

    그러나 그의 바람은 차마 맺어지지 못하고, 굵은 빗방울에 쓸려 내려갔다.

 

​

 

    여기가 어디인지, 내 옆의 사람이 누구인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따위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벌레 보듯 나를 내려다보며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높은 위치에 앉아 있는 판사도 한낱 스쳐 지나가는 장면에 불과하다. 움직일 때마다 손을 묶은 수갑에서 연신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고개를 숙일 때면 끈을 잃은 머리카락이 힘없이 앞으로 쏟아져 내린다.

    1110. 녀석이 주었던 이름은 주황색의 죄수복을 처음 입은 날 벅벅 지워져 버렸다. 그래, 그날. 비가 장대처럼 쏟아지던 날. 나는 그날에 모든 것을 빼앗겼다. 겨우 생겼던 이름도, 그 이름의 주인도.

    이름이 없는 나는 이제,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

 

 

 

    86 년 10 월 20 일, 향위엔 외 스무 명에게 반동죄를 비롯한 마약 거래, 살인, 폭력죄 혐의로 본 법정은 사형을 선고한다.

 

    우리의 일생은 대리석보다 진흙탕이 어울렸지.

 

    피고인은 주 교도소에서 당국에 의해 관리될 것이며 당국이 사형 일을 정할 때까지 수감될 것이다.

 

    흙 묻은 손끼리 맞잡는다고 한들, 이미 더러워진 몸이 깨끗해지지는 않는 법인데.

 

    중죄이니만큼 이에 변동사항은 없다.

 

    산아.

 

    이것으로 본 재판을 모두 마친다.

 

    보고 싶다.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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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도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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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푸딩입니다. 이 기나긴 원고가 드디어 끝이 났네요... ㅎㅎ 우선 다소 과격한 표현과 우울한 결말에 놀라셨을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참 오래 붙잡고 있기도 했고, 분량도 가장 많고... 여러모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글이니만큼, 못나고 아쉽지만 더 정이 가는 그런 친구인 것 같아요. 모쪼록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합작과 함께,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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