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를 울게 하는 건
왱
우영은 자신을 감싸며 눈도 감지 못한 채 죽어나갔던 한 아이를 안다. 어서 떠나라고 했던가. 아무리 기억하려 애써도 우영의 몹쓸 기억력은 그 아이의 얼굴과 희미한 목소리 외엔 추억도, 그 무엇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살아있고 숨을 들쑥날쑥 들이마시기도 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는 게 그리 괴로운 건 줄 알았다면 우영은 살려고 시도조차 안 했으리라. 그러니 우영은 자신을 위해 죽겠다는 고기 방패 같은 다짐, 죽도록 원치 않아서 죄가 쌓여가는 이곳, 지옥에서 살아간다.
...
[영아, 어디야.]
끈덕지게 붙어오는 피딱지들과 엉켜오는 차디찬 손들을 옷에서 때어낼 때 쯤 금이 간 액정 사이로 눈이 아려오는 빛이 들어왔다. 아, 씹. 임무 나온 거 알면 망하는데. 우영이 재빠르게 무언가를 보내자 더 쨍한 소리가 우영의 귓가를 관통했다. 전화 왔네, 받지 말까.
[받아.]
“왜.”
“보스가 임무 나가지 말랬잖아.”
“안 나왔어. 쉬는 중이랬잖아.”
“집에 없는 거 다 아는데, 뭘. 어디야.”
“화 낼 거야?”
“내가 어떻게 화를 내. 빨리, 어디야.”
“얼마 전에 임무로 올라온 S조직 건. 거기 지하 주차장.”
“다친 거는.”
“음. 허리 쪽은 이미 실밥 터진 거 같은데?”
“데리러 갈게. 가만히 있어.”
“어차피 움직이지도 못해, 올 때 붕어빵.”
야, 정우.. 산의 잔소리가 더 심해질라 서둘러 전화를 끊은 우영이 그제야 구석 아스팔트에 주저앉았다. 오른쪽 허리에서 울컥울컥하며 조금씩 옷 밖으로 새어나오는 피가 손에 가득 묻어오는데 모를 리가 있나. 하아. 조금 추워진 날씨에 우영의 입에서 나온 하얀 김들이 우영의 숨을 조금씩 가빠지게 했다. 이번에야말로 죽을 수 있나. 뭐가 그리 웃긴지 무언가 우영의 목에서 올라오려는 와중에도 우영의 입에선 피식하고 실없는 웃음만 나왔고 울렁이던 목울대가 깊게 들이마시다 내뱉은 핏덩이들에 우영은 그저 살아있음을 느꼈다. 눈앞에 쓰러진 저 사람들은 나만큼 괴로울까. 당신들은 편히 살아갈 수 있나. 갈라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피에도 아랑곳 않고 웃어대던 우영이 어느새 제 앞에 지는 그림자를 보려 고개를 들자 우영의 연보라색 머리와 대비되게 어두운 초록 머리가 눈을 맞췄다. 일단 치료부터 하러가자, 고개 이리로 기대. 옷깃에 배인 따뜻한 붕어빵 냄새가. 나른하게 전해져오는 산의 목소리가. 제가 지켜주던 꼬맹이는 어디가고 어느새 저를 안아오는 산이 따뜻해서 우영이 살그머니 눈을 감았다. 산아, 난 죽기 싫어. 알아, 살 수 있어. 살 거야. 우영은 손에 가득 힘을 주고 있던 자신이 아프다는 걸 부드러운 시트에 몸을 뉘였을 때 알았다. 아, 난 또 살 수 있겠구나.
...
사람은 무언가에 기대고 싶어 하고 의지되고 싶어 한다. 소속감, 신뢰를 사랑하고 대가를 열렬한 지지로 삼는 그들을 의심하지도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함을 믿고. 부정하는 사람은 배반으로 간주한다. 우영은 그저 살기 위해서 모든 걸 가린 채 믿었다.
“여기다가 간절히 원하는 걸 빌면 하느님이 듣고 계시다가 이루어 주실 거야.”
식사 한 끼에는 성경 한 장. 기도 시간에 또 한 장. 자기 전에도 한 장. 수많은 업보를 지우고 바른 어른으로 자라나게 도와준다는 믿음은 어릴 적 우영의 마음엔 단 하나의 글자도 들어오지 않았다. 신은 개뿔. 신이 있었다면 진작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겠지. 입고 있는 옷보다 더 부드러워 보이는 책의 가죽을 뜯어버리고 싶을 만큼 우영은 가증스러웠다. 말을 붙일 상대도, 정을 나눌 상대는 더 역겹게도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눈이 되어 믿음을 저버린 순간 또 다른 눈이 그것을 처벌하려 했으니. 우영의 옆 침대들의 주인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었고 그 중엔 목소리 한 번을 못 듣고 사라진 애들이 태반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인지조차 하지 못할 때에 들어와 눈칫밥만 잔뜩 먹은 우영은 이름 없는 고아원의 가장 오래 있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저보다 한참 어린 아이들은 얼마 안 돼서 늘 그랬듯이 잊혀졌고 속으로 얼굴을 익혀둔 아이들도 시름시름 병을 앓기 일쑤여서. 우영은 위로를 건넬 처지도 아니고 병원을 데려갈 수 있을만한 힘을 가진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기에 꽃이 피었다가 눈이 내릴 때까지 그저 낡아가는 성경책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쯤 되면 날 여기서 벗어나게 해줄 때가 아니냐고.
매일 밤을 울어대던 우영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가다가 어둡게 변해갈 때조차 신은 응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질 수 있는 희망조차 없애버리 겠다는 것처럼 귀를 막는 우영의 손을 때버려 속삭인다. 목숨보다 귀히 여기라는 성경책을 품에 안고 잘 때 속삭이는 구절들이 제 마음보다야 진실하였고 흐려진 글자들을 줄줄 외워 내뱉는 저의 입이 더 값지다고. 모르는 것이 가장 좋을 때이고 죄를 지은 걸 알게 된 순간 잊으리라. 외면하고 잊어야한다. 면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눈을 꼭 감은 우영은 무슨 소리가 들려와도 그저 못 다 읊은 구절을 속삭였다. 용서해주소서. 제발.
오늘부터 우리와 함께 할 아이들이다. 잘해줄 수 있지?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듣기 싫은 쇳소리가 울려 퍼지고 순수했던 어릴 적 우영과 닮은 아이들이 왔다. 젖도 못 뗀 채로 형제 품에 안겨 있는 아이부터 삐쩍 말라 헐렁한 옷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잡고 있어야 하는 아이까지. 비틀거리며 성경책을 꼬옥 쥐고 있는 폼이 우영의 있지도 않은 동정심을 자극하는 불편한 기분이라 저의 비워진 옆 침대들에 올 아이들은 아니길 바랐다.
산. 바다. 퀴퀴한 먼지들 사이로 들어온 우영의 옆으로 온 한 형제. 우영도 마른 편이었지만 그런 우영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두 아이는 말랐었다. 그래봤자 얼마 못가 송장 되겠지. 씹기도 힘든 딱딱한 빵을 콰드득 씹어 제 동생에게 넘겨주는 산을 보던 우영은 조금 물렁한 부위를 위주로 제 빵을 잘근잘근 씹었다. 정 많은 미련한 새끼.
그날 밤 산을 데려가던 원장의 손길에도 우영은 그저 귀를 막을 뿐이었다. 멍청한 원장이 산과 바다의 얼굴도 구별 못 해 바다의 침대에 누워있던 산을 데려간 것도 다 아는 사실이었는데. 바다야 거기 추워, 형 자리로 와. 라며 제 동생을 옆 침대로 바꾼 것도 우영은 다 보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늦은 밤 다리를 절뚝이며 바다의 이불을 덮어주는 산의 미래를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게 왜 동생 대신 가가지고. 구하지 못할 거면 시작도 말아야지.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우영은 매일 밤을 다시 울었다. 난 죄 없어.
...
지독한 약품 냄새들. 익숙한 천장과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을 뒤로 숨을 들이마시면 약품 냄새사이 희미한 산의 향이 들어와 편히 기대게 한 것도 잠시, 덜거덕 소리와 함께 조금 지쳐 보이는 듯한 산이 들어왔다. 또 저 눈이다. 속을 알 수 없는 저 눈빛.
“몸은 괜찮아?”
“그럭저럭.”
“보스가 너 당분간 못 나가게 하래.”
“임무 잘 하면 된 거지. 걱정도 팔자네, 보스.”
“안 그래도 닥터가 상담 받고 가래. 걱정된다고.”
“상담은 지랄.”
“이번에도 피하면 각오하라는데.”
“가봤자 똑같은 소리나 해댈 거면서.”
“우리 둘이 떨어지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악이래. 죄가 되고.”
말하는 와중에 떨려오는 손이 우영의 감정을 북받치게 만들었다. 한 단어, 한 단어 입에서 내뱉기가 힘들어서 눈을 감으면 희고 따뜻한 손이 덮어왔다.
“산아.”
“응.”
“난 아직도 웃고 있는 바다가 생각나.”
“나도.”
“닥터가 병이래. 지나간 사람을 잊지 못하는 거. 너한테 광적으로 집착하는 거.”
어느새 고인 우영의 눈물이 떨어질라 부드럽게 우영의 눈꺼풀을 누른 산이 천천히 껴안았다.
“사람은 누구나 병을 안고 살아. 내가 그런 것처럼.”
“산아, 난 살고 싶어.”
불그스름하게 물든 눈가가 푹 젖어오고 산이 꼼지락거리던 작은 머리통을 뒤로 눕혔다. 우영이 저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딸려오는 말들이 산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최 산. 저의 이름인데 왜이리 아픈지. 언제든 널 위해 죽어주겠다는 말을 하면 위태로운 우영이 더 위태로워질 까봐. 절벽으로 내모는 자신을 아예 버려버릴 까봐. 산은 살고 싶다는 우영의 말에 그 무엇도 해줄 수가 없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살아서 곁에 있어야만 죽지 않을 테니까.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는 자비를 내려준다던 신은 산의 손에 죽었으니 산은 살기 위해 믿지 않았다.
...
꽤 오래가네. 짧을 때는 이틀을 채 못 버티고 죽던 아이도 있었으니까. 아는 거라고는 산과 바다라는 이름뿐이었지만 왜인지 우영에게서 오래전에 죽은 동정심이 살아난다고. 그래서 미친 척하고 언제나 그랬듯이 동생에게 빵을 씹어 주는 산에게 제 몫으로 나온 빵 중 가장 부드러운 걸 내밀었다. 애초에 원장은 산에게 제대로 된 빵을 줄 생각이 없으니까. 우영 자신만 알고 있는 사실은 꼬옥 숨긴 대가로 나온 헛된 빵 쪼가리 아니겠나. 아무 말 하지 않고 빵을 넘긴 우영이었지만 그때의 산의 눈은 참 슬퍼보였다.
“고마워. 그…….”
“정우영.”
“우영아.”
“응.”
가장 딱딱한 부분만 씹던 산이 우영의 빵을 조심스레 베어 물었고 우영도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금방 삼키면 허기가 빨리 돌아오니까. 최대한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우영의 작은 팁이었다. 산의 옆에서 볼 가득하게 먹고 있던 바다도 우영을 보고는 천천히 씹어 먹는데 처음으로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눈이라도 마주치지 말지. 저와 눈이 마주치곤 제 형처럼 예쁘게 웃는 모습을 보았을 때가 우영은 더 괴로웠다. 죗값을 치르는 것처럼 목이 절로 메는 기분에 등을 돌려 작은 기침을 연거푸 해대면 우영의 빵을 받아들던 손이 불쑥 내밀었다.
“여기. 물.”
“…….”
쓸데없는 정은 죄만 늘어난다. 유일하게 배운 것인데 우영은 명백하게 어기고 있음을 알았지만 어쩌겠는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그들이 옆에 있는데. 어차피 용서받지 못할 정이라면 우영은 마지막으로 나눠보기로 했다. 산에게서 천천히 받아든 탁한 물이 우영의 눈에는 더없이 맑았으니 우영은 기꺼이 물을 마시려 고개를 젖혔다.
“산.”
“어..어?”
“오늘 밤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일어나지 마. 알았어?”
“왜..?”
“대답만 해. 알았냐고.”
“응..”
어차피 일어나지 못하겠지만 상관없겠지. 이걸로 된 거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우영이 산의 왼쪽 팔에 든 멍이 보였다. 둥그렇게 피멍이 들 걸로 보아 원장실 책장 옆에 있던 화분이겠지. 한 번 지은 죄는 돌이킬 수 없다 했고 나를 버린 신은 자비를 주지 않는다. 여전히 바다를 제 침대로 보내던 산을 한 번 보고 우영은 다시 제 품에 낡은 성경책을 안았다.
우영아, 가야지. 겨우 눈을 붙인 틈에 찾아온 가짜 신. 곤히 자고 있는 산과 바다를 보고 우영을 한 번 보더니 만족스러운 듯 웃어댄다. 모든 방의 불이 꺼져 있는 밤. 매일 밤 우영이 귀를 틀어막고 성경을 외우던 그 시각. 저의 머리를 쓰다듬는 원장의 손길에 우영은 혀를 콱 깨물고 싶을 뿐이었다.
“아이들을 다 재웠더구나. 산이랑 바다가 맘에 든 모양이야.”
“그럼 안 건드리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산이랑 바다의 자리를 바꾼 것도 너니? 산이는 자기라 하던데. 셋 중에서 그런 짓 할 만한 사람은 우영이 너밖에 없잖니.”
산의 몸에 상처가 많은 것도 그것 때문이었나. 하여간 미련한 새끼. 우영의 양 어깨를 잡은 손의 악력이 강해질 때 쯤 우영의 몸도 덜덜 떨려왔다. 유일하게 쥐고 있는 성경책까지도 떨림이 전해졌을까 우영과 눈을 맞춘 가짜 신은 진정한 악이었다.
“걔네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래, 그렇겠지. 우영아 신은 죄를 짓지 않은 자만 어여삐 여겨 자비를 내려주신단다. 아무래도 우영이 너는 죄를 씻을 필요가 있겠구나.”
매일 밤 우영이 귀를 틀어막는 동안 악은 이 말만을 반복했겠지. 성별이든 나이든 상관없이 악의 손을 거쳐 가지 않은 자는 없다. 그것이 몸의 상처가 되었든 마음의 상처가 되었든 우영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유리 조각들의 아픔보다 나올 때 문을 더 확실하게 닫고 나오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의 고통이 더 컸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아직도 다 말하지 못한 기도문이 우영의 머릿속에서 온통 가득해서. 우영은 울음 때문에 끊어지는 호흡에도 빌어먹을 신을 향한 찬양만을 채웠다. 당신을 믿지 않아. 아냐, 믿고 있어. 믿을게. 그러니 누가 있다면 제발 나 좀 도와줘.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살고 싶어서 믿는다는 게 그리 큰 잘못인가. 죽지 않기 위해 눈앞의 악을 처벌한 것이 죄인가. 우영은 숨통을 조여 오는 눈앞의 욕망이 흉악스러워서, 한 손이 내민 물이 너무 따뜻했던 마음에 손 끝에 잡히던 성경책을 있는 힘껏 던졌다. 머리는 지끈지끈 하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데 느껴지는 아픔이 우영을 살아있게 했고 우영에게 건네던 담담한 말이 죽지 말라고 다독이는 것 같았다. 고마워, 우영아. 아, 살고 싶다.
...
"네가 원하는 대로 최 산 스나이퍼로 배정해주긴 했는데, 네 몸 상태로 작전 수행 가능하겠냐. 난이도 별 5개야. 까딱하면 뒤져. “
“그래서 닥터한테 부탁한 거잖아요. 뒤지려면 걔 옆에서 뒤지는 게 낫지. 타지에서 혼자 죽으라고요?”
“보통은 차라리 혼자 죽겠다고 하지 않나.”
“산이 걔는 안 돼요. 저 없으면. 하루도 못가서 미칠 걸.”
“그래서 내가..”
“상담 받으라고요? 가족도 아니면서 챙기는 게 이상해요?”
“정우영. 너 핀트 나가는 거 항상 최 산 인거 알아 몰라. 네 과거의 트라우마가 최 산 그자체야. 계속 가다간 진짜 미쳐. ”
“그럼. 이제 와서 산이 걔를 버리라고요?”
“버리라는 게 아니지. 좀 내버려두란 말이야. 같이 고아원에서 자란 거 때문에 아끼는 건 이해하는데…….”
“아뇨, 닥터는 이해 못해요. 둘만 남은 그 심정을 알아요?”
“우영아.”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지금 너희 둘이 하는 행동이 사람 같아? 집착하고 과거에 계속 머물러 있잖아.”
“사람 죽이면서 버는 돈으로 사는 게 우리인데. 사람 같은 행동은 무슨. 말 똑바로 해요. 그리고 고아원에서 자란 게 아니라 살아남은 거예요. 우리 둘 빼곤 다 뒤져나갔으니까.”
끊어요, 피곤해. 전화를 끊어 아무렇게나 던진 우영이 빈 병실에 스르륵 주저앉았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마리아여. 자비를 베푸소서. 이리저리 웅얼거리던 우영이 다시금 웅웅대는 전화기에 실없이 웃었다. 산이, 화내려나.
“응.”
“임무 못 나가겠다고 해. 얼른.”
“중요한 임무라서 이미 선발조로 승인 났을걸.”
“우영아.”
보지 않아도 굳어졌을 산의 표정이 생각나 괜히 웃음이 났다.
“우영아, 진짜 죽을 수도 있어.”
“그러다가 너 혼자 거기 가서 개죽음 당하면 난 어떡하라고.”
“까짓것 맞지 뭐, 이미 죽을 뻔 한 목숨 상관없어.”
“최 산.”
“네가 죽는 것보다야 나아.”
말을 더 건네기도 전에 끊긴 통화가 야속했다. 산의 입에서 그 말만은 안 나오길 바랐는데. 산이 미웠다. 산의 죽음에 너무나 약한 자신을 알면서 잘도 그런 말을 내뱉는 산을 우영은 너무 사랑했다. 마음속에서 미처 떨쳐내지 못한 죄책감 덩어리들이 다시 우영의 심장을 내리 누르는데 그럴 거면 그때 신을 죽인 건 네가 아닌 나였어야 해. 내게 죄를 늘리 지마. 산아.
...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가 보통 일이 아니라는 듯이. 따가워지는 눈을 뒤로 나갈려던 우영의 머리채를 잡아끈 건 한쪽 얼굴을 부여잡고 있는 원장이었다. 머리가 송두리째 뽑히는 기분에 잘 흐르지 않던 눈물이 다시금 흘러 앞이 뿌얘질 때쯤 저를 향해 날아들던 유리 조각들보다 훨씬 많은 유리 조각들이 흩날렸다. 소리를 지르는 원장을 뒤로 아무것도 보이지도, 잘 들리지도 않는 우영을 감싸 안은 건 산의 손이었고. 귀를 틀어막은 채 넋이 나간 우영을 한참이나 다독여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덜덜 떠는 우영의 머리에 서둘러 얇은 담요를 둘러준 산은 천천히 우영을 안아 올렸다. 옆에 보지 마. 내 어깨만 보고 고개 숙여. 팔 두르고. 잠시 마주친 산의 얼굴 구석에 튄 누군가의 피는 산의 것만이 아니면 된다고 믿었기에 우영은 천천히 고개를 기대었다. 잘했어.
뒤에서 조그맣게 소리 나는 원장의 발악도 들리지 않았다. 결국 모든 인간의 죽음의 마지막은 살려달라는 것이겠지. 욱신거리는 온 몸을 감싸 안은 담요와 산의 손이 그저 따뜻했을까 우영은 아무것도 말하지도 묻지도 않았다. 많은 아이들이 있는 고아원에서 왜 그들만 바삐 움직이고 있는지, 어떻게 산이 깨어나 우영에게로 왔는지도. 알아도 묵인해야 하고 저버린 믿음보다 무서울 건 없었으니까. 차갑게 다가오는 어둠을 피해 달리는 산의 어깨가 훨씬 믿음직스러웠다. 그래, 저건 악이야.
...
헝가리의 날씨는 흐렸다. 비가 올 듯이. 비가 오는 날은 시끄러운 소리가 없어지기 마련이라서 우영이 좋아하는 날씨기도 했다. 작전명 우는 사자라. 이름 짓는 것도 괴팍하지.
“산, 엄호 위치.”
“제로, 현재 타깃 보여.”
“제로 숫자는.”
“타깃과 그 주위 *까치 다섯. 바로 옆에 있는 하나만 비키면 쏠 수 있어.”
*까치: 타깃 주위에 있는 사람을 일컫는 은어.
“타깃 외에는 쏘면 안 돼. 대기.”
“건물 외벽 세지도 않은 거 같은데 쏘면 안 되냐. 저 옆에 있는 새끼 하나만 비키면 될 거 같은데. 산, 그냥 쏘자.”
“답답해? 엄호로 바꿔줘?”
“아니 됐어. 아, 시발.”
“제로! 정우영!”
그때였다. 타깃의 품에서 나온 소총과 동시에 저를 정확히 겨누는 총구를. 꼼짝없이 죽겠구나 하고 눈을 감으면 또다시 우영의 머리를 감싸 안는 하나의 손길이 이어졌다. 안 피하고 뭐해, 영아. 작은 반동만이 이어지는 와중 우영의 귀에는 산의 데이터 수치가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삐 삐 삐 하고. 떨어지는 맥박. 묻어나오는 피. 산의 창백한 얼굴도.
“제로! 산 수치 왜 이래. 보고해!”
“발음 및 수신 오류로 제로 통신 불가능. 제로 통신 불가능.”
네 트라우마가 최산 그 자체야. 정말로? 내가 산에게 악이어서. 돌이킬 수도 없는 죄를 지은 죄인이라서? 우영은 한계를 향해 소리치는 데이터수치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떡하지. 내가 죽는다는 선택지 이외에 다른 건 없었는데. 조금씩 쏟아지는 비가 산의 검붉은 피를 더 묻어나오게 해주었을까 우영의 머릿속에 원망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망할 신아. 내가 널 믿는 게 아니었어. 저 멀리서 달려오는 의료팀이 산을 들것에 옮길 때도 우영은 초점 없는 눈이었다.
...
“바다야!”
어깨에 담요를 덮고 조용히 고아원을 보고 있던 우영을 향해 뛰어든 바다도 똑같았다. 덜덜 떨리는 한 손으론 저의 머리를 붙잡고 남은 한 손으로 저에게 총구를 들이밀던 원장이 쏜 고통을 받아내야 할 우영의 몫을 대신 받아냈으니까. 단 하나의 비명도 없었다. 그저 푸욱 하고 쓰러진 아이를 받아낸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 색색거리는 숨소리들 사이로 끊겨 들리는 형소리가 우영의 눈을 흔들리게 했다.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나약한 우영과 눈이 한 번 마주쳤다는 이유로, 그토록 사랑하는 형에게 부드러운 빵을 준 사람이라는 이유로. 우영은 바다의 품에 안겨있었다.
“내가 밉지, 산아.”
“아니.”
“내가 네 가족을 죽인 거야.”
“우영아.”
“응.”
“왜 매일 밤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깨어나지 않았어?”
“그건 왜 물어봐.”
“대답해줘, 알고 있잖아.”
“저녁..식사에 수면제가 들어있어서..아무리 큰 소리가 나도 못 일어나. 딱 한 명거만 빼고.”
“원장이 그날 밤 데려갈 아이의 식사?”
“보통 새로 들어온 아이들이 그랬어. 하루 아니면 이틀 안에 못 견디고 죽어나가거든. 넌 어떻게 왔는데.”
“눈이 떠지더라. 이 시간이면 올 때가 아닌가 하고.”
“산아.”
“응.”
“알아도 모른 척. 그저 믿어야 살아. 그래서 믿었어. 매일 밤 잠을 설쳐도 내가 아닌 누군가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죄를 짓게 될까 두려웠어.”
“우린 잘못한 거 없어. 살려고 발버둥치는 게 죄는 아니잖아.”
처음으로 들어본 말. 죄가 없다는 게 이리 슬플 줄이야. 절대 들어본 적 없을 말이라 생각했는데. 너무 기쁜데 슬퍼서. 우영은 그저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응, 우린 잘못 없어.
우영의 눈에 가득 담긴 고아원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늘 평소와 같이 고요한 풍경이지만 무언가 갑갑하던 속이 뚫린 기분. 우영은 조용히 발아래 있는 성경책을 챙겨 뒤를 돌았다. 이제야 살아있구나, 난.
...
“왜 울고 있어, 영아.”
뜬 눈으로 하루하루를 보래고 마른 것 같은 눈물샘에서 방울방울 떨어질 때 쯤 그리웠던 목소리가 우영의 귓가에 다시 들려왔다.
“네가 바다처럼 그냥 죽을 까봐. 나 감싸려다 정말로 가버릴 까봐 무서워서.”
“그래서 매일 성경을 읽었어?”
“살기 위해 믿어왔으니까. 넌 죄 지은 거 없잖아. 근데 데려가면 안 되는 거니까.”
산의 병원 복이 다 젖어들 때까지 울면서 기도하던 우영의 말을 다 들은 산이 웃어보였다.
“우영아, 넌 신을 얼마나 믿어?”
“무슨 소리야, 그게.”
“그냥. 죽어가는 와중에 네 기도만 들리더라고. 이참에 나도 한 번 믿어볼까 했어.”
“최 산 진짜.”
“영아.”
“..응.”
“죄책감 갖지 마. 바다가 죽은 건 네 탓 아니니까. 바다가 총을 맞은 것도, 내가 총을 맞은 것도 모두. 그저 살기 위한 또 다른 발버둥이었을 뿐이니까.”
“산아…….”
“응.”
“이제 뭘 어떡하지.”
“뭘?”
“그냥. 죄 없이 살아가는 법이라 해야 될까.”
조금씩 떨리는 우영의 손을 천천히 덮어오다 꽉 잡은 산이 우영의 흐트러진 머리를 정돈해주었다.
“살아가면 돼. 해왔던 것처럼. 모처럼 헝가리 왔는데 다 나으면 놀러갈까?”
“뭐 보고 싶은 거 있어?”
“세체니 다리에 사자상. 사자상 보러 가야지.”
“어차피 못 우는 앤데 뭐 하러.”
“그래도. 의미 있잖아. 혀가 없어서 울지 못하는 사자. 우리 같아서.”
“곧 바다 기일인데 여기서 보내고 갈까.”
“헝가리 좋지. 휴가 신청 해놓을게.”
동시에 터진 산과 우영의 웃음이 계속될 무렵 우영의 손에서도 낡은 성경책이 떨어졌다. 오랫동안 품어왔던 우영의 과거가, 우영을 조여 왔던 어두운 믿음이 비로소 사라지듯이 희미해져간다.
사자를 울게 하는 건.
*아래 글에 나오는 상황, 이름들은 모두 사실과 관계없는 허구입니다.
*트리거 워닝-본 글은 폭력과 같은 트리거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과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주기도문
CODEー07101126
OPERATION CRYING LION
BUDAPEST, HUNGARY
선발조 명단
정우영: ZERO
POSITION: SNIPER.
최 산: SAN
POSITION: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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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를 울게 한다. 네가.
헝가리 후기.
헝가리 후기는 작품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드리고 싶어요. 작품을 이해하는데 조그마한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주기도문입니다.
맨 처음에 나온 주기도문은 산과 우영, 원장을 아울러 말하고 있습니다. 산과 우영에게 죄를 지은 원장을 산이 죽음으로 죄를 사한 것처럼 산이 원장을 죽인 죄, 우영은 바다가 자신 대신 죽은 죄책감에 의한 죄. 이 죄를 사해달라, 용서해달라고 말하고 있죠. 산이 말한 모든 사람이 병을 안고 산다는 말처럼 산과 우영 둘 다 서로의 죄를 알고 있지만 잘못이 없다고 여기는 것. 그와 동시에 서로와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 죄는 아니라는 것. 그렇기에 우영은 헝가리 임무에 산을 혼자 보내지 않습니다. 혼자 보냈다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우영의 죄는 또 생기는 거니까요.
두 번째는 산의 생존입니다.
산이 우영이 대신 총을 맞고 죽지 않은 것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우영의 과거 극복. 산이 신을 죽인 후부터는 우영에게 신이 원장이라고 칭해지는 것처럼 누군가가 자신 대신해서 총을 맞았을 때 죽지 않았기에. 우영은 잘못된 신을 믿은 걸 깨달음과 동시에 트라우마를 극복한다고 볼 수 있어요. 두 번째는 산의 죄입니다. 산은 우영을 위해 죽어줄 수 있을 정도로 헌신적인 인물이지만 신을 믿지 않은 인물입니다. 살기 위해 신을 믿지 않았지만 우영의 기도에 의해 살게 되어 신을 믿겠다고 말한 산은 죄를 짓고 방황하다 우영의 기도에 의해 죄가 사해졌다고 볼 수 있겠죠.
마지막은 사자상이에요.
헝가리 세체니 다리에 있는 유명한 사자상은 혀가 없어 울지 못하는 사자상입니다. 헝가리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이 있을 때 사자가 운다고 표현을 하죠. 앞서 작전명이 우는 사자인 이유도 그만큼 위험 난이도가 크기 때문에 우영이가 작전명조차 괴팍하다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리고 울지 못하는 사자상을 산은 자신과 우영같다고 하였죠. 흔히 사자가 우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 사자상은 그 당연한 일을 하지 못합니다. 그와 비슷하게 고아원에서 당연히 누려야 할 행복과 의무를 받지 못한 채 살아남은 자신들을 투영시켰다고 볼 수 있죠. 사자를 울게 하는 건 헝가리에서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마지막의 사자를 울게 한다, 네가 라는 말은 그 불가능한 일. 우영의 과거 극복과 산의 죄를 사하는 것. 이 일을 가능케 한다는 건 산과 우영이 서로에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우영의 기도 덕에 산의 죄가 사해졌고 산이 살아남으로서 우영이 과거를 극복할 수 있었으니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