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빌리지
신소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올해의 베스트셀러, '오로라빌리지'의 정우영 작가님입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네에. 잘 지냈죠."
"작가님이 쓰신 책이 많은 분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어요. 어떤 심정이신가요? 첫 데뷔작 이후 오년 만에 처음으로 내신 책이잖아요."
"사실 이렇게 관심을 받게 될 줄 몰랐어요. 제가 작품을 쉬고 있던 오년 동안 여행을 다녀왔었거든요. 그리고 나서 쓴 책이라 감이 많이 떨어져서 인기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만 읽을 생각으로 썼던 건데 의외로 굉장히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그저 감사하네요."
"그럼 이 책은 작가님께서 여행을 다녀와서 쓰신 책인 건가요?"
"네. 다 제 이야기를 각색한 거예요."
"그럼 그때의 경험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오로라빌리지를 사랑하는 독자분들을 위해서요. 저도 기대가 되네요."
"어렵지 않죠. 그런데 그다지 재미있지만은 않을 거예요. 소설은 나름대로 미화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제 기억도 마찬가지죠. 음, 이 이야기를 하려면 오년 전에 제가 첫 작품을 냈을 때로 돌아가야 해요."
우영은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이 좋았다. 자신의 감정을 담는 것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묘하고도 복잡한 감정들을 풀어나가는 것에도 자신이 있었다. 늘 해왔던 일이었기에. 그리고 그 중심엔, 대부분 최산이 있었다. 그는 우영의 소꿉친구이자 첫사랑이었다. 어쩌면 그건 아직까지도 현재진행중일 것이다. 아니, 거의 그렇다.
우영이 언제부터 그를 사랑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우영이 행복하고 즐거울 때엔 늘 산이 곁에 있었고 힘들 때나 슬플 때에도 산이 같이 울면서 위로해줬었다. 자신의 모든 순간에 산이 함께했기 때문에 우영은 그를 사랑했다.
처음에는 부담을 줄까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으나 사랑이란 감정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많이 애를 먹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생각해 종내에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사심도 채울 겸, 다가오는 사람들도 경계하는 겸 찹쌀떡같이 산의 곁에 계속 붙어있었다. 그리고 산은 우영이 그렇게 밑도끝도 없이 다가오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선생님이고 친구들이고 맨날 붙어있는 둘을 보며 너네는 참 둘도 없는 사이다. 그냥 사귀어라. 이런 저런 농담을 하곤 했다. 그 말에 하나같이 반응하고 부정하는 건 오히려 우영이었다. 아 그냥 친구에요! 그때까지도 산은 그저 빨갛게 달아오른 제 얼굴을 보며 웃을 뿐이었다. 제 애정을 받아주면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우영은 그것이 내심 고마웠다. 분명 싫지는 않으니까 그런 거겠지 했다.
좋아하는 마음은 더욱 깊어만 갔고, 뱃속이 간질거리던 느낌이 쿡쿡 쑤셔올 때가 되어서야 우영은 산에게 제 마음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너무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을까? 그래도 날 싫어하진 않겠지. 거절당하더라도 그냥 친구로 다시 지내면 되는거니까. 그런데, 그렇게 된다면 조금 슬프긴 하겠다. 속으로 온갖 생각을 늘여놓던 우영은 이왕이면 특별하게 졸업식 날에 고백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모 아니면 도. 그래도 왠지 좋게 끝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하나, 둘, 눈송이가 되어 땅에 떨어지는 겨울은 다가왔다.
분명 졸업식 날에 고백하려고 했는데. 우영은 고백보다도 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말았다. 산이 유학을 간다고 했다. 그것을 산도 아닌 부모님께 들었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 전혀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 웃으며 헤어졌었는데, 왜 이렇게 된거지? 심장을 누가 막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그날따라 제 인사를 받아주는 산이 어딘가 더 어색해 보였다.
졸업식이 끝나고 같이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갈 때까지 무슨 일인지 제게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산을 우영은 멈춰세웠다. 그리고,
"너 유학 간다며. 왜 나한테 말 안했어?" 우영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산은 대답이 없었다.
"왜그래, 대답해봐!" 종내에는 물기 가득한 울음이 터져나왔다.
"우영아."
"응?"
"미안해."
"그게 무슨- 읏!"
가만히 우영을 내려다보던 산은 찬바람에 꽁꽁 언 우영의 두 뺨을 그러쥐고 콧잔등에 짧게 키스했다. 시렸던 콧잔등이 불에 데인 듯 뜨거워졌다. 키스라고 하기도 뭐한 가벼운 입맞춤이었지만 우영에겐 너무나도 큰 애정이었다. 그토록 바랬던 순간인데, 왜 하필 지금이야. 좋아한다고 말해보지도 못했는데. 우영은 행복하고도 서러워서 울상을 지었다. 산은 울먹이던 그를 한 번 안아주고는 이제 가야한다며 서둘러 버스를 잡아타고 떠났다.
산은 그에게 어색한 첫키스의 기억과 온도만을 남긴 채 그렇게 유학을 가버렸다. 얼마나 여지를 남기기 싫었으면 전화번호도 싹 다 바꾸고, 어디로 갔는지도 알려주지를 않았다. 그게 막 대학을 입학하기 전이었고, 우영에겐 산에게 꼭 보여주려고 고등학교 시절동안 쭉 써왔던 소설이 있었다. 그를 보며 쓴 것이었는데, 정작 당사자가 없다면 의미가 없었다.
우영은 참 많이도 앓았다. 원망도 해보고, 잊으려고도 해보고. 술을 진탕 마셔서 다음날 하루 종일 일어나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산이 참 미웠다. 이럴 거면 여지를 주지나 말지. 왜 나한테 키스를 하고 떠나선. 그 와중에도 감성이 풍부해진 탓인지 글은 잘만 써졌다. 스스로의 재능이 미울 정도였다. 미완성이었던 그 소설을 고치고 또 고치고. 결국 완성한 날에 우영은 그 원고를 태우려고 했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다. 이렇게라도 추억을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과 남아있는 미련이 그를 붙잡았다.
세상 참 제 뜻대로 되는 게 하나 없다. 그렇게 깨져놓고 왜 아직도 산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인지,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순간 홧김에 원고를 평소에 좋아하던 출판사에 부쳤는데, 한 달이 지난 후에 거기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우영은 원고를 보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처음엔 출판 제의를 거절하려고 했으나 편집장님이 사정사정하시는 바람에 수락했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그 책을 출판하게 된 것이다. 산을 위해 썼던 첫 작품이 세상에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우영의 작품은 예상과는 다르게 꽤나 유명해졌다. 읽은 사람들 말로는 학창 시절의 설렘과 추억을 생생하게 묘사해서 그때 그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는 감동적인 소설이라나. 참고로 그 책은 산과 우영하고는 다르게 주인공이 첫사랑에게 고백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썼는지 모를 일이었다. 책을 읽고 고백에 성공했다며 감사의 말을 전하던 사람들에게 우영은 오히려 열등감만 잔뜩 느꼈으니 말이다. 그게 딱 일 년이었다.
그래서 우영은 이렇게 감정에 휘둘리며 살 수 없다는 생각에 그동안 책을 통해 번 돈으로 최산도 싹 잊고, 지나간 아픔도 다 잊을 생각으로 짧게 여행을 다녀오자고 마음먹었다. 일 년 새에 통장에 쌓이게 된 돈이 꽤나 많아서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우영은 첫 학기가 끝나자마자 대학에 바로 휴학계를 신청하고 나왔다.
그래. 이왕이면 정말 추운 데로 가 보자. 정신 좀 확 차리게. 캐나다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한 번 가 볼까? 거기에 평생 있을 것도 아니고.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잖아, 정우영. 여행 가기 전에 한 달이나 고민한 것 치고는 꽤나 단조로운 계획이 세워졌다. 우영은 토론토 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영어 회화 책에 나온 문장들을 몇 개 중얼거리며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인천공항으로 떠났다.
열 세 시간의 긴 비행을 마치고 부스스한 몰골로 잠에서 깬 우영은 정신없던 입국심사를 거치고 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탔다. 살면서 처음 가본 캐나다는-정신 차리자고 추운 곳을 선택했지만 나름 덜 춥기 위해 초가을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겨울이 금방 와서-추위를 많이 타는 우영에겐 너무나도 추운 곳이었으나, 경치 하나는 끝내주게 예뻤다. 도심에서 차츰 벗어날수록 차 밖 풍경으로 잘 보이던 짙고 커다란 녹색의 큰 나무들과, 작은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마치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마을 몇 개를 지나서 서투른 영어로 어찌저찌 손발 다 써 가며 마침내 도착한 숙소의 이름은 오로라 빌리지였다. 오로라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라나 뭐라나. 정말로 오로라를 볼 수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 말이 뭐라고 우영은 홀린 듯이 두 달 치를 예약했다. 두 달 동안 여기서 잘 버틸 수 있으려나……. 뭐, 고작 두 달인데. 마냥 하얗고 푸르기만 한 경치를 바라보던 우영은 발밑에 쌓인 눈을 헤집더니 뒤돌아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영은 캐나다에서의 두 달을 아주 평화롭게 보냈다. 별 의미 없이 시간만 때운 것은 아니었다. 중간에 카메라를 들고 별이 쏟아지는 야경을 찍기도 했고, 옆방에 머무는 존하고 친해져서 종종 같이 바비큐를 구워 먹기도 했다. 그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우영에게도 세탁기 쓰는 법을 가르쳐 줬던, 우영만큼이나 친화력 좋은 사람이었다.
오로라를 보고 싶어서 이곳에 온 것은 맞지만 막상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아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을 때였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거의 다 되어갈 쯤 이었나, 우영은 평소와 다름없이 편의점에 들려 젤리나 사 먹을까 하던 참이었다. 이제는 영어로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한 수준이 되어서 젤리 하나 사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평소에 먹던 것을 집어 들 찰나에 우영은 익숙한 뒤통수를 발견했다. 아니지, 진짜 아니겠지. 설마설마 하다가 확신 없는 목소리로 우영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최산...?"
남자가 뒤돌아 그를 쳐다보았다. 정말 최산이네. 우영은 산을 보고 너무 당황해 그가 자신에게 다가올 때까지 얼이 빠진 채로 가만히 있었다.
"우영아…." 산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네가 왜 여기, 아니 유학 간다는 곳이 여기였어?" 우영은 허탈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잠시 휴학하고 여행 왔어."
"……."
우영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니, 산은 제 눈을 피하고는 우물쭈물하며 물어오는 것이다.
"여긴, 어쩐 일이야?"
차마 '널 위한 책을 썼는데, 그 책이 나름 잘 팔려서 벌게 된 돈으로 널 잊으려고 여행 왔다.'고 할 수가 없어서 우영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 울음을 삼키며 아니 그냥...머리 비우려고 잠깐 여행 온 거야. 라고 얼빠진 대답을 할 뿐이었다. 산을 잊으려고 온 여행에서 되려 산을 만나다니,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고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었다.
"이 근처에서 머무는 거야?"
"응. 오로라를 제일 잘 볼 수 있다고 해서……." 우영은 순간 말해놓고도 이 말이 바보 같아서 속으로 자책했다.
"그렇구나. 나는 사촌 형이 여기에 살아."
"알아. 해외에서 산다고 했던 그분 맞지?" 산은 우영에게 그런 말을 해 준 적이 있었다.
"응."
그 말 이후로 산도 우영도 말이 없었다. 괜히 뻘쭘해진 분위기를 못 버틴 우영이 갑자칩과 맥주 몇 캔을 집어 들어 산에게 "같이 술이나 한 잔 할까?"하고 먼저 소리치듯 물어보고 나서야 정적은 깨졌다. 산은 알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그는 예전에도 지금도 우영이 하자는 것을 거부하는 법이 없었다.
둘은 편의점 근처에 있던 벤치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등등. 술이 들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이 툭 툭 나왔다. 좋지 않게 헤어진 것 치고는 15년 단짝이 어디 안 가서 금세 예전같이 웃으며 이야기도 하고 농담도 쳤다. 그렇지만 둘 중 누구도, 약속한 것처럼 그 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 사이 편의점 안쪽 모니터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늘 밤 열 시 경, 캐나다의 동부 지역에서 약 이 년 만에 오로라가 관측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영이 아직 뉴스를 알아듣기 어려워 산에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저런 내용이라고 했다. 이제는 영어도 잘하네. 우영은 잠시 아까 편의점에서 들었던 산의 유창한 영어발음을 떠올렸다. 다 컸네, 최산. 우영은 아직도 자신만 산과 함께하던 그 때에 멈춰 있는 것 같아서 울적해졌다. 약간의 허망함과 억울함. 산은 항상 우영보다 모든 것이 느렸었는데, 이젠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아 버렸다.
생각에 잠겨 있다가 시계를 보니 열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1년에 몇 번 보기도 힘들다고 했었는데, 운 좋게도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걸까? 여행이 끝나가기 전에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술김에 그것이 말로도 나왔나보다. 산이 우영에게 여행이 언제까지냐고 물어왔다.
"나? 이번 주까지야. 다음 주 되기 전에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돼." 우영은 말하고 나서 속으로는 내심 아쉬워했다.
"그렇구나……." 산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시선은 밑으로 향한 채였다.
그렇게 말없이 술만 홀짝홀짝 마시던 순간, 세상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해가 져서 어둑어둑할 텐데, 왜 이렇게 세상이 환하지? 약간 취해있던 우영이 속으로 멍하게 생각하던 그때, 산이 그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아 왜 그래애. 우영아, 하늘 좀 봐봐. 오로라야.
뭐? 오로라? 우영은 그 말에 고개를 치켜들고는 하늘을 보았다. 그 뒤엔 절로 감탄이 튀어나왔다. 우와. 진짜 예쁘다. 초록빛, 보랏빛 섞인 오로라가 실크 천처럼 반짝이며 하늘을 수놓는 모습은 우영이 살면서 본 캐나다의 자연 중 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광경이었다. 사람들이 오로라 보려고 캐나다까지 오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구나.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한 우영의 까만 눈동자엔 한가득 빛나는 오로라가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산의 얼굴에도 기분 좋은 기색이 가득했다.
그렇게 한참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우영은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찬바람이 폐에 가득 들이찼다. 오로라를 계속 보고 있으면 왠지 홀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우영은 오로라 대신 산을 보는 것을 선택했다. 술기운에 가능한 짓이었다. 보고 나서 조금 후회하긴 했다. 방금 보았던 오로라가 단번에 잊히는 느낌이라서. 나는 오로라가 아니라 최산한테 홀린 거였나? 산이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빠안히 그를 쳐다보며 고민하던 우영은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가 고개를 들며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물어볼게 있어."
"응. 물어봐도 돼."
"그때, 왜 나한테 키스했던 거야?"
오로라가 너무 아름다웠던 탓인지, 아니면 술에 취해서였는지, 그 말 이후에 우영과 산은 누가 먼저랄 새도 없이 서로의 입술을 탐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온몸에는 전율이 일고, 조막만 했던 불씨가 한순간에 커다란 불길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숨이 차서 헐떡이면서도 둘의 입술은 떨어질 줄 모르는 것처럼 몇 번이고 계속 서툴게 맞물렸다. 우영은 입을 맞추면서 벅차오르는 감정에 울 것 같았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저 들뜬 티를 내지 않으려 주먹을 꼭 쥘 뿐이었다. 차가운 주변의 공기와는 대비되는 뜨거운 숨이 둘 사이에서 뒤얽혔다.
그것은 추위를 느끼지 못할 만큼이나 따뜻하고, 또 포근했다.
마치 열을 앓는 것 같던 키스가 끝난 후에, 산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테이블에 고꾸라지려는 우영을 추슬러 오로라 빌리지로 향했다. 업어달란 우영의 말에 산은 옛날에도 늘 그랬듯이 그를 업어주었다. 우영은 산의 너른 등판에 달아오른 뺨을 대고 그의 걸음마다 넘실대는 시야가 어지러워 눈을 감았다. 그렇게 조금 있으니 어느새 둘은 숙소에 도착해 있었다.
산은 그의 등에서 잠들어 버린 우영을 깨웠다. 우영아. 일어나.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깬 우영은 비밀번호가 뭐냐고 묻는 산에 무심코 0710이라고 대답했다가 얼굴이 금세 새빨개졌다. 왜 하필이면 비밀번호를 최산 생일로 해 놔선. 술기운이 다 달아나는 기분을 느끼며 우영은 괜히 산의 등에 빨개진 얼굴을 묻었다. 산의 목을 감싼 손이 꼼지락거렸다. 정작 그 말을 들은 그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삑삑거리는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렸고, 산은 우영의 방 안 쪽을 보다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방 안 치우는 건 똑같네…라며 중얼거렸다.
산이 우영을 침대에 내려놓고 이불까지 잘 덮어주며 잘 자라는 말과 함께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우영은 돌아가려는 산을 붙잡았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우영은 그에게 꼭 이 말을 하고 싶어졌다.
"산아, 산아아……."
"응, 우영아."
"나 좋아해? 응? 나 좋아하냐구우!"
"……."
"씨이...왜 아무말도 안하냐? 야아, 최산! 나는 너 좋아하는데……."
저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에, 아른아른거리는 시야 때문에 우영은 산의 표정을 잘 볼 수는 없었으나 그는 왠지 모르게 놀란 기색으로 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성 붙이고 불러서 삐진 거 아니지? 야 말 좀 해봐아. 내가 미아내…. 아니 근데 왜 내가 니 눈치 봐야 돼? 니가 먼저 그때 아무런 말도 안하고 갔었잖아……. 우영은 졸음 때문에 늘어지는 발음으로 산에게 칭얼거렸다. 잠에 드는 순간까지도 그는 그저 우영을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숙소에서 띵한 머리를 붙잡고 정신을 차리니 곁엔 아무도 없었다. 필름이 끊기지 않아서 전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기억이 났다. 오로라 밑에서의 키스부터 최산에게 잔뜩 땡깡을 부렸던 고백까지. 미쳤지. 네가 미쳤구나 정우영.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런 말을 했어. 괜히 산이한테 부담만 주고. 아이씨. 발을 동동 구르며 베개에 뻗친 머리를 마구 비벼서 더 뻗치도록 만들어버린 우영은 금세 조용해지더니 그렇게 한참을 멍때렸다.
감정을 조금 추스르자,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작은 쪽지가 보였다. 이게 뭐지. 손을 뻗어 눈가로 가까이 대어 보니 그것은 눈에 익은 산의 글씨였다.
-식탁에 스프 사다 놨으니까 데워 먹어. 다음에 꼭 다시 보러 올게 우영아.
산은 끝까지 그에게 다정했다. 또 나만 기다리지. 최산 이 나쁜 놈아. 그런데 우영은 어째 기분이 썩 괜찮았다. 다시 보러 온다는 그 말 때문이었던 걸까.
그렇게 이상야릇한 기분으로 캐나다에서의 마지막 일주일을 보내고 오랜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우영은 글을 썼다. 거의 이 년 만의 작품이라 어색한 기분으로, 처음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으로 하나 둘 써 내려간 글은 다시금 산과 우영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수필 느낌의 쓴 소설이었다.
우영은 글을 쓰며 많은 생각을 했다. 여행에서 산을 만났고 그다지 좋게 끝난 것도 아님에도 우영은 왜인지 전처럼 화가 나지 않았다. 도리어 차분했다. 그저 최산이라는 사람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그에 대한 이해를 점차 해 나갔던 것 같다. 산이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내게 좋아한단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분명 날 싫어하는 반응은 아니었지. 다시 오겠다고 한 말, 진짜일까. 우영은 시간이 흐를수록 옅어져 가는 그 약속을 되새기며 하루하루를 글로 채워나갔다.
완성한 작품의 제목을 짓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던지. 내용은 금방 만들었지만 제목이 문제였다. 오로라. 오로라에 관련된 무언가이면 좋겠는데. 그때 본 오로라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으니까. 사진으로 찍지 못해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숙소 이름이 오로라 빌리지였으니 그걸로 해도 나쁘지 않겠다. 우영은 캐나다 여행을 계획했을 때처럼, 오래 고민한 것 치고 제목을 간단히 지었다. 오로라빌리지. 우영은 산이 꼭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에 쓴 것도 읽었으려나. 그건 안 읽었으면 좋겠다. 감정이 너무 적나라해서.
"…그저, 그렇게 된 거죠. 첫사랑을 여행가서 마주쳤고. 또 미련만을 남긴 채 떠나보냈던. 별로 재미는 없었죠? 하하……."
"아니요. 이런 비하인드가 있었다니. 작가님과 작가님의 작품을 사랑하는 분들이 어쩌면 더 깊게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듯 하네요. 재미있는 얘기 해주셔서 감사해요."
"저야말로,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떠들었네요."
"인터뷰를 슬슬 마무리할 때가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오로라빌리지를 읽으실 독자분들께 전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음, 저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단 말을 꺼내지 못했던 분들이 있으시다면, 제 책을 읽고 꼭 한번만 용기를 내서…"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끝내자,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들려오고 주변에 환했던 조명들이 하나 둘 꺼졌다. 우영은 마치 그것이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꼈다. 이걸로 정말 마무리를 지어야겠지.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정작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은 나였는데. 내가 뭐라고 그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했던 걸까. 어쩌면 우영은, 본인이 그렇게 할 수 있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 때 확실히 사랑한다고 말했더라면 뭔가가 달라졌을까?
휴, 참으로 피곤한 하루였다. 얼른 집에 가야지. 우영은 생각했다. 집에 가면 아늑한 소파에 앉아 커피라도 한 잔 내려마셔야겠다. 그리고 다시 캐나다의 풍경이 가득 담긴 앨범을 넘겨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거야. 들뜬 마음에 우울한 것도 잊고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던 중, 우영은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정우영씨?"
우영은 걸음을 멈췄다. 그때 이후로 꽤나 긴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잊지 못하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익숙한 목소리였다. 우영은 급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저와 몇 걸음 떨어진 보도블럭에 서있는 남자를 보았다. 거짓말. 네가 여기에 어떻게. 우영은 저도 모르는 새에 본능적으로 그에게 달려가 그를 꼭 안았다. 마치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오로라를 붙잡는 것처럼 간절히.
"진짜, 진짜 최산이야?" 우영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꼭 보러 오겠다고, 약속했었잖아." 변함없이 다정한 말투로 산이 대답했다.
"난, 난 네가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어. 그래서 이렇게라도 잊어보려고 그 책을 썼던 건데……."
"너무 늦었지. 미안해."
우영이 산을 끌어안은 손으로 그의 등을 팍 팍 치는 걸 견디며 산은 오히려 우영을 더 꽉 끌어안았다. 우영이 곧 손을 멈추더니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산은 우영이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곤 그의 등을 가만히 쓸며 울음이 그치기까지 기다렸다.
"왜 이제야 왔어."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시간이 필요했어."
"그래도 정말 너무했어 이 바보야. 자그마치 육 년이 뭐야. 육 년이. 다 큰 줄 알았는데 그대로야 정말……."
"미안해. 너무 늦게 깨달았어."
"이제라도 말했으니까 됐어. 집에 가자."
"응. 우영아."
우영은 산의 손을 꼭 잡으며 이제 다시는 놓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건 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보같았지. 너도, 그리고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너무나 긴 시간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온 거야.
그래도 이제는 사랑한다고, 너에게 말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산아.
우영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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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로라빌리지를 쓴 신소입니다. 합작도, 이런 후기를 쓰는 것도 처음이라 떨리는 마음 반, 영광스러운 마음 반으로 임하는 것 같아요. 오로라빌리지를 처음 고안했을 때부터, 모든 것이 우영이보다 한 발 느렸던 산이와 그런 산이를 언제까지나 기다려줄 수 있었던 우영이가 보고 싶었어요. 다른 한 편으로는 우영이를 향한 자신의 진득한 감정에 지레 겁을 먹고 도망쳤던 산이가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을 적어보고 싶었는데 잘 전달이 됐을지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 제가 오로라를 많이 좋아해서 캐나다를 주제로 잡았을 때 오로라를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도장을 꽝! 찍는 촉매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문학에서 흔히 말하는 낭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요소랄까요.
요즘 같은 시기에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사랑, 행복, 기쁨, 애정, 무엇 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들이지만 저는 때때로 그런 것들에 힘을 얻고 다시 나아갈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에요. 오로라빌리지 속 산이와 우영이에게도 앞으로 많은 일들이 있을 테지만 서로에게 그런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네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요.
쓰다 보니 말이 길어졌네요. 제 첫 합작이 이렇게 좋은 주제를 담고 있어 기쁩니다. 다른 분들께도 좋은 글, 그림, 영상 만들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트래블러 합작주님, 합작을 도와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반짝이는 오로라를 타고 영원한 사랑 여행을 하게 될 산이와 우영이를 응원하며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