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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年

    *트리거 워닝

 

 

    인생은 여행과도 같다. 출발지가 있고 도착지가 있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단지 우영의 경우엔 그 끝이 지금일 뿐이다. 순리라 생각하면 억울함이 덜어지려나. 사랑하는 개, 머피의 등을 쓸 때처럼 밧줄의 단단한 표면을 매만졌다. 머피는 지금쯤 보호소에서 저녁을 먹고 있을 것이다. 둥글게 묶은 매듭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다. 오직 매듭지은 자만이 알 수 있다.

 

    밤의 자작나무들이 무수한 눈동자가 되어 우영을 지켜보는 듯 했다.

​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

    이런 때에 성스러운 구절을 떠올리다니 불경하다. 먼 곳에서 짐승 울음소리 비슷한 것이 들려왔다. 두려움에 멈칫한 우영이 뒤를 돌아본다. '영!' 누군가 그를 찾는 소리 같기도 했다. 벗어나지 못할 족쇄 같은 목소리. 환청은 그의 오랜 친구이다. 짊어맨 가방이 묵직하다. 머피처럼 다리를 끌며 걷는다. 번지는 입김 사이로 보이는 건 자그마한 오두막 불빛 뿐. 그것도 잠시. 지체할 시간이 없다. 우영은 호수를 빙 둘러싸고 있는 깊은 숲 안쪽으로. 더. 더. 깊게 들어갔다. 가끔 실종사건이 일어나 출입을 금하는 곳이다.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생각한다. 이제는 불빛이 점보다도 작게 보여 누구도 그것을 인가에서 새어나온 것이라 여길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우영만은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곳에 머물던 우영만큼은.

 

    어디선가 첨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영은 발돋움 판으로 쓰려 봐두었던 그루터기에서 내려왔다. 사위는 다시 고요해졌다. 착각이었나 싶은 것도 잠시, 같은 소리는 더욱 선명히 들려왔다. 다시 가방을 챙겨 홀린 듯 근원지를 찾아 걸었다. 마침내 발견한 곳은 빙판이 깨진 호수의 한 가운데. 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은 검은 그림자가 수면 위를 오르내렸다. 우영은 천천히 그것을 향해 다가갔다.

   

    12세부터 15세까지. 하느님의 축복으로 먼 이국에서 동양인 아이를 거둬온 양친(養親)의 비호 아래 그때까지는 특별히 나쁜 일 없이 살았다. 사고로 양친(兩親)을 한꺼번에 잃은 15세 끝무렵 우영은 먼 사촌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보다 2살 많은 사촌 얀센은 그의 반려견 머피를 대하듯 우영을 다루고는 했다.

 

    결국 제적당했어. 기분이 좋지 않아. 차고 앞에서 얀센은 달걀을 꺼내 제 손 위에서 두어번 튀겼다. 그리고 우영의 입에 우겨넣었다. 무릎을 꿇은 채였다. 잘 물고 있어. 터뜨리지 말고. 응? 숫자를 다 세기도 전에 눈으로 야구공이 날아왔다. 퍽 소리를 내며 입에서 터진 계란은 완전히 날 것이었다.

 

    멀쩡히 태어났지만 한쪽 다리를 절게 된 머피를 자신의 거처로 피신 시켜오면서 혹시 제가 영국 소설 속 주인공은 아닐까 상상했다. 동물원 뱀과 대화를 시도해보고, 수상한 초대장을 기다려도 보고, 거울 앞에서 수도 없이 이마를 들춰봤지만 짙고 옅은 흉터들 사이로 번개 모양 비슷한 건 하나도 없었다. 우영은 별채에 외따로 살았다. 원래는 그 집에 일하던 가정부며 정원사를 위한 곳이었지만 점차 가세가 기울며 고용인들은 사라졌고 우영이 차지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얀센의 부모는 성정이 나빴다기보다는 그냥 잘 몰랐던 것 같다. 자신들과 다르게 생긴 우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존재가 불편하고, 거슬렸던 것이다. 부부 슬하에 우영 또래의 자식이 있었음에도… 마치 이종의 생물을 볼 때와 같이. 아이를 볼 때 어떤 괴리를 느꼈던 거 같다.

 

    어쩔 수 없다. 그들에게 자식이란 단지, 어떻게 요리해도 역하게 느껴지는 오이 같은 거였을 수도 있다. 얀센을 보면 알 수 있다.

​

    허우적대는 검은 덩어리는 언젠가 본 적 있는 순록이었다. 약속한 설원에서 무장한 채 도착할 물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발이 날리는 하늘 아래 검은 털에 눈을 가로지르는 세로로 긴 흉터, 반쯤 잘린 뿔을 가진 그것이 그들 앞에 유유히 나타났다. 물을 마시려는지 웅덩이에 고개를 숙였다. 좋은 징조로군. 흥미롭게 바라보던 얀센이 부하에게 검지를 까딱했다. 건네받은 총을 장전했다. 가늠쇠 안의 순록은 어느새 고개를 들어 이쪽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우영은 조준하는 그의 팔을 실수인 척 쳤다. 허공에 울린 총성에 순록이 달아났다. 머리채를 잡혔고, 고개가 젖혀지니 세상이 바로 보였다. 새 떼가 자유로이 날아오르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 더없이 선명하게.

​

    ㅡ 영!

​

    착각이 아니었다. 얀센이 저를 찾고 있었다.

​

    ㅡ 여기 있는 거 알아! 대답해!

​

    학습된 공포감에 손이 떨렸다. 챙겨온 가방을 열어 젖혔다. 순도 높은 다이아로 가득했다. 눈앞에는 순록이 허우적대고 있었다. 기다란 쪽 뿔에 매듭이 걸리기를 바라며 밧줄을 던졌다. 얽힌 끈을 끌어당기자 고통스러운지 음산한 비명을 질렀다. 쉬잇. 도와주려는 거야. 제발. 가만히 있어봐. 거센 몸부림질 때문에 발끝에 힘을 주어 버텨보지만 속수무책으로 끌려갔다. 빙판에 넘어지면서 가방도 같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조치를 취할 새도 없이 더플백이 먼저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뒷걸음을 친다. 쩌적, 얼음에 금이 갔다. 후회해도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송곳처럼 시리고 날카로운 감각이 몸을 찌른다. 차가운 물에 잠기며 이내, 죽는다. 생각했다.

 

    이리도 춥고 괴로운 것을 보니 그의 말이 맞다. 얀센은 우영의 도톰한 팔 안쪽을 꾹 눌렀다. 바보 같긴. 겨우 이 정도로 사람은 죽지 않아. 너는 늘 내 관심을 끌지 못해 안달을 내는구나. 주사 흉터로 볼록한 곳에 입술을 맞대었다. 너는 분명 지옥에 갈거야. 그러니 죽으면 안 돼. 나의 일은 그런 것이었다. 단순하게는 근황을 묻는 고모와 고모부에게 은행일을 하고 있다는 거짓말부터, 자동차 번호판을 세상엔 없는 번호로 교체하는 일, 양 떼 같은 어린 아이들을 컨테이너로 몰아넣는 목자. 영, 너 되게 좋은 일 하는 거야. 마음 속 어딘가에 자리한 불길함을 모르는 척 얀센의 세치 혀를 있는 그대로 믿은 멍청함, 물건을 다이아와 교환하는 일,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던 물건이 실은 아이들 목숨 값이라는 걸 알게 되는 일, 인심을 쓰듯 팔다 남은 것은 너 해. 미치지 않고서는 잠들 수 없던 밤과, 울퉁불퉁 부은 팔과 퀭한 눈.

 

    야훼 나의 목자시며 나는 주의 어린 양이요…. 얀센은 어떻게 눈 하나 깜빡 않고 주일의 예배당에서 얼룩진 손을 모을 수 있을까. 태어나질 말았어야 한다. 발할라로 가는 길목에서 간절히 빌었다. 누군가 듣고 있든 듣지 못하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한번도 입밖으로 내지 못한 말.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길래."

​

    꿈을 꾸는 것처럼 신이 응답했다.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떴다. 그림자가 진 궐련을 문 입술이 웅얼거렸다. 웬 장정들이 당신을 아주 애타게 찾던데. 벽난로 앞에 서 있는 남자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커다란 불 그림자가 얼굴에서 일렁였다. 남자가 돌아보았다.

​

    "…그냥 내버려 두지."

​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어느새 건조한 옷으로 갈아입혀져 있었다. 남자가 픽 웃었다.

 

    "그러게. 한밤중에 조명탄 들고 완전무장한 사람들에게 발각되도록 둘 걸."

​

    "……."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근방에선 본적 없는 나와 비슷한 이목구비의 동양인이 도리어 낯설게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버려진 헛간 같은 곳이다. 사람이 머물렀던 흔적은 커녕 세간이랄게 별로 없었다. 남자가 누구인지, 이 곳이 어디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전신이 떨렸다. 그저 온몸이 고되고 추웠다.

 

    "가야겠어."

​

    "……."

​

    남자는 어딘가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나의 손목이었다. 소매를 빼어 감췄다.

​

    "…신세를 졌군."

​

    "……."

 

    문득 호기심이 든다. 살아있을까. 분명 죽었겠지. 뜬금없이 그것이 궁금했다. 그런데. 내가 물에 빠질 때, 호수에 순록도 있었는데……, 그에게 뿔이 반쪽 밖에 없는 순록을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순록?

​

    곰곰히 생각에 빠진 남자가 턱을 쓸었다. 거기에 그런게 있었나. 잠옷 같은 얇은 옷 대신 나의 옷을 입고 싶었다. 짚 더미로 만든 침대에서 발을 내려 바닥에 섰다. 남자가 무언가 생각난 듯 아, 하고 몸을 수그렸다. 곧 고개를 들었다. 철컥. 명치에 서늘한 총 끝이 닿는다. 순록인지 사슴인지는 잘 모르겠고.

 

    대신 이런 게 있더라고.

​

    영.

​

    그가 발로 찬 가방에서 다이아가 우르르 쏟아졌다.

 

 

 

    * * *

 

 

 

    두 팔은 뒤통수에 얹고 형장에 끌려가는 죄수처럼 등을 겨눠진 채 걸었다. 노새가 된 듯한 기분이다. 설원 위로 입자가 굵은 눈이 펑펑 내렸다. 두 사람 분의 발자국 말고 주변은 고요하기만 했다. 남자는 뒤에서 말을 걸었다. 베르겐엔 해마다 관광오는 사람이 몇이나 돼? 주로 피오르드를 보러 오나? 답하지 않았다. 대신 어떻게 나의 이름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동문서답했다. 한국어는 전혀 못하나? 머리가 멍하게 울렸다. 기절할 것 같았고, 기절하고 싶었다. 발에 감각이 없는데도 눈이 포근해 보일 지경이었다. 눕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다음 순간 세상이 어두워졌다.

 

    열 두 살 이전의 기억은 거의 없다. 본국에서조차 아무도 데려가려 하지 않던 아이를 어떻게 이곳까지 데려오게 되었느냐는 지역신문 취재진에 양어머니와 양아버지는 나란히 하늘의 부름에 응답했을 뿐이라 대답했었다. 멋지지? 설원의 끝에서 아래로 까마득한 협곡을 보았다. 빙하가 지나간 자리라고 한다. 빙하가 지나간 자리. 속으로 되뇌었다. 푸르고 희어서 마음에 들었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나를 보면 양 쪽 검지로 눈을 찢는 사람들. 함구증에 걸렸다. 각고의 노력 끝에 띄엄띄엄 읽고 썼으나 소리내어 말하진 못했다.

 

    어느 크리스마스에 원래는 정우영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늘 욘이나 얀의 중간처럼 불리던 이름이 사실 '우영'에서 기인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나직하게, 언젠가는 친부모를 찾고 싶게 될지도 몰라 말했었다. Nei.(아니야.) 보드에어 보여주며 그 품에 파고들었다. 따뜻했다. 관 속에 따뜻했던 두 품이 들어있다. 헌화하며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거짓말처럼 목이 틔였다. 잘 가요. 아빠. 잘 가요. 엄마. 시끄럽게 울었다.

 

    삶은 맞지 않는 옷처럼 헐겁다.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꾼다. 있어야 할 것이 없다. 때때로 눈이나 코, 귀나 다리였다. 어딘가에 두고 올 때도 있었다. 그런 결핍을 그리움과 혼동해 자꾸만 돌아보았다.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슬펐다. 그런 것들은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우울증이 심한 사촌 얀센이나 다리를 저는 개 머피처럼. 누군가를 거두는 일, 돌보는 일은 천성에 안맞는다. 그러나 어머니, 아버지를 흉내낸다. 하느님 아버지. 기도 후엔 공허하다.

 

    운명이 신이 부른 대로 행해지는 것이라면, 그는 나를 무엇으로 불렀기에.

​

    기억하기로 열두 살부터 슬펐다. 거절당하는 일에 체념했으니, 기억은 못해도 슬픔은 그 전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슬픔이 개처럼 따라온다. 빙하가 지나간 자리엔 피오르드가 남는다. 내가 지금 괴로운 것은 분명 무언가가, 지금도 무언가가 나를 통과하는 중이리라 진통하며 버텼다. 다 지나고 나면 내겐 무엇이 남을까. 도서관에서 본 책에 따르면 노르만 전사들이 전투 중에 전사하면 발할라로 간다 했다. 끝없이 싸워야하는 지옥도. 인생은 여행이 아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 내내 싸우기만 했다. 나는 분투 끝에 죽고 싶다.

​

    낮처럼 환한 밤을 여러번 겪다보면 눈이 내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귀 기울여 잘 들어보면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직 설원 한 가운데. 제 몸위로 눈이 쌓이고 있다. 발할라로 가는 길. 모로 누운 신체 위로 예외 없이 쌓인다. 마침 속눈썹에 앉는 눈의 결정을 본다. 체온에 미지근해진다. 곧 녹아 물이 된다.

​

    "불리하면 실신하는 습관이 있어?"

​

    남자는 우영의 눈을 거칠게 훔쳤다. 뿌리치자 철컹, 하고 어딘가 막히는 소리가 났다. 침대 난간과 손목에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빠져 나가기 위해 바르작대는 우영에게 남자가 빙글빙글 웃으며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고 전했다. 너의 사촌 얀센을 주축으로 조직된 마약 밀매단은 상당수의 국제법을 위반하여 현재 수사 중에 있었으며, 운 좋게도 수사 도중 발견된 의문의 다이아 출처에 대해 상세히 진술할 의무가 있고, 사라진 너와 다이아를 찾고 있는 얀센 무리 그리고 기절해 있는 동안 상황을 보고 받은 후발주자 수사팀이 지금 동시에 남자의 은신처로 오고 있으나, 불행히도 최후에 우리 둘 중 누가 웃게 될지는 하늘에 달렸다고 말했다. 급격한 기상 악화로 여기에 너와 단 둘이 일주일은 족히 고립될 예정이라 말하였다. 우영이 잠든 지도 하루가 넘었다고 했다.

 

    세상이 온통 하얬다.

​

    작은 창밖으로 폭설이 쏟아지고 있었다.

 

    "……."

​

    동시에 시선이 마주쳤다. 눈 오는 소리보다 우영의 배곯는 소리가 더 컸기 때문이다.

​

​

​

    * * *

 

 

 

    뜨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그릇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으쓱한다.

​

    "독 안탔어."

​

    싫음 말고.

​

    !

​

    도로 가져가려는 것을 다시 빼앗아왔다.

​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남자가 가볍게 웃었다. 먹어봐. 눈 돌아가게 맛있으니까. 아, 포크를 안 가져왔네. 잠깐만.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쳤나. 제 머리를 도리질했다. 연거푸 추위 속에 떨다 깨어나면서 긴장이 풀리기라도 한 걸까. 그러나 본능적인 허기는 어쩔 수가 없었다. 한 팔은 여전히 침대 난간에 고정된 채 왼손으로 어색한 수저질을 했다. 붉은 국을 조금 들이켰다.

​

    켁!

​

    눈이 돌아가게 맛있다더니 눈물이 핑 돌게 매웠다. 얼굴이 새빨개져서 목을 부여잡고 있으니 남자가 어느 샌가 다가왔다. 아, 진짜 손 많이 가네. 투덜거리는 듯한 말에 그렇지 않은 어조였다. 라면 못 먹어? 수영장 가서 먹고 스키장 가서 먹는 게 라면인데 이 순한 맛도 못 먹으면 어떡해. 여기가 스키장이랑 다른 게 뭔지 모르겠네 나는. 옆에 물잔을 내려놓고 등을 툭, 툭, 두드렸다. 아파서 몸을 빼자 남자가 멈칫하며 두드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남자는 한동안 먹는 것을 지켜다가 창가에 서서 커피를 마셨다. 난로 안에는 작은 불꽃이 쉼없이 타올랐다. 퉁퉁 불은 면은 반도 먹지 못하고 개수대에 버렸다. 포만감이 드는데 그냥 앉아 있으려니 좀이 쑤셔서 침대 옆에 서있었다. 낮은 천장에 머리가 닿을 것 같이 설거지 하는 뒷모습이 보였다. 은신처라고 해야 할지, 임시 거처인지, 그만의 작전지인지 알 수는 없으나 일광이 없어 작고 좁은 굴 같았지만 찬장엔 식량이 빼곡히 차있었다. 수택이 진 세간도 있었다. 사람이 산 흔적이 꽤 오래 머물렀음을 짐작케 했다. 수압이 약해서 그가 말하는 소리가 잘 들렸다.

 

    입 다물고 묵비권 행사해봐야 소용없어. 세상에 비밀은 없거든.

​

    미니 카세트처럼 생긴 녹음기에서 연신 빨간 불이 점멸했다.

​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

    수건에 손을 닦은 그가 책상으로 돌아와 앉았다. 책상에 종이와 펜을 놓았다. 의자를 끌어다 앞에 두고 앉으라는 눈짓을 했다. 그냥 서있었다. 맘대로 하든지. 남자는 팔짱을 끼고 녹음기를 응시했다. 그리고 창밖을 가리켰다. 불행하게도, 너랑 얘기할 시간은 아주 충분한 거 같으니까...

   

    내 얘길 먼저 하지.

​

    "... ..."

​

    도망갈 수도 있었고, 공격할 수도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되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끊어내고 싶던 생을 몇 번이나 연장하게 했다. 파헤치는 일이 남자의 직업이니... 목적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을 잘 알면서도, 저를 묶어두는 건 수갑보다도 그 눈이 아닐까. 우영은 생각했다.

 

 

 

    * * *

 

 

 

    바닷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산이라 불렸다. 그것이 늘 의문이었다고 한다. 최산은 종이 위에 뾰족한 삼각형와 물결치는 웨이브를 그려넣었다. 작은 동그라미 밑으로 나뭇가지 같은 팔과 다리를 그렸다. 걷어낸 셔츠 소매만큼 팔에 세로로 기다란 흉터가 있었다. 눈을 감아도 고향의 비릿한 바다향기를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했다. 감은 눈과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어릴땐 잔병치레가 잦고 몸이 약해 툭하면 누워있길 좋아했다 한다. 그 옆에 기다란 나뭇가지 사람들 하나 더 그렸다. 바로 너처럼. 물끄럼 쳐다보니 눈에 힘 풀으라며 얄밉게 웃었다. 등불이 흔들리며 어둔 방 벽에 그의 옆 모습이 그림자져 너울졌다. 태어나자마자 시설에서 단체 생활을 했는데 발달이 더뎠던 그에겐 모든 일과가 모방이었다 한다. 식전 기도를 올리기 위해 손을 포개는 것이나, 또래와의 놀이도 그러했다고 한다. 산은 나뭇가지 인간을 하나 더 그렸다. 어린 그보다 크고 누워있는 우영보다는 작다. 아이에겐 부모가 세상의 전부이다. 부모도 형제도 아니었던 누군가가 다가와 비어있던 그의 손을 잡아주었는데, 키가 그보다 한 뼘 더 컸고, 손은 그보다 작았지만 충분한 규모의 세상이었다. 좁은 한 칸 방 안에서 벗어나 미처 몰랐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게 해주었다 한다. 그 전까지는 무엇이 되고 싶다거나 꿈이 없었다며, 둥글게 원을 그렸다. 안에 곡선을 그려 넣으니 지구의 형상이다. 반도에서 출발한 화살표가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갔다. 그때는 방 한 칸도 벗어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어떤 기억은 평생을 살게 해. 지금 이 낯선 설원 속에 고립된 걸 보면 대단한 세상을 만났던 거라며 웃었다. 그는 금세 웃음을 거뒀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너 같은 악한의 심정은 이해할 수 없다 했다.

​

    눈발이 창을 세차게 두들겼다.

​

    이번엔 반대로 우영이 크게 웃었다.

​

    그래서?

​

    무겁게 잠겨있던 목에선 갈라진 소리가 났다.

​

    나 같은 놈들 잡아 처넣으면서 희열을 느껴? 나는 눈이 먼지 오래야. 네 눈엔 보인다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세상. 그거 만드는 데 일조하니 뿌듯하고 그래? 대단해. 그런 사명감이 네가 살아갈 이유여서. 합리화든 뭐든 간에 넌 적어도 이유가 있잖아.

​

    의자에 마주 앉았다. 테이블을 내려다보았다. 잠깐의 정적이 지나고 시야에 펜이 들어왔다. 팔을 뻗었다. 최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던졌다. 나는 뒤로 고꾸라지며 뒤통수를 세게 부딪쳤다. 나의 목덜미 대신 뚫린 최산의 손바닥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 *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

    마땅히 뺨을 치거나, 죽이겠다고 총구를 들이밀 수도 있었는데 최산은 붕대를 감아주는 그대로 잠자코 있었다. 너 지금 나한테 미안하지? 히죽대며 물었다. 이렇게 지겹도록 새하얀 세상은 처음이라 드디어 돌아버린 거 아닐까. ...제정신이 아니네. 미친놈. 치료를 마무리하며 천을 꽉 동여매자 윽,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거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애. 통증 때문에 오른손을 굽히지도 펴지도 못하면서 입은 살았다.

 

    후욱, 굴뚝에서 한 움큼 재가 떨어지며 난로 불이 꺼졌다.

​

    엇.

​

    잠깐만 있어봐. 최산이 외마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한참이 지나서 돌아온 최산은 마른 장작을 가지러 가야 되는데…, 하고 뒷목을 긁었다. 시선이 엇갈렸다. 최산의 오른손은 둘둘 붕대로 감겨있고, 나는 수갑을 차고 침대에 속박되어 있다.

    잘 됐네. 같이 얼어 죽자.

 

    침대 위로 다이브하듯 벌렁 드러누웠다. 눈을 감았다. 최산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슬쩍 보니 불쌍한 표정으로 붕대 손을 어루만졌다. 들릴 듯 말 듯, 그러나 들으라는 것이 분명한 목소리로 디게 아프다… 감각을 잘 모르겠어…. 그랬다.

 

    낮게 욕을 읊조리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래서 거기가 어딘데?

​

    최산이 눈을 휘며 웃었다.

​

​

    * * *

​

​

    은신처에서 했던 행동 같은 짓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몇 번이나 받아낸 뒤에 최산은 연신 갈등했다. 두 손을 한데로 묶었다. 이러면 일을 어떻게 도와줘. 물어보는 옮기기만 하면 되니 걱정 말라 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최산은 옆에서 팔짱을 끼고 뒤뚱뒤뚱 걸었다. 미친놈아. 그냥 가면 안 돼? 어. 안 돼. 미친놈아. 나 추워. 설원 위로 다시 두 사람 분의 발자국이 찍혔다. 동서남북을 알 수 없을 만큼 사방에 흩날리는 눈보라를 헤치고 푹푹 빠지는 발로 나란히 걸었다. 넘어질 뻔 할 때마다 서로를 몇 번 잡아주었다. 눈발이 속눈썹 사이로 겹겹이 끼었다. 최산을 휙 떠다밀자 쉽게 뒤로 넘어졌다. 놀란 최산은 손 때문에 버둥거리며 잘 일어나지 못했다. 여기서 가깝다며, 미친놈아! 후드를 벗고, 소리쳤다. 꿈지럭 거리던 최산으로부터 눈뭉치가 날아왔다. 그거야 네 속도에 맞춰 걸으니까 그런 거 아냐! 어설피 뭉친 눈덩인데도 얼굴에 제대로 명중했다.

 

    뭐?

    뭐!

​

    그때부터 눈싸움이 시작됐다. 시시각각 은신처는 식어가고 있는데, 머리카락이 다 젖도록 아이처럼 뛰어다녔다. 최산이 정우영을 밀쳤다. 몇 번이나 넘어지도록 서로를 밀치고 눈을 뿌렸다. 최산은 말없이 두 손을 묶었던 끈을 풀어주었다. 놓아버리니 금세 공중에서 사라졌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흰 천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마음 놓고 눈에 파묻혔다. 흩날리는 눈들로 시야가 하얬다. 아아, 하고 입을 벌리니 눈송이가 입안에서 녹았다.

   

    라면이 좀 짰지.

 

    마찬가지로 머리카락이 다 젖었다. 최산이 고개를 숙였다. 장난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났다. 바로 저기야. 진짜 다왔어. 얼른 끝내고 돌아가자. 최산이 앞서 걸었다. 석고상처럼 어쩌지 못하는 오른손이 눈에 들어온다. 붕대에서 삐져나온 손끝이 빨갰다. 아플 것 같았다. 어느새 헐거워져 붕대 끝이 길게 삐져나와 있었다. 우영은 조금이라도 괜찮아졌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괜찮지 않을 것을 알기에 물어보지 못했다. 따라 걷기 위해 그에게 뛰어갔다. 차마 물어보진 못하고 매듭을 새로 지어 단단히 묶었다. 풀어지지 않게 다시 묶어주었다.

 

 

    * * *

​

​

    최산을 장작을 쪼개도록 두어 번 시켜보더니 휘청이는 걸 보고는 아니다, 됐어. 하고 말았다. 괜히 발끈해 오기가 생겨 기어코 성공해내니 오오, 하고 감탄했다. 혼자 웃길래 왜 웃냐고 하자. 아이 같다고 그랬다. 내가 도끼를 들고 있다는 걸 상기했는지, 칭찬. 칭찬. 하고 달랬다. 필요한 물건들을 썰매에 챙기고 돌아오는 길 그것을 끌면서 먼저 걷던 최산은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속도를 늦춰 자기가 뒤에 섰다. 안 도망 가. 뒤돌아 얼굴을 마주 보며 걸었다. 못 가는 게 맞지. 어차피 갈 데도 없는 걸. 최산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검은 눈동자는 빨리 가자. 춥네. 그렇게만 말했다.

 

 

    * * *

 

 

    촛농이 늘어지며 접시에 고였다. 최산은 책을 자주 읽었다. 안경을 쓰고 한 장 한 장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돌아와서는 침대 난간에 묶지 않았다. 실내는 따뜻했다.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를 하고, 그릇을 씻으러 개수대에 섰는데 최산은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물을 올리는 동안 대신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침대에 걸터앉아 김이 나는 커피 잔을 바라보고 있으니 꾸벅 졸음이 쏟아졌다. 최산은 잠시 거실로 나갔다 돌아왔다. 가운데에 놓여있던 테이블을 구석으로 민다. 마룻바닥에 여러 겹의 이불을 펼쳤다. 곧 드러누웠다. 여기서 자게? 물으니 묵묵히 책만 읽는다. 누워서도 책을 읽었다. 침침한데서 그러면 시력 나빠져. 별 생각 없이 한 마디 했는데 피식 웃었다. 심심해서 그러지? 옆으로 누워 제 팔에 머리를 괴었다.

 

    테이블에서 녹음기를 가지고 와 바닥에 앉았다. 버튼을 눌렀다. 빨간 불이 점멸하며 테잎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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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걸 따분해하는 애들이 많았어. 너 같은 사람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먼저 기억하지만 어떤 사람은 정작 남들이 그림 같다 말하는 풍경 속에 살면서 그걸 똑바로 바라볼 줄 몰라. 아니, 알아도 와 닿지가 않아. 그저 연민하고 후회하기 바쁘지. 얀센도 그 중 하나였다. 걔가 나를 증오하는 걸 알면서도 안타까웠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집에 돌아와 불같이 화를 내고,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어딘가를 다쳐오면서, 심기라도 거스르면 내키는 대로 주먹을 휘두르는, 걔의 감정 밑바닥에 어쩐지 다른 게 있는 듯해 연민이 갔어. 곁에 있어주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내 방식이 잘못된 걸 알았을 땐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 되어있었어. 그렇게 따분한 일상을, 평범함을 더 열망하게 됐어. 수사가 진행 중이라 했으니 우리가 살아온 방법을 넌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 가방은 얀센 방에서 우연히 발견했어. 보통은 거래가 안전히 끝나면 최종 보고 후에 배분하는데 이례적인 일이라. 겸사겸사. 복수를 하고 싶었어. 충동적으로 그걸 훔쳐서 달아났고. 그 다음은 알다시피. 그동안은 주로 얀센에게 의탁해서 지냈어. 그거로도 충분했어. 뭘 가져봤자 제대로 쓸 줄도 몰랐고.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았으니…….

 

    촛불 앞에 우영의 눈이 넘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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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한 이야기가 아닐 거라 생각해. 시시하지? 괜히 테잎만 낭비했네. 미안. 그렇게 살아온 걸 어떡해. 하하……. 두 눈썹이 힘없이 쳐졌다. 변명하지 않으려고 다짐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변명이다. 나는, 세상이 멸망했으면 좋겠어. 운석이 추락해 모든 게 무심히 불탔으면 좋겠고. 잠들면 깨지 않기를 바라. 넌 그런 생각해본 적 없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태생일 수도 있어. 공정부터 잘못된 걸 수도 있잖아. 나는 타고 남은 재고, 녹으면 사라지는 눈이야. 지워지지 않는 얼룩, 누군가 실수로 흘린 오물 같이. 바다 향기가 선명하다 했지. 난 피 냄새를 기억해. 처음으로 하나 깨달은 게. 내겐 쓰레기장 같던 세상이 아름답다 했으니 그런 네가 나를 찾으러 여기에 온 건 당연하구나. 그런 게 균형이구나. 신의 뜻이란 게 정말 있는 거구나… 하고.

 

    우영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가까이 다가온 산의 다친 손이 뺨을 어루만졌다. 붕대의 꺼끌한 감촉에 눈을 감았다. 입술에 버석한 촉감이 닿았다가 사라졌다.

​

    동이 트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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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을 뜬 눈으로 지새웠는데도. 밖으로 나간 산이 돌아오지 않았다.

​

​

    * * *

 

 

    ‘최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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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가장 앞 장에 날짜와 함께 적힌 낯선 언어를 따라 적었다. 위에 적힌 반듯한 글씨와 달리 삐뚤고 어설펐다. 최 산. 아는 곳이라고는 함께 갔던 창고뿐이다. 오래 헤맨 끝에 도착했지만 거기에 산은 없었다. 우영은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엇갈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모든 게 그대로 있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며칠은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창가로 빛이 들어왔다. 며칠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손가락을 굽히는 대로 모양이 변하는 빛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다. 거울 앞에서 상의를 들췄다. 곳곳에 아문 상처들이 보였다. 그동안은 아픈 곳만 보아왔다. 잠시 닿았던 촉감을 기억한다. 몇 번이나 구해주었는데도 한 번도 고맙다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무채색인 줄 알았던 입술이 붉다. 건조한 입술을 천천히 만져보았다. 방으로 돌아가 장작을 채워넣었다. 그가 언제 돌아오더라도 춥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영은 밖으로 나갔다.

 

    흔들의자를 문 앞에 놓고 앉아서 산을 기다렸다. 방금 타온 커피는 금세 식었다. 눈발만이 지치지도 않고 날렸다. 앉아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적었다. 지붕 밑으로 들어오면 빗자루로 그것을 쓸어냈다. 눈 위로 글씨를 적었다. 최 산. 손을 새로 소독해줄 때가 되었는데. 서랍 속에 리볼버가 들어있었다. 자각이 없어도 너무 했지 싶다. 경찰이 총이랑 범죄자를 어떻게 같은 집에 두고 돌아 다녀.

​

    며칠 사이 바람은 차츰 멎어 눈보라도 이제는 함박눈처럼 천천히 떨어졌다. 구름에 숨어있던 해가 고개를 내밀었다. 이처럼 따뜻한 낮은 오랜만이라 모처럼의 햇볕을 느낀다. 안개처럼 자욱하던 시야도 서서히 걷혀갔다. 설원 끝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컹!

​

    먼 곳에서 짐승이 짖는 소리가 울렸다. 우영은 자리에 서서 침을 삼켰다. 빈 의자가 혼자 흔들거렸다. 솨아- 하고 눈길을 헤치는 소리가 났다. 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모습을 드러낸 건 여러 마리의 개였다. 썰매를 끌고 달리는 개들에게선 입김이 피어올랐다. 앞자리에 앉은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점점 형체가 또렷이 보였다. 축 늘어진 그것은 앉아 있다기 보다 매어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피투성이가 된 산이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산…! 달려 나가는 우영의 머리 옆으로 총알이 날아왔다. 메아리를 자아내며 벽에 박혔다. 피투성이가 된 산의 머리채를 잡은 얀센이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저 새끼가 너한테 뭐라고 하던?

​

    내동댕이 쳐진 산은 전혀 눈을 뜨지 못했다. 마룻바닥에 머리를 가누지 못해 비틀거렸다. 계속 입에서 흐르는 피를 뱉었다. 우영은 연신 산에게 말을 걸었다. 눈 좀 떠봐. 산아. 산아. 응?

​

    수사가, 어쩌고, 국제법이, 어쩌고, 하던?

​

    마디마다 발에 채였다. 산은 흔들리면서도 볼품없이 흉이 진 오른손으로 우영의 손을 잡았다. 우, 영아. 한국말로 불렀다. 응. 나 여기 있어. 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한거냐. 이 사기꾼 새끼. 요즘은 개나 소나 경찰이란다. 병신 같은 게. 영, 넌 속은 거라고. 알아? 이 새끼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무것도! 우영은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이번엔 우영이 걷어차였다. 그대로 맞아주었다. 바보 같긴. 네가 그렇게 다정한데 굴러먹을 대로 굴러먹은 내가 그걸 모를 리가 있겠어. 나 기억났어. 우리 전에 만난 적 있지. 그거 나지. 네가 말한 사람. 그게 나인거지. 산아. 이제 네 이름도 쓸 수 있어. 한국어로. 우리의 언어로.

 

    엉망으로 부은 얼굴로 산이 웃었다.

​

    역시. 똑똑해. 우리 우영이.

​

    산이 우영의 머리를 쓰다듬자 화가 난 얀센이 괴성을 질렀다. 책장이 쓰러지며 녹음기가 툭 떨어졌다. 커버가 열리며 빈 내부가 드러났다. 가짜 녹음기는 테잎 없이도 계속 점멸했다. 우영은 하하…, 습관처럼 힘없이 웃었다. 넘실거리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얀센은 거칠게 집 내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내 다이아 어쨌어. 어디에 숨겼냐고. 이 개새끼들아! 당장 말하지 못해?! 집안은 더 망가질 수 없게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산은 비척대며 몸을 일으켰다. 실은, 나도 그렇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우영이 산을 올려다보았다. 산은 서랍을 열었다. 어지러운지 고개를 저으며 비틀거렸다.

​

    세상을 미워하지만 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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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컥 소리와 함께 리볼버 탄창이 돌아갔다. 그를 만류했다. 안 돼. 산이 대답했다. 어떤 거? 사랑하는 거?

​

    고개를 저었다.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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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됐어.

 

    산이 웃었다. 낌새를 눈치 챈 얀센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총성이 울리며 동시에 누군가가 옆으로 쓰러졌다. 산은 비틀거렸지만 여전히 서있는 채였다. 아악. 비명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열려있던 현관으로 들이닥친 어떤 것이 얀센을 물어뜯고 있었다. 머피…. 너무도 수척해져 썰매개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럴 정신이 없기도 했다.

 

    산이 우영을 잡아끌며 집을 빠져나왔다. 입가에 피를 묻힌 머피가 우영을 물끄럼 쳐다보았다. 풍성했던 꼬리는 작게 흔들거렸다. 머피는 점점 작아져갔다. 돌아보지 마. 뒤에서 우영을 끌어안은 산이 말했다. 설원 사이로 썰매가 힘차게 달렸다. 날이 좋아서 눈이 금방 녹을지도 모르겠어. 여기 항상 하얀 건 아니더라. 초록이 무성할 때에도 너를 봤었어. 처음엔 원망을 많이 했지. 나는 누구 때문에 어린 시절 짧은 순간을 잊지 못해 그토록 찾아 헤매며 살아왔는데. 내가 본 너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반쪽 같던 나를 다 잊고 머리 노랗고 눈 파란 애들이랑 섞여 사는 네가 미웠어. 내 팔의 흉터와 같은 게 네 다리에도 있어. 그렇게 알았는데 넌 이미 다른 흉터가 더 많아졌더라. 알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알게 됐어. 네가 언젠가 말한 반쪽짜리 뿔이 달린 순록. 나도 본 적 있어. 밤이 아니라 낮에. 네가 뿌연 눈으로 모든 걸 포기한 듯 하늘을 바라볼 때. 나도 거기에 있었어. 거기까지 알기 위해 그 외딴 집에 살았어.

 

    도착한 곳은 선착장이었다. 페리에 실어진 차들은 먼지가 덮인 채 정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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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오늘이 너를 지켜보는 마지막이라고 다짐하면서도 어쩌지 못했다. 물가에 혼자 머리를 담그고 있는 너를 어떻게 지나칠 수 있을까. 빙판 아래로 조용히 잠수하는 너를 어떻게 내버려둘 수 있을까. 두 손목이 다 부어오른 너를.

​

    알 수 없는 굉음이 가까워 왔다. 거대한 헬리콥터가 지상으로 내려앉았다. 프로펠러가 돌아가며 부는 바람이 머리칼을 엉망으로 흩뜨렸다. 그것을 쓸어 넘겨주던 산이 손을 잡아왔다. 소리가 묻혀 그가 뭐라 말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 만은 분명했다.

 

    가자.

​

    그가 그렇게 말했다. 먼 산 위로 구름이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늘이 지나가면서 쌓인 눈 위에도 햇볕이 내렸다.

​

    인생은 여행과도 같아, 출발지가 있고 도착지가 있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

    "이제 집에 가자. 우영아."

​

    이마를 맞댄 산이 말했다. 너는 너를 얼룩이라 하지만, 나는 무늬라고 부를 거야. 부디, 있는 그대로 선명하게 살아줘. 너로 인해 본 아름다움을 기억해. 네겐 기억조차 나지 않는 찰나였을지라도 내겐 교리였어. 산은 흠뻑 젖은 속눈썹으로 웃었다. 더없이 맑았다.

 

    빙하가 지나간 자리가 점점 멀어진다. 호선을 그리는 입꼬리와 깊은 눈이 곤한 잠에 빠졌다. 덜컥 불안해져 코 밑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부스스 흩어지는 숨. 나란히 긴장을 놓고 어깨를 기댄다. 한잠 자고 일어나면 될 것 같다. 긴 시간을 뛰어넘어 망설임 없이 잡아준 손을, 집이 되어준 너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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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한국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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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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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

 

    우선 지루한 글 끝까지 인내하고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당..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어용... 영혼의 쌍둥이 같은 두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모랄까.. 시바꺼 인생 다 부질없고 배알 꼴, 리는게 아니고 기분이 좋아짐니다.. 예.. 건강해지고요... 낫웡 is,, 337 건강박수 씨피.. 합작주님 정말 정말 고생하셨고 귀한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동. 우리네 살아가기가 퍽퍽한 삶이지마는,, 아가들 보면서 즐거운 생각을 더 많이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요.

 

최약체 소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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