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zi
크랙커
숨을 몰아쉬며 급하게 눈을 뜨면 보이는 건 광활한 초원뿐이었다. 유난히 몸통 가운데가 두꺼운 나무들이 마치 뿌리가 하늘로 향한 것 마냥 자라나 있었다. 아니, 잠깐 내가 거꾸로 있는건가?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을만큼의 커다란 고통이 찾아왔다. 진득하고 뜨끈한 액체가 오른쪽 눈 위로 흘러 한쪽 눈만 겨우 뜬 채 몸을 움직이려 애썼다. 너무 많은 고통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당최 어느 곳이 얼마나 다쳤는지를 가늠이 되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내려 제 몸을 보자 여즉 벨트에 묶인 채 공중에 매달려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습관처럼 오른손을 움직이려했다가 어깨부터 끔찍하게 아파오는 탓에 왼손을 움직여 벨트를 풀기 위해 애썼다. 탈탈거리는 엔진소리와 어디선가 액체가 줄줄 흐르는 소리가 들려와 자꾸만 마음을 다급하게 만들었다.
겨우 벨트를 풀어내자 매달려 있던 몸이 땅바닥에 그대로 떨어졌다. 기계 파편에 찢어진 어깨부터 땅에 떨어진 바람에 한참을 그 자리에서 신음을 흘렸다. 언제 낡아빠진 경비행기의 엔진이 터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옆에 보이는 아무 가방이나 목에 걸고는 그나마 멀쩡한 왼팔로 몸을 질질 끌어 최대한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아 무슨 놈의 인생이 이래. 주마등이 스쳐지나가려는 찰나에도 감상에 젖을 시간 따위는 없었고 그저 있는 힘껏 왼팔을 뻗어 기어갔다. 양 다리가 심각하게 다쳐서 감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다른 상처의 고통이 너무 커서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이 정도면 엔진이 터지더라도 죽진 않겠다 싶은 거리만큼을 질질 기어온 우영은 그대로 등을 대고 하늘을 바라본 채 드러누웠다. 고작 한쪽 눈으로밖에 볼 수 없었지만 쏟아질 듯 밝게 빛나는 별과 은하수가 넝마가 되어 널브러진 제 꼴과는 전혀 다르게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 쿨럭.. 씨이발… 하늘 조온나 예쁘네….”
벌어진 입술틈새로 새어나온 목소리는 태어나 들어본 제 목소리 중에 가장 처참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점점 정신이 흐려지는 듯 했다. 멀리서 불씨가 타오르는 타닥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다른 소리가 끼어들었다. 풀이 밟히는 듯한 바스락 소리가 머리 위에서 났다.
아 그래. 내 인생이 존나 그렇지 뭐. 아프리카 땅에 끌려오다싶이 돈 벌러 온, 체구도 작고 마른 편인 동양인에게 대우는 말할 필요도 없이 끔찍했다. 그나마 악으로 깡으로 버텨온 인생의 마지막이 케냐 초원 한복판에서 맹수한테 뜯겨 죽는 거라니. 쳐맞고도, 돈을 뜯기고도, 굶어 죽기 직전까지 가고도 어떻게든 살겠다고 버텼던 보람이 없지 않냐. 아닌가. 돈 벌겠다고 코끼리 잡으러 가는 무리에 꼈으니 벌 받은 건가.
암만 그래도 다짜고짜 대가리부터 뜯기긴 싫은데. 우영은 가까스로 고개를 꺾어 제 머리 위쪽으로 다가온 생명체의 정체를 알려고 애썼다. 잡생각을 하느라 몰랐는데 언제 다가온 건지 코 앞에 커다랗고 두툼한 하얀 발이 보였다. 발톱을 드러내지 않아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우영은 천천히 엎어놓은 몸을 움직여 고개를 들었다.
유난히 노오란 호박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고 우영은 그 자리에 푹 쓰러졌다.
-
까끌하지만 커다랗고 축축한 것이 얼굴을 핥아올리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만, 핥아…? 뭐가 핥아…?
우영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커다란 입에 우영은 소리를 지르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콧김을 내뿜으며 제 온 얼굴을 닦아내듯이 핥고 있는 것은 사자였다. 그것도 백사자. 말 그대로 코 앞에 보이는 콧등에 우영은 비명을 지르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아내었다. 아니 나 왜 안 죽었지?
아니지 그게 아니고,
얘 나 왜 안 죽였지?
얼굴에 잔뜩 흐른 피를 닦아내고 있었던 것인지 두 눈이 멀쩡하게 잘 뜨였다. 얼굴을 집중공략하던 크고 까끌한 혓바닥은 점점 내려가더니 제 허벅지로 향했다. 온 몸에 멀쩡한 곳이 없었으니 아마 다리에도 상처가 났을 터였다. 와 근데 저렇게 까끌거리는 혀로 핥으면 엄청 따갑겠다는생각을 하는 동시에 찾아온 고통에 우영은 결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으아아아악 아프다고, 아프다고! 아프다고오오!”
벌떡 일어난 우영은 호박색 눈과 눈이 마주치고서야 우영은 퍼드득거리던 걸 멈추었다. 순간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우영은 천천히 팔로 뒤쪽을 짚어 슬금슬금 움직였다. 한 걸음 정도 겨우 떨어졌을까, 사자는 제 바지 자락을 슬쩍 물더니 다시 제 쪽으로 우영을 슥 끌어왔다.
아. 그래. 그러세요. 하고 싶은대로 하십쇼. 언제 잡아먹힐지도 모르는데 뭐.
우영은 결국 체념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다시 드러누웠다. 그러자 사자는 (아니 근데 원래 사자가 크기야 하겠지만 이렇게나 큰가?) 우영이 드러누운 걸 보곤 허벅지를 다시 핥아내었다. 꺼끌하고 축축한 혀가 닿을 때마다 오만상을 쓸 정도로 고통스럽더니 시간이 지나자 점점 느껴지던 고통이 사라져갔다. 우영은 문득 제대로 찢어져서 아마 다시는 멀쩡하게 제 구실은 못할거라고 생각했던 오른쪽 어깨의 상처에서 통증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 뿐이랴, 아까 분명히 벌떡 일어나 앉기까지 했는걸.
우영이 슬그머니 일어나 앉자 사자는 제 할일을 다 했다는 듯 그 자리에 털썩 앉았다. 하얗고 커다란 사자는 쌔근쌔근 숨을 쉬면서도 우영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눈치를 보다가 어깨를 돌려보니 통증이라곤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더듬더듬 얼굴을 만져보니 핏자국은 커녕 딱쟁이조차 만져지는 것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 사자를 쳐다보니 여즉 제 쪽을 보고 평온하게 숨만 들이쉬고 내쉬고 있었다.
“...너 그냥 보통 사자가 아니구나.”
어쩌면 알아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우영은 나즈막히 말을 뱉었다. 꿈뻑하고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는 사자에 우영은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내 팔 잘라먹으면 안된다 너.”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들어 사자쪽으로 움직이자 멀뚱히 있던 그것은 고개를 들어 우영의 손에 제 코를 가져다대었다. 따뜻한 콧김이 느껴졌다.
“...너 나 왜 살려줬어?”
콧등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물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백사자는 꼭 그림같았다. 너도 나 불쌍하게 산 거 알고 살려준거야? 우영은 찔끔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고 눈 앞의 사자를 연신 쓰다듬었다.
“고마워.”
우영은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온기를 이 신비한 사자에게서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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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는 꽤나 바빠보였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한 일이지만 어쨌든 사자가 상처를 치료해준 덕에 몸은 멀쩡했지만, 이동수단이라곤 하나도 없고, 간신히 건져온 가방은 누군가가 옷만 잔뜩 담아온 옷가방이었던 탓에 먹을 것이니 뭐니 하나도 없는 우영을 위해 사자는 제 은신처인 동굴을 나가 작은 동물들을 잡아오곤 했다. 부싯돌로 불을 피우는 법은 알고 있었던 덕에 우영은 배를 곪지는 않았다. 먹을 것을 물어오고 나서도 사자는 동굴 안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움직이는 시간이 더 길었다. 운이 좋아 백사자를 만난 덕에 죽지 않고 상처까지 치료를 받았다지만, 밖은 케냐의 초원. 또 다른 사자무리나 하이에나 무리를 만난다면 우영에게 이번에도 사냥감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평생 저 백사자랑 여기서 살아야되나.
여기서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살다가 죽는 게 더 나을까, 어찌저찌 구조돼서 다시 그 시궁창에서 사는 게 나을까. 우영은 동굴 안에서 혼자 한참을 생각했다. 저 사자가 나를 계속 살려둘까? 쟤는 나를 왜 살렸을까? 평범한 사자는 아니니까 상처가 치료됐겠지?
의문스러운 점이 한가득이지만 사자가 갑자기 사람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우영은 어느새 돌아와서 동굴 입구로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커다란 백사자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우영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하얀 사자는 꼭 제 곁으로 와 엎드려 잠을 청하곤 했다. 그래도 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처음 콧등을 만졌던 것 말고는 굳이 사자를 만진 적이 없었던 우영은 머릿 속을 가득 채운 의문들에 마음이 복잡해져 옆으로 폭 쓰러져 사자의 옆구리에 몸을 기댔다. 움찔하는 커다란 몸이 느껴져 다시 고개를 들까 하다가 그냥 그대로 몸을 기대 사자의 온기를 느꼈다.
“야, 사자야. 너 사자밖에 못해? 맨날 혼잣말 하는 거 심심해. 나 너무 많은 걸 바라나?”
암만 커다란 사자래도 고양잇과는 고양잇과인 건지 골골거리는 소리가 커다랗게 동굴을 울렸다.
“너한테 궁금한 것도 많은데. 너 솔직히 내가 하는 말 다 알아듣잖아. 아니야?”
따뜻한 사자의 체온에 노곤노곤해진 채로도 우영은 쉴 새 없이 쫑알거렸다. 동굴 벽에 울리는 목소리가 나른했다. 사자의 몸에 등을 기대고 눕다시피 앉아서는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이나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건 그렇고- 계속 사자야라고 부르면 다른 사자랑 구분이 안되니까, 이름 지어줄까? 어… 뭐할까? 별이? 아니 이건 너무 고양이 이름 같다. 그래도 넌 사잔데. 음… 너 산에 있는 동굴에 사니까 산이할까? 어때? 산이 이쁘다. 그치?”
“응.”
“그치? 네가 생각해도 이쁘지? 내가 이름같은 거 잘 짓는다니...까…?”
우영은 분명히 제 귀에 들려온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분명 하얗기는 똑같이 하얀데, 보이는 것은 사람의 몸이었다. 사자였을 때의 갈기색과 똑같은 하얀 머리칼을 한 호박색 눈동자는 제가 방금 ‘산'이라 이름 붙여준 사자의 것과 똑같았다. 우영은 얼이 빠져서는 손을 뻗어 ‘산'의 얼굴에 갖다대었다. 손끝에 만져지는 피부는 제 피부와 다를 바 없이 매끈하고 따뜻했다. 산은 날카롭게 쭉 뻗은 눈을 꿈뻑 감았다 뜨더니 우영의 손에 제 뺨을 대었다.
“...너, 너… 너 어떻게 했어?!”
“몰라.”
“왜 몰라! 네가 한거잖아!”
너, 너 말도 하네?! 바쁜 손놀림으로 산의 팔도 들춰보고 등도 한 번 보고 바쁘게 움직이던 우영은 산이 뒤늦게 나체인 것을 깨닫고는 슬금슬금 일어나 옷가방에서 옷가지를 꺼내 산에게 쥐어주었다. 누가봐도 싫다는 표정을 하고서 옷을 손에 쥐고 저를 쳐다보는 산에 우영은 사람이 됐으면 옷을 입어야지- 잔소리를 하며 직접 옷을 끼워 입혔다. 물론 아랫도리를 입힐 때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릴 수 밖에 없었지만. 맹수라 그런가. 역시. 음.
여전히 우영이 손수 입혀준 옷가지가 제 몸에 걸쳐져 있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지 아랫입술을 댓발 내민 채로 소매만 죽죽 늘리는 산은 저를 살려준 그 커다란 백사자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저 제 또래의 청년으로 보일 뿐이었다. 아니, 청년이 아니라 소년같기도 했다. 사람으로 변했어도 여전히 신비롭게 생긴 외모 탓인 것 같았다.
“산아.”
“응.”
“너 어떻게 변한거냐니까?”
“너가 사람 못 하냐며.”
“응 그랬지.”
“그래서 생각했어.”
“...그 다음엔?”
“그랬더니 사람 됐어.”
묘하게 짧은 단어들로만 말을 잇는 산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필요한 말만 콕 집어서 하는 게 어이가 없었다. 하긴 애초에 얘가 날 데려와서 상처를 치료해준 것도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치료해준 건데 뭐. 우영은 말도 안 되는 일에 굳이 머리쓰기를 포기했다. 아 그래. 산이가 그냥 평범한 사자는 아니었으니까.
“너 아마 산신령같은 거 아니었을까?”
“그게 뭐야.”
“한국에 그런 게 있어. 음… 너도 아마 여기 산신령같은 거였나부다.”
“난 산이야.”
“그래 내가 지어줬잖아. 그 이름.”
“너는 영이야.”
“난 우영이야.”
“아니 영이야.”
오랜만에 사람과 말을 섞는 게 기뻐서 그저 좋기만 했는데 계속 대화를 해보니 어째 산의 고집이 장난이 아닌 듯 해 우영은 그냥 맘대로 하라는 듯이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그 날 밤은 둘이서 종알종알 대화를 나누다가 나란히 마주보고 누워 잠에 들었다. 산은 그리 길게 문장을 잇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은 전혀 아니었던지라 우영은 여지껏 궁금했던 것들을 산에게 물어보았다. 질문의 답들이 워낙 심플하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럼 이거까지만 물어보자. 나 왜 구해줬어?”
“...영이는 진짜로 사냥하고 싶어서 따라온 거 아니잖아.”
“...어?”
“영이는 배고파서 따라온 거잖아.”
그리고 영이 살고 싶었잖아. 자세하게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영은 아마 산이 다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내 인생에 처음으로 뚝 떨어진 구원이었던 거구나. 나 불쌍하게 살았다고 살려준 거구나. 우영은 괜히 코끝이 시큰해지는 기분에 부러 더 장난스럽게 대답하곤 이제 자자며 눈을 감았다.
“맞아. 나 완~전 오래 살거야.”
네가 살려줬으니까 더 오래 살아야지.
뱉지 못한 한 마디가 입 안을 맴돌았다.
-
산이 다시 사자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하는 걱정도 무색하게 다음 날 아침 우영이 눈을 떠서 본 건 커다란 백사자가 제 앞에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나가게?”
“...”
대답없이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데도 그냥 어쩐지 뭐라고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잘 다녀와-”
우영이 손을 흔들자 사자는 코끝을 우영의 손 쪽으로 들이밀었다. 처음에 쓰다듬었던 것처럼 콧등을 슬슬 쓸어주니 산은 눈을 감고 잠시 우영의 손길을 느끼다가 이내 터벅터벅 동굴 밖으로 나섰다. 이제는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산의 존재에 이쯤되면 그냥 제가 혼자 동떨어져 간신히 살아난 탓에 정신이 나간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우영은 한 번 죽다 살아난 몸으로 또 굳이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동굴에 앉아 또 다시 산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생각해보니까, 너 나갈 때 나도 데리고 나가면 되잖아.”
우영이 손질해 불에 구운 토끼인지 좀 커다란 쥐인지 알 수 없는 고기를 먹다가 온 얼굴에 그을음이 잔뜩 묻은 산을 보고 제 소매를 빼 벅벅 닦아주며 우영이 말했다. 넌 피부가 하얘서 뭐 묻으니까 더 잘 보인다- 산은 우영이 무슨 짓을 하든지 그저 얌전히 고기가 들어있는 입만 오물거렸다.
“여기에 계속 있는 게 제일 안전한 건 알겠는데, 솔직히 너무 심심해.”
“나가고 싶어?”
“동굴에만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
“...날 떠나고 싶은 거야?”
고기를 찔러놓은 꼬챙이를 툭 내려놓으며 묻는 말투가 곧 울음이라도 터뜨릴 기세라 우영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음… 산아, 내가 생각해봤는데. 네가 날 살려줬잖아.”
“...”
“그래서 그냥 네가 하자는대로 하려고.”
“...”
“어차피 사람들 사는 데로 돌아가봤자, 나는 또 거지같은 인생이나 살겠지. 그래서 네가 돌아가라고 하면 갈거고, 그냥 네 옆에 있으라고 하면 있으려고.”
“...그럼 안 돌아가?”
“돌아가면 뭐해. 그냥 나 살려준 너랑 둘이서 지지고 볶고 그러다가 죽지 뭐.”
“지지고 볶는 게 뭐야?”
“그런 게 있어 바보야.”
“그럼 나가볼래?”
“...지금?”
혹여나 재수없게 눈에 띄어 맹수들의 사냥감이 될까 걱정되어 동굴 입구까지나 겨우 나와봤던 우영은 새삼 케냐의 초원이 정말 드넓게 펼쳐져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산의 손을 잡고 올라온 바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그야말로 대자연의 위대함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별들이 강을 이뤄 쏟아질 것처럼 가까이 보이는 하늘과 저 멀리 뻗어있는 지평선. 그 땅 위에 운이 좋게도 여즉 숨쉬고 있는 제 자신이 정말 작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면 보이는 산의 옆얼굴은 어쩐지 소년의 것이라고 하기엔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고, 동시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같기도 했다.
너는 어떤 삶을 살았느냐 묻고 싶은 것을 참고 어느 새 저를 마주보고 있는 그의 입술에 지긋이 입을 맞췄다. 입맞춤이라는 것이 어떤 걸 의미하는지 산이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우영은 알지 못했지만, 왠지 산이라면 그저 다 받아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면 산은 그 확신에 기꺼이 부응해주었다. 왜인지 우영은 이것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새로 조심스레 들어서면 마치 새로운 것을 처음 맛보는 양 제 까끌한 혀로 우영의 것을 쫓는 폼은 꼭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 같았으나, 동시에 본능적으로 우영의 허리를 끌어 제 몸에 더 가까이 닿게 하려는 손짓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우영은 산에게 매달리듯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떨어지고 나면 저 예쁜 입에서 나올 말이 어쩐지 예상이 가서.
결국 떨어진 입술새로 뜨끈한 숨이 오가고 우영은 산의 어깨에 이마를 대었다.
“영.”
“응.”
“이름 지어줘서 고마워.”
“너는 나 살려줬는데 뭘.”
“네가 내 옆에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 내 반려로.”
“...”
“근데 영, 인간은 인간이랑 살아야 해.”
“...너는, 너는 혼자 있어도 괜찮아?”
“나는 네가 상상할 수 없이 긴 시간을 혼자였어.”
“...다시 돌아가서 잘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
“너는 잘 할 수 있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영은 할 수 있어.”
“...사랑해.”
“나도 사랑해.”
“나 잊지마.”
“절대 안 잊어.”
절대 잊지마- 참지 못하고 끝내 울음기가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볼 위로 눈물길이 죽죽 흐르자 제 상처를 치료해주려던 때처럼 까끌한 혀가 눈물이 지나간 흔적을 바지런히 닦아내었다. 그냥 옆에 있으면 안되냐고 소리치며 울고 싶기도 했지만 우영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산의 얼굴을 한 번 더 눈에 담고 한 번 더 손으로 만져보았다. 산은 우영을 품에 안고 마치 엄마가 아이를 재우듯이 천천히 토닥였다. 눈물이 고인 눈이 서서히 감기고서야 토닥이던 손이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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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이 감았던 눈을 떴을 때는 다 낡아빠진 허름한 병원 침상 위였다. 국립공원 경계에 세워둔 철조망 앞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 손에 잡혔던 보드라운 하얀 머리칼의 촉감이 손 안에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제 기억에는 남아 있는 일들을 다른 이들에게 말할 수 없어서 우영은 그저 눈물만 죽죽 흘려보내었다.
고물 경비행기에 탔다가 사고가 났던 걸 병원 측 직원들에게 말하자 어떻게 연락이 닿았는지 여행사측에서 보상을 해주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 그들이 말한 보상은 그렇게 엄청난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가 태어나 단 한 번도 쥐어보지 못한 금액의 돈이었다. 그들이 받겠느냐고 물었고, 우영은 그러겠다고 했다. 그 돈을 받아서, 산이 말한대로 다시 잘 살아내기로 했다. 산이 귓가에 나지막히 속삭여주었던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믿고 우영은 다시 살아보기로 했다.
말만 고향이지 어렸을 적 이후로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었던 한국 땅에 다시 발을 들였다. 제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하는 경험들을 하고 싶었다. 멀쩡하게 대학도 다니고, 친구도 만나고, 놀기도 해보고 싶어서 우영은 그것들을 하나씩 해나갔다. 처음엔 제 것이 아닌 것처럼 어색하고 적응이 안 될 것만 같았던 일상이 어느 샌가 진짜 일상이 되어갔다. 그러나 제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옥탑방에 돌아가 별이 잘 보이지 않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면 산이 있을 하늘의 쏟아질 듯한 별들이 생각나 가슴 한켠이 허했다. 매일 하늘을 보며 산을 불렀다. 산아 나 안 잊었지. 그러고 있노라면 언젠가는 산이 제 옆에 와서 속삭여줄 것만 같았다.
영, 역시 잘하고 있네-하고.
눈을 감고 부는 바람을 느끼다가 숨을 들이쉬었다. 서울의 밤하늘치고 유독 별이 선명하게 보였다. 우영은 문득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뒤를 돌았다. 순식간에 차오르는 눈물때문에 흐릿하게 보이는 잔상이었지만 우영은 그게 누구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여전히 하얀 머리칼, 그 때와는 달리 꼭 대학생같은 옷차림, 그리고-
“영이 네가 인간이라서,”
“내가 인간이 돼서 왔어.”
“네 옆에 있으려고 왔어.”
나 안 안아줄거야? 하고 말갛게 웃는 얼굴에 우영은 한달음에 달려가 그 품에 안겼다.
구원처럼 또 다시 제게 돌아온 사랑은 하이얗게 눈이 부셨다.
*Penzi : 케냐 현지어인 스와힐리어로 ‘사랑’이라는 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