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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령

​나좀나뒁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28살의 우영은 18살의 우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취미 삼아 시작했던 요리가 생각보다 더 좋아져 들어갔던 요리부 동아리에서 만난 산은 참 능청스럽고 제법 괜찮은 애였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애교스러웠던 산은 우영과 빠르게 가까워졌고, 곧 둘은 등하교까지 같이할 만큼 친한 사이가 됐다. 성격 좋기로 소문 난 산이었지만 유독 우영에게만 더 풀어지고 가벼운 스킨쉽도 자주 했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애들마다 인사하고 다녔지만 정작 중요한 고민은 우영의 어깨에 기대어 말했고, 우영이 뒷정리 당번인 날이면 실습실에 둘만 남자마자 귀찮다는 말을 무시하고 제 품에 가둔 채 다니곤 했다. 그럴 때마다 볼에 오르는 홍조와 터질 듯 뛰는 심장을 숨기는 것은 오로지 우영의 몫이었다.

 

 

    “우리 꼭 대학도 같이 다니자, 영아.”

 

    그렇게 내밀어오는 새끼손가락을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커진 걸 깨달았을 때 우영은 다이어리를 하나 샀다. 제 감정이 넘칠 것 같은 날이면 입 밖으로 터져 나오지 않게 모두 그 안에 가두기 시작했다.

 

    마음을 감추는 게 익숙해질 즈음 둘은 같은 대학에 들어갔다. 양식을 전공하는 산과 한식을 전공하기로 한 우영은 각자의 거처도 달라졌다. 자취를 시작한 산과 기숙사에 들어간 우영은 자연스럽게 같이 지내는 시간도 줄었다. 우영은 그대로가 딱 좋았다. 딱히 고백할 마음은 전혀 없으니 시간 맞을 때 같이 밥 먹고 가끔 산의 집에서 놀며 그의 칭얼거림을 모두 받아 주는 그대로.

 

    그리고 여전히 평범한 하루였다. 입학 후로 가장 친해진 하늘과 실습 후에 담배 한 대 피우고 헤어지면, 배달 주문 넣어두고 씻을 테니 도착하면 대신 받아 달라는 산의 연락을 확인한다. 이미 도착해 문 앞에서 저를 기다리는 음식을 챙겨 자연스럽게 산의 집 도어락을 연다. 거실 테이블에 음식을 내려두던 중 못 보던 목걸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근무 시간 동안 손에 무언가를 착용하지 못하는 요리사의 사랑의 징표가 되는 바로 그것. 반지가 걸린 목걸이였다. 차분히 자리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반지를 확인하면 산의 이니셜이 반지 안쪽에 새겨져 있었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산이 제 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조차 없었지만, 그보다 먼저 그에게 연인이 생길 줄은 몰랐다.

​

​

    “영아, 언제 왔어. 나 소리도 못 들었는데.”

​

​

    머리를 털며 나오던 산과 눈이 마주치면 산의 시선이 제 손에 놓인 반지로 향한다. 떨리던 눈이 몇 번의 깜빡임 끝에 다시 자리를 잡으며 입술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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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영아. 너한테는 제일 먼저 말하려고 했어.”

    “애인 생긴 거야?”

    “응, 다른 과 선밴데, 아직 막 그렇게 오래 만난 건 아니고. 아직은 비밀 연애가 좋겠다고 하길래. 아, 그리고.”

    “알았으니까 변명처럼 설명 다 안 해 줘도 돼. 나 내일 실습 때 필요한 거 숙소에 있어서 오늘은 들어가야 하거든. 얼른 먹기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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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산이 제 눈치를 볼 일은 아니었다. 애인이 생기면 서로에게 먼저 소개해 주기로 한 약속 같은 것도 없었고 비밀 연애라면 당연히 제 연인을 위해서라도 누군가에게 밝히지 않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당당하지 못한 그의 태도가 더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답답한 상태로 실습까지 참여해 실수만 여러 번 저지른 채 쓴소리만 한가득 들은 우영은 하늘과 자연스럽게 흡연장으로 향했다. 한참을 깊은 한숨과 함께 연기만 뿜어내는 우영을 보던 하늘은 고기라도 먹고 들어가자며 잡아끌었다. 평소에 환장하는 삼겹살집에서도 입맛이 통 돌질 않아 산의 생각이라도 떨쳐내려 소주를 무작정 연달아 들이키면 하늘이 휙 잔을 빼앗아 간다.

​

​

    “최산한테 까인 거야, 까일 기회도 없어진 거야.”

    “너, 아니. 장하늘, 너 알았어?”

    “너 레즈 눈치를 뭘로 보고 이러는 거야. 내가 모를 줄 알았냐?”

    “뭐?”

    “아무튼 너나 나나 같은 부류니까 이제 좀 말이라도 해 보라고. 평소에 입만 열면 최산 이야기만 하던 놈이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이러는데?”

    “그냥……. 오늘 집에 갔더니 테이블에 반지 있더라. 이니셜 떡하니 박힌 거.”

​

​

    그 후로 산은 하늘에게 제대로 미운털이 박혀 버렸다. 헤남 우정 다 소용없다느니, 그거 다 여지 주는 거라느니. 산의 새로운 애인 소식이 들릴 때마다 엄청난 양의 욕이 우영의 귀를 통해 산에게 뿌려졌다. 정말 이상한 점은 산 역시 하늘을 경계한다는 점이었다. 언제나 우영에게만 칭얼거리던 산이었지만, 하늘과의 팀 실습이나 약속에 나갈 때마다 안 가면 안 되냐며 떼를 쓰다 질투하고 삐치기까지 했다. 둘이 정말 뭐 있는 거 아니냐고 묻는 본인은 막상 자기 연애에 대한 질문에 항상 뭐 없다며 웃어넘기기만 했다. 그러면서 또 하는 말들은.

 

 

    “아, 우리 영이가 누구 만나는지는 꼭 내가 봐야지. 근데 진짜 장하늘이랑 사귀는 거 아니지?”

 

 

    그게 참 달고 썼다. 먼저 입대한 우영의 면회에도 산은 꼬박꼬박 왔다. 항상 손에는 덜렁덜렁 저를 닮아 우영이 좋아하는 다크 초콜릿을 들고서. 첫 휴가를 받은 날도 그랬다. 자주 와 준 게 고마워 다른 약속들보다 가장 먼저 산을 보러 갔다. 예전처럼 산의 자취방에 누워 수다를 떨다 하늘과 만날 시간이 되어 일어나면 곧장 예민하게 반응했다.

 

 

    “정우영. 너 진짜 걔 좋아하냐?”

    “아, 무슨 소리야. 내가 걔를 왜 좋아해. 그러는 넌 요즘 누구 안 만나냐?”

    “야. 사랑 다 재미없다. 난 우영이가 최고지.”

​

​

    새로운 누군가의 소식이 들려올까 바짝 긴장했던 몸에서 허무한 숨이 짧게 툭 튀어나왔다. 이쯤 되면 하늘이 여태 해온 말이 정말 맞는 것도 같았다. 여지. 산이 제게 주고 있는 그것. 그걸 끊어내야 했다.

 

 

    “아, 우리 산이. 나 좋아해서 그랬나 보네.”

​

​

    한숨 섞인 말에 산이 우영을 껴안는다.

​

​

    “그러게. 영아, 그냥 나랑 둘이 평생 살자.”

    “미안. 난 산보다 바다가 좋아서.”

​

​

    그대로 산을 품에서 떼어낸 채 집을 나섰다. 우영의 군 생활이 끝에 가까워질 즈음 산도 훈련소에 들어갔다. 그렇게 생긴 둘의 공백기 동안 우영은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준비해 전공을 바꿔 버리고는 이탈리아로 떠났다. 다시는 산과 마주칠 수 없도록 학교부터 취업까지 그곳에서 마칠 생각이었다.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 산에게 절대 말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며 하늘과 가족에게만 밝힌 채 출국 비행기에 올랐다.

​

    그렇다고 우영이 산에게 거짓을 말했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유독 바다를 좋아했던 어린 우영의 눈에 들어온 게 하필 베네치아의 바다였을 뿐이었다. 지금의 우영에게 베네치아는 일종의 탈출구로도 적합했다. 우영의 마음 중앙에 굳건히 자리한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아프게 맞고만 있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숨어버리기 딱 좋은 장소였다는 것이다.

​

    사실 그렇게까지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다. 23살 때 넘어와 모자란 공부를 더 마친 뒤, 어느 정도의 경력만 쌓고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베네치아의 풍경과 삶이 마음에 들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다 보니 잘 맞는 가게에 눌러앉아 28살인 지금까지 일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이번 여름이 지나면 귀국할 계획으로 더욱 감상에 젖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제 방에서 가게까지 걸어가는 동안 보이는 운하와 그 사이를 지나치는 곤돌라들을 바라보며 항상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리알토 다리를 건너면 야채 시장 옆 작은 골목에 오픈 준비 중인 동료들이 보인다. 며칠 동안 주야장천 비만 내리는 바람에 범람했던 운하가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온 것처럼 흙탕물로 가득했던 가게를 멀끔히 치우니 제 기분도 절로 상쾌해졌다.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들을 한창 맞이하다 잠시 백에 들어가 쉬고 있으면 Fabio가 다가온다.

 

 

    “Woo, 밖에 온 사람 네 친구라는데?”

​

​

    우영이 베네치아에서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은 모두 근처 가게에서 근무 중인 바텐더였기 때문에 서로 모를 리가 없었다. 대체 누가 왔나 싶은 마음에 나가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바 테이블에 기대앉아 손을 흔드는 산이 보인다. 대체 여긴 어떻게 알고 왔지. 한국에 있는 사람들조차 제가 정확히 어디에서 일하는지는 모를 터였다.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가만히 있으면 Fabio가 산에게 스프릿츠 한 잔을 건넨다. 산이 미소를 지으면 편히 대화하라며 어깨를 두드리고는 비켜 준다.

 

 

    “영아.”

    “어.”

    “그래도 우리가 한순간에 남 될 관계는 아니지 않냐.”

​

​

    우영도 말 한마디 없이 떠난 게 줄곧 편하지는 않았다. 당장 제가 감정적으로 괴롭지 않을 순 있었지만, 우영 역시 오랜 친구와 연락이 끊긴 건 마찬가지였다. 결국 우영의 퇴근 시간까지 기다린 산과 함께 단골 바를 찾아갔다. 뽈뻬떼 한 접시와 각자 마실 와인을 주문하고 야외 테이블에 앉으면 우영이 사랑하는 산 마르코 광장의 풍경이 펼쳐졌다.

 

 

    “나 여기에서 일하는 거 어떻게 찾았어?”

    “어머님도 모르겠다고 하시고, 장하늘은 나만 마주치면 엿 날리고 도망가길래. 뭐 하고 사나 네 인스타 들어가 보니까 너 태그한 동료분 프로필에 주소 떡하니 쓰여 있던데. 이건 뭐 바보도 아니고.”

 

 

    아, 이렇게 알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우영이 허무하게 웃으며 얼굴을 쓸어내리면 산이 신나게 웃어댔다. 그 뒤로는 놀라울 만큼 예전 같았다. 시답지 않은 농담도 하고,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주겠다는 산을 뜯어말리고, 근황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애 이야기로 흘러갔다. 산은 여전히 가볍고 짧은 연애 중이라며 긴말을 얹지 않았고, 우영 역시 아직 연애 생각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무리 너랑 오래 알고 친했어도 좋아한 사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서운해, 정우영.”

    “그냥. 말하기가 좀 그래서.”

    “그렇게까지 꺼내기 힘든 거야?”

​

​

    우영의 근무 시간 동안 계속 칵테일을 들이켠 산이 결국 와인을 들이키다 취하기 시작했다. 칭얼거림이 유독 늘어난 산이 우영의 어깨에 얼굴을 퍽 기대며 말하면 한국에서도 다시는 안 볼 각오로 우영이 입 열었다.

 

​

    “누구 하나를 좀 오래 좋아해서.”

    “너 그럼 연애한 지 그렇게 오래된 거였어?”

    “아니. 나 혼자 좋아한 거야.”

​

​

    산이 혼자 벌떡 몸을 세우더니 정색한 얼굴로 무언가를 골똘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괜한 말을 했나 싶어 고개를 숙인 채 포크로 뽈뻬떼나 푹푹 찌르기 시작했다.

​

    “하늘이냐?”

​

​

    산의 표정을 읽기도 무서워 눈을 피하고 있던 제가 한심해질 지경이었다. 제가 좋아할 만한 인물이 장하늘 하나밖에 없었나 싶을 정도로 갑갑해지는 속에 우영을 결국 응어리진 마음을 뱉어내고 말았다.

​

​

    “남자야.”

​

​

    그리고 산도 우영도 알았다. 우영이 그토록 오랜 시간 곁에 둔 남자는 산 하나인 것을. 삭막해진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우영이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 밤이 지나고도 산은 꾸준히 우영의 가게에 찾아왔다. 오히려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예정일 대로 귀국하는 산을 배웅하러 나온 우영은 언제 귀국하는지 절대 말해 주지 않았다. 친구 사이로 지내는 일도 베네치아에서의 기억이 마지막이었으면 했다.

​

​

    “들어오면 꼭 연락해.”

​

​

    대답하지 않는 우영에게 손을 흔드는 산의 목에서는 여전히 반지가 반짝였다. 막 들어가려던 산에게 고개를 저은 우영은 도망치듯 마지막 인사를 뱉고 돌아서 달렸다.

​

​

    “산아. 우리 이제 모르는 사이로 살자.”

 

 

 

​

 

 

 

    점점 복잡해지는 마음에 회상을 멈춘 우영은 낡은 제 다이어리에 심란한 마음을 털어 버리고 이어폰을 꼈다. 조용히 떠났던 만큼 조용히 들어와 지낼 생각이었다. 공항에 도착하면 미리 잡아둔 숙소에 묵으며 일자리를 찾은 뒤에 본가에 들어가 자취방을 구하는 게 우영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은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자연스럽게 제 짐을 받아 가는 산으로 인해 모두 헛수고가 되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짐을 뺏어 들며 제 차에 올리는 손이나 목에는 반지의 흔적도 없었고 그게 더 우영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

​

    “일단 우리 집으로 가자.”

    “나 오는 거 어떻게 알았어?”

    “Fabio가 알려 줬어. 어머니 아버지한테도 우리 집에 며칠 있다 간다고 말씀드렸고.”

    “……. 차 좀 잠깐 세워 봐.”

​

​

    잠시 내려 골목에 들어가 담배를 물고 산이 따라 내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 우영은 하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잘 들어왔어?”

    “무사히 도착했지. 도착만 무사히 했지.”

    “그게 무슨 말이야. 뭐 잃어버렸어?”

    “나 지금 최산이랑 있어.”

    “뭐?”

    “나올래?”

    “야, 우영아. 알잖아. 나 언니랑 같이 살기 시작한 거. 당장은 못 가. 저녁에 고기 먹자. 알았지.”

    “응, 연락해.”

    “우영아. 힘 좀 내고.”

    “뭘 또. 얼른 끊어.”

 

 

    결국 그대로 산의 집에 도착한 우영은 산에게 제가 쓸 방에 짐만 그냥 옮겨 달라 부탁한 뒤 곧장 샤워하러 들어갔다. 엉키다 못해 덩어리진 생각을 정리하려 얌전히 물만 맞다 제가 녹아버릴 것 같아 그냥 욕조에 물을 받고 누워 버렸다. 연애라고는 도통 길게도 못하는 놈이 누구 만날 때마다 뭐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지, 연애하는 티라는 티는 다 내고 다니면서. 뭐 하나 차고 다니지 않는 꼴을 보니 헤어졌을 게 뻔했다. 베네치아에서 제가 한 말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제 마음을 들킨 거야 뭐, 언젠가 그렇게 됐을 거라 여기던 터라 타격이 덜했지만, 저 때문에 타인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는 건 죽어도 싫었다. 죄책감에 가슴이 자꾸 답답해지는 기분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산에게 정말 저 때문에 헤어졌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

    돌고 도는 생각을 반복해서 곱씹다가 차라리 하늘과의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한국에 온 기분도 내고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에게 줄 선물도 살 계획을 세우며 물기를 닦다 문득 제가 짐을 안 푼 채 바로 들어왔다는 게 떠올랐다. 옷 하나조차 안 챙겨둔 상태 때문에 우물쭈물하다 문을 살짝 열어 보면 산이 놓고 간 가운이 하나 있었다. 급한 대로 가운을 입고 방으로 가니 제 짐을 풀던 산의 손이 다이어리를 꺼내고 있는 게 보여 그대로 달려가 낚아챘다.

 

 

    “너는 좀! 그냥 두라는데 이걸 왜 정리하고 있어.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

    “아니, 영아.”

​

​

    제가 쌓아온 10년 동안의 날 감정들을 들킬 뻔했다는 마음에 버럭 화를 내니 산이 머쓱한 표정으로 저를 진정시킨다. 떨어진 수건을 주워 우영의 머리에 얹고 살살 털어 주는 손길에 거칠어진 숨을 다듬고 사과하면 그제야 손이 멈춘다.

 

 

    “옷 안 챙긴 거 같길래 찾고 있었어. 나도 미안해. 우선 얼른 쉬어. 피곤하겠다.”

​

​

    산이 조용히 방문을 닫아 주며 나가자 우영은 한숨과 함께 수건을 바닥에 던졌다. 다이어리를 두려 책상에 가까이 가면 한국에 있을 때 우영이 제일 좋아하던 다크 초콜릿이 포장되어 포스트잇과 함께 올려져 있다.

​

​

[Congratulazioni per il tuo ritorno a casa. Mi sei mancato.

 - Qualcuno che vuole conoscerti per sempre - ]

 

 

    이탈리아어로 어설프게 쓰인 포스트잇을 보니 더 복잡해지는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들어 다이어리 사이에 끼운 뒤 서랍의 가장 깊은 곳에 넣어두고 곧장 집을 나섰다. 하늘과는 생각보다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결국 산의 집에서 지내게 됐단 이야기를 듣고서도 하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딱 한 가지를 물었다.

 

 

    “나 방은 못 내줘. 언니도 너 예뻐하기는 하는데 신혼부부 집에 친구는 못 들이겠다. 그래도 정 안 괜찮다 싶을 때 하루 정도는 재워 줄 수 있어. 알았지?”

 

 

    우영이 고개 끄덕인 뒤로는 일상적인 대화만 나누다 구직 중이라는 말에 핸드폰을 뒤적거린 하늘 덕에 오히려 면접 약속을 잡고 일찍 돌아왔다. 괜히 아까 산에게 유난스레 화낸 게 미안해져 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전화하려고 든 핸드폰은 베네치아에서 운하에 빠트려 바뀐 뒤였다. 즉, 산의 번호가 없다는 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한 우영은 산이 좋아하던 민트초콜릿으로 통을 가득 채웠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티브이 소리에 식사 중인가 싶어 거실로 향하면 학생 시절 우영을 기다리던 것처럼 쪼그려서 자는 산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니 옛날 생각도 나고 괜히 몽글거려서 담요만 덮어 주려다 그 앞에 앉아 산의 얼굴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많이 변한 것 같으면서도 그대로인 모습에 미운 놈이 참 잘생기기는 했다고 생각하면서 일어나면 산이 우영의 팔 잡아끌어 안는다. 너무 놀라 숨도 크게 쉬지 못한 채 가만히 있다가 잠잠한 산의 반응에 고개를 살짝 들어 보면 우물거리며 잠꼬대를 하기 시작한다.

 

   

    “싫어…….”

​

​

    계속 싫다는 말만 반복하다 울기까지 하길래 껴안고 토닥거려 주면 우영을 더 꽉 안으며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

​

    “나 진짜 너랑 헤어지기 싫어…….”

​

​

    산이 애인과 헤어진 후에 이렇게까지 힘들어한 적은 없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진짜 내 감정만 생각하고 괜한 말을 했구나 싶어져 우영도 울컥했다. 혹시라도 산이 깰까 봐 소리도 못 내고 입술만 세게 물고 울음을 참기 시작했다.

 

​

    “영아……. 그냥 가지 마…….”

​

​

    들려오는 말에 결국 우영 역시 줄줄 울기 시작했다. 잠시나마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고 했던 제 감정에 미안해서. 그리고 산이 대체 저를 어떤 마음으로 보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해서. 한참을 둘 다 울다 산이 더 깊게 색색거리기 시작하고서야 일어난 우영은 그대로 짐을 정리해 예약했던 숙소로 향했다.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둘 다 그렇게 힘들다면 갈 수 있는 곳까지 가 봐야 했다. 그러려면 우선 친구 둘의 동거는 끝내는 것이 옳았다.

 

 

 

​

 

 

 

    제 방 책상에 고맙다는 말과 번호를 적은 쪽지를 두고 나왔고, 산 역시 아무렇지 않게 연락했다. 가끔 퇴근 후에 만나 술도 마시고 어울렸지만 달라진 점이 몇 개 있었다. 산의 몸에 어떤 커플 액세서리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 우영이 절대로 산의 집에 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칭얼거리는 산을 우영이 밀어내기 시작했다는 것. 특히 마지막 변화에 대해 산이 크게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영아, 너 왜 안 받아 줘. 원래 안 그랬잖아…….”

​

​

    은근슬쩍 더 가까이 붙어 기대며 징징거려도 우영은 더 멀찍이 앉아 눈썹만 씰룩거릴 뿐이었다.

​

​

    “너 좋다는 사람한테 거리 좀 두지. 너도 받아 줄 생각 없는 건 마찬가지 아니야?”

​

​

    톡톡 날카로운 말을 뱉고 비흡연자인 산을 버린 채 흡연실로 쏙 가 버리면 산은 복잡해진 표정으로 계속 앉아 있다가 곧 자리를 파하곤 했다. 애매한 만남이 반복되던 중, 산이 된통 회사에서 깨진 뒤 우영에게 먼저 퇴근 후 술 약속을 잡아 왔다. 우영 역시 산의 어리광을 받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진짜 힘들 때마저 그럴 생각은 없었다. 착석하자마자 술부터 연속으로 들이키고 한참을 한탄하던 산이 갑자기 멈칫거렸다. 그대로 한숨을 푹 쉬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며 테이블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감정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지켜보던 우영이 옆으로 옮겨 앉아 예전처럼 제 어깨에 산의 턱을 올려 주고 토닥거리자 곧 울 것처럼 숨을 크게 들이쉬기 시작한다. 그러다 갑자기 우영의 어깨를 잡고 떼어낸 뒤 눈을 마주친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잔뜩 쏟아낼 것처럼 촉촉해진 눈동자가 하염없이 흔들리다 겨우 입을 뗀다.

 

​

    “너, 너. 나 안 받아 준다면서. 영아.”

    “울고 싶은 날까지 그러겠다는 말은 아니었어.”

​

 

    다시 산을 품에 안으면 그제야 엉엉 울기 시작한다. 애처럼 울기만 하는 산을 토닥거리며 혼자 삭히느라 고생 많았다고 달래 주다 술자리를 마친 우영이 한층 풀린 산을 데리고 나와 길가에 서서 택시를 찾기 시작했다. 더 할 말이 있기라도 한 듯 머뭇거리던 산이 마침 보이는 택시에 손을 흔들기 시작한 우영을 훅 끌어당겨 골목 안쪽으로 이끌었다.

​

​

    “사람 놀라게 갑자기 왜 이래?”

    “너 우리 집에 다이어리 놓고 갔어.”

​

​

    아차 싶었지만 우영에게는 당장 제 눈 앞의 산이 제 어깨를 잡고 다시금 울먹거리기 시작한 게 우선이었다.

​

​

    “나 진짜 보려고 한 거 아니야. 혹시 놓고 간 거 있을까 봐 정리 중이었는데 떨어지면서 그게 펼쳐졌어.”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네가 십 년 동안 나한테 느꼈다던 감정이 거기에 쓰인 내용 그대로야?”

    “최산. 너 지금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냐고.”

​

​

    산의 입꼬리가 쭈욱 내려간다. 서로의 날 감정이 다투는 이 순간에도 제 이름에 성을 붙이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다. 결국 산이라고 이름을 고쳐 부르면 뻐끔거리던 입이 열린다.

​

​

    “나도. 나도, 영아. 나도 그랬다고.”

​

​

    산의 말이 통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굳은 머리가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해 보려 노력 중이었다. 그렇게 사람을 많이 만났으면서. 저와 하늘 사이를 끊임없이 의심했으면서.

 

 

    “영아, 나도. 그게 무슨 감정인지 너무 헷갈려서. 그래서.”

​

​

    산이 기어코 다시 울기 시작한다. 이미 팅팅 부어 잘 뜨지도 못하는 눈에서 굵직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

​

    “그래서 너랑 하늘이 질투했던 거라고, 영아.”

​

​

    울컥 눈가로 열이 오르며 응어리졌던 모든 게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산과 같은 꼴로 울기 시작한 것도, 이제야 저와 같은 감정이라고 말하는 산도 다 억울함으로 몰려와 바락바락 뱉어내기 시작했다.

 

 

    “내가 아니라고 백날 말했잖아. 그러는 너는 연애할 거 다 하고 다녔으면서 인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리야.”

    “너는 나한테 하늘이 이야기만 했으니까. 그래서 네가 하늘이 좋아하는 줄 알았으니까. 나만 다른 사람 안 만나기 자존심 상하니까. 그런데 그 사람들이랑 만날 때마다 내가 자꾸.”

    “자꾸 뭐.”

    “그 사람들한테 네가 좋아하는 걸 해 주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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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이 그대로 주저앉아 엉엉 운다. 쟤가 하루에 이렇게 많이 우는 걸 본 적이 없던 것 같다는 멍청한 생각이나 하고 있으면 벌게진 눈을 벅벅 닦고 일어난 산이 다가온다.

 

 

    “키스 한 번만 해 보자. 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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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팔을 잡은 손을 살짝 밀어내며 뒷걸음질 치면 그대로 무게를 실어 우영을 벽으로 몰아세운다. 굳이 제 몸을 구겨 안긴 채 다시 서럽게 울면서. 분명 마음고생 한 건 난데. 꼭 제가 그랬던 것처럼 울어댄다.

​

   

    “나도 너 좋아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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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걸 울면서 듣고 싶지는 않았는데. 산 특유의 칭얼거리는 주먹이 제 가슴을 툭툭 친다. 아, 이 기분은 뭐지. 진짜 미운데. 제 마음이 뭔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게 정말 괘씸해 죽겠는데.

 

 

    “고개 들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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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도 가슴이 떨려서 산의 얼굴을 잡아 입을 맞췄다. 짧게 누르고 있던 입술을 떼며 이제 확실해졌냐고 물으려던 순간 산이 저를 당겨 다시 키스한다. 부드럽게 오물거리는 폭신한 입술이 겹쳐지고 유독 예민한 서로의 혀가 스치면 괜히 웃음이 픽 난다. 제 첫 키스가 눈물 때문에 너무 짜게 느껴져서. 그리고 웃음소리에 다시 칭얼거리는 산이 미치도록 좋아서.

 

 

 

​

 

 

 

    산의 집으로 다시 짐을 옮겼다. 이사 소식에 그럴 줄 알았다던 하늘이 제 언니를 정식으로 소개해 주겠다며 저녁 약속을 제안하기에 산도 가도 되냐고 묻자 소리를 빽 질렀다. 염치가 있는 거냐고 없는 거냐고 하도 소리를 질러대길래 대신 제가 소고기를 사 주겠다니 얌전해진 목소리로 이따 보자며 전화를 끊는다.

 

 

    “나 죽어서 돌아오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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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강 준비를 마치고 제 방으로 와 허리를 감싸는 산에게 다 네 잘못이라며 메롱 약 올리면 그대로 다가와 복수라며 사방에 뽀뽀해댄다. 아직 풀 짐이 많아 침대로 산을 훅 밀어버리면 저도 도와주겠다며 일어나 책상을 뒤적이다 가만히 멈춘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이미 너덜너덜해진 제 다이어리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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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쓸 일 없지, 뭐. 그냥 꽂고 싶은 칸에 꽂아놔.”

    “와, 이제 내가 가졌으니 감정의 기록들은 다 필요 없다? 나는 이제 잡은 물고기다?”

    “뭐. 잡은 물고기는 맞지 않나?”

    “야, 너, 너…….”

    “아, 이제 다시 이탈리아 가서 더 잡을 물고기 없나 봐야 하나?”

 

 

    장난으로 얹은 말에 절대 못 간다며 저를 안고 팔로 꽉 조이는 산의 얼굴을 잡아 볼을 꾹 누른다. 심각한 눈썹에 귀여운 입술이 쏙 튀어나온다. 잔뜩 부푼 그 입술에 쪽 입을 맞추며 장난이라고 속삭이면 금세 부스스 웃으며 제 어깨에 머리를 얹고 무게를 실어 온다. 10년 전 그 시절보다 널찍해진 등을 토닥거리다 엉덩이를 톡톡 쳐 주니 고개를 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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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이가 나 안 때리겠지.”

    “응, 걔 애인 앞에서는 완전 얌전해져. 완전 너랑 똑같아.”

    “어?”

    “한국 들어와서 보니까 너 완전 소문이 자자하던데. 내 앞에서 그렇게 울더니 독설로 여러 사람 울리고 다녔던데.”

    “아니, 그건 일이니까…….”

 

 

    머쓱함에 애교로 넘어가려 씰룩거리는 산의 코를 살짝 꼬집어 주니 보조개가 한껏 들어가도록 환하게 웃는다. 다시 엉덩이를 톡 쳐 주며 그만 출발하자며 신발장으로 향하면 쪼르르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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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영아.”

    “응?”

    “아직도 산보다 바다가 더 좋아?”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고민하다 문뜩 떠오른 기억이 스쳐 갔다. 거의 7년 가까워질 정도로 예전에 스치듯 했던 말을 기억하는 걸 보면 산이 정말 저를 좋아하긴 했다 싶은 마음에 괜히 눈을 슬쩍 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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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해령이라고 알아?”

    “아니. 갑자기 왜? 그게 뭔데?”

    “아주 깊은 바닷속에도 산맥이 있다더라. 그걸 해령이라고 한대.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바다를 더 좋아해도 결국은 산을 좋아하는 거랑 같은 말이라는 거지.”

    “나 지금 배고파서 그런가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좋아한다고.”

    “나도, 영아.”

    “너도 좋아한다고 해야지.”

    “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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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합작 참여에 제가 이렇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쏟을 줄 몰랐네요. 물론 시간과 퀄리티는 비례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 하고 싶었던 표현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통해 보여 줄 수 있어서 상당히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참여하시는 분들도, 어떤 방식으로든 접하게 되는 분들도 같은 감정이길 바라요.

 

    후기가 너무 길어지는 걸 원치 않아서 짧게 두 작품을 훑어보고 왔습니다. 우선 먼저 완성했던 영상 ‘추억 여행’부터 말해 보자면……. 우선 제목이 너무 직관적이라 아직도 정말 마음에 안 드는데 마땅한 게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이제 포기했어요. 사실 짧은 시간 안에 감정을 극대화해서 전달할 수 있는 게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뮤직 드라마를 언젠가는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그 과정에서 제가 정서적으로 가장 와닿게 표현할 수 있는 국가는 역시 제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이 적합했고, 그 덕분에 싸이월드 연출이나 추억의 노래들을 사용할 수 있었네요. 개인적으로 헤테로 커플들의 가장 큰 장점은 어디에서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들만의 추억을 쌓고 표현하며 장기간 연애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질리도록 오래 만나면서 싸우고 헤어지고 결국은 돌고 돌아서 서로임을 다시 깨닫는 그 과정을 그들에게도 적용해 보고 싶었고,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여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잘 전달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화면의 비율, 싸이월드나 인스타그램 같은 매체 활용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말했다는 걸 중점적으로 보시면 더 이해가 쉬우실 거예요.

 

    다음으로 제출한 글 ‘해령’은 제가 참 사랑하는 공간이 많이 나오는 작품입니다. 바다를 사랑하고 베네치아에 가서 스프릿츠를 마시는 게 꿈이었던 제가 아쉬움을 담아 글 속의 인물들이라도 다녀오라는 마음으로 썼어요. 베네치아에서의 장면이 길지는 않지만, 처음으로 진심을 표현하게 될 수 있던 이유도 그 공간에서 수년간 얻은 마음의 휴식과 자유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사실 아주 큰 의미를 전달하고자 쓴 이야기는 아니라 그저 1인칭으로 서술되는 인물의 감정선을 느끼면서 읽어 주신다면 참 감사할 것 같아요.

 

    무엇 하나 뚜렷하게 뛰어나지 못한 제 결과물에 항상 칭찬과 따스한 말들을 전해 주시는 분들을 위한 선물이 되었으면 해요.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는 여러 일을 겪고 있지만, 이것 또한 하나의 여행으로 여기고 한층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여러분을 응원할게요. 비문투성이일 제 후기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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