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 스위트 시가
농부
헤밍웨이는 말했다. 글쓰기란 별거 없지. 그저 타자기 앞에 앉아 피 흘리면 된다네. 산은 그러나 오늘도 하루 종일 벌써 몇 달째 피 한 방울 묻히지 못해 깔끔한 원고를 노려보고만 있다 끝내 갑갑한 듯 내쉰 한숨을 마지막으로 작업 창을 닫아버렸다. 아, 헤밍웨이 형. 글쓰기가 왜 이래. 마감일은 다가오는데 이러다 제 통장 잔고야말로 정말 별거 없게 돼버릴 판이라 자꾸만 테이블 한구석 아무렇게나 처박아둔 담뱃갑이 눈에 밟혔다.
그동안 잘 풀리지 않는 원고를 핑계 삼아 태워 없애버린 담뱃값만 해도 아마 담배공사 직원들 한 달 치 월급은 거뜬할 테다. 해가 바뀔수록 부쩍 갈증을 느끼는 빈도가 잦아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멀쩡하던 목구멍도 괜히 따끔따끔 엄살을 피워오는 듯해 두어 번 헛기침을 하며 바로 옆의 텀블러로 손을 뻗었다. 아직 뜨거운 김이 새어 나오는 구멍에다 입술을 대고 조심스레 병을 기울이는데, 무심코 내려다본 담뱃갑 포장지가 새삼 눈길을 붙들었다.
한때는 모히또라 불리던 이름, 시가 쿠바나. 짙은 푸른색으로 음각인쇄된 영문자가 청록색과 하늘색 사이 어디쯤 에메랄드그린의 상단에서 빛나고 있었다. 홀린 듯 내려놓은 텀블러를 뒤로하고 담뱃갑을 가져가 쥔 손끝에 은은한 광택이 도는 알파벳 위로 오돌토돌한 종이 표면이 만져졌다. 모히또, 한 잔의 쿠바. 그리고 헤밍웨이, 어니스트 헤밍웨이.
문득 궁금해졌다. 그의 문장은 무엇으로 뜨거운 피 흘리고 또 무엇에 살해당해 영영 멎어버렸나. 펜 대신 총으로, 종이보다 자신의 생에 먼저 찍어버린 마침표. 미완의 삶이 죽음까지 내몰리도록 잊지 못한 쿠바는 무엇이었을까. 에메랄드빛 수면 위로 파란 청새치 떼가 뛰어다니는 바다. ‘라 보데기타’의 모히또, ‘엘 플로리디타’의 다이끼리. 헤밍웨이가 사랑한 쿠바, 그곳에선 어쩌면 저도 피 흘릴 수 있을까. 죽음까지 내몰리는 그런 사랑을 하게 될까.
AM 01:26 CST,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
터미널을 빠져나와 처음 마주한 아바나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후덥지근한 밤공기가 과연 쿠바의 심장이라 할만했다. 이곳저곳 바쁘게 돌아다닐 계획이 아닌지라 그리 크지 않은 여행용 배낭을 멘 채 손에는 네모난 노트북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나온 산이 잠시 내려놓을 곳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였다.
“아, 익스펜시브! 투 익스펜시브!”
난데없이 들려온 음성에 주의를 빼앗겨 돌아보니 누군가 몇 없는 택시 기사들과 열띤 흥정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노노노노, 투 익스펜시브. 앞뒤로 멘 배낭 두 개가 유독 버거워 보이는 상반신 위로 조그만 머리통만 빼꼼 튀어나온 옆모습은 세종대왕의 핏줄임이 틀림없는 정직한 발음으로 거듭 비싸다 도리질을 치고 있었다.
“떠리 빠이브, 노. 투 익스펜시브.”
고집스러울만치 단호한 태도에 이쯤 되면 몇몇은 짜증을 내며 돌아섰을 법도 한데, 모두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여전히 그의 주위를 지키고 서있는 기사들은 그러나 적어도 아직까지는 다른 손님을 받으려는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하나같이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가격을 부르고 있는 그들은 저들 가운데 선 여행자와의 흥정을 즐기고 있는 듯 보이기까지 해 한시라도 빨리 아바나 시내로 가고 싶은 구경꾼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장시간 비행에 지친 몸을 서둘러 누이고 싶은 마음이야 저라고 다를 것 없었으나 기꺼이 눈앞의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한 산은 급한 대로 가까운 장의자에 짐을 풀고 앉기가 무섭게 낡은 가죽 수첩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리곤 펜이 끼워져있던 페이지를 펼쳐 ‘더운 바람 냄새’, ‘샛노란 택시’, ‘한국식 영어’ 따위 것들을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명색이 작가라고, 제법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될지도 모르는 광경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생긴 습관이었다.
“떠리? 아, 떠리 스읍. 떠리 잠깐만, 떠리 웨이러 미닛. 투에니 빠이브 없냐고요, 투에니 빠이브! 유 투에니 빠이브? 오, 혹시 투에니! 노 투에니? 투에니 푸처핸접!”
여권 쥔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외친 그는 에미넴 저리 가라는 듯 거들먹거리던 것도 잠시 이내 으하학, 개구진 웃음소리를 냈다. 얄미울 만큼 뻔뻔한가 싶더니 또 금세 수줍어하는 태도가 묘하게 귀여워 따라 웃던 산은 덩달아 웃음이 터진 주위를 신기한 듯 둘러보았다.
“오케이, 투에니 빠이브. 투에니 빠이브, 렛츠 고!”
그러며 서글서글 너스레를 떠는 표정과 제스처가 여간 능청스러운 게 아닌지라 그를 둘러싼 기사들은 물론이거니와 발을 구르며 지켜보고 있던 다른 여행자들까지도 와하하, 가벼운 폭소를 터뜨렸다. 더러는 오랜 흥정 끝에 기어이 제가 아닌 다른 기사의 팔을 잡아끄는 그를 보며 아쉬운 듯 농담 섞인 원성을 내기도 했다. 그러자 앞뒤로 메고 있던 배낭을 벗어 몽땅 뒷좌석에 실어놓은 그가 조수석 문고리를 잡아당기며 외쳤다.
“어어, 쏘리! 땡큐, 그라시아스! 아디오스!”
덕분에 잠시나마 무료함을 달랜 쿠바노들은 마지막까지도 창문 밖으로 내민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그를 향해 너도나도 즐거운 여행을 빌어주었다.
“¡Cuba te da la bienvenido!”
“You will love Cuba!”
저래서 다들 꼼짝도 않고 모여있었구나, 깨달음을 얻은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렸다. 산은 그새 까만 글씨로 빼곡해진 페이지를 흐뭇하게 내려다보았다. 쿠바를 좋아하게 될 거야. 영문으로 받아 적은 문장이 꼭 제게 하는 말인 듯 인상 깊었다. 쿠바에 오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 시작이 좋았다.
AM 06:17 CST, 말레꼰.
밤낮이 바뀌어버린 시차 때문일까. 미리 예약을 해둔 덕에 쉽게 찾아갈 수 있었던 까사는 싱글베드 두 개가 놓인 방도, 제 몫으로 주어진 이부자리도 모두 만족스러웠으나 채 세 시간을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다시 돌아 나와야 했다. 까만 반팔 티 아래 밴딩으로 허리를 조인 체크무늬 팬츠. 잠옷 차림 그대로 방문을 나서 어느새 방파제 위를 걷고 있는 산의 손에는 그 흔한 휴대폰도, 카메라도 없이 달랑 가죽 수첩 하나만 들려있는 모양새가 꽤나 자연스럽다.
곧 해가 뜨려는 모양인지 하나둘 건너편 가로등 불빛 아래로 모여들기 시작한 사람들이 저마다 적당한 자리를 찾으려 분주했다. 올라, 쿠바식 인사를 건네오는 그들과 하나하나 천천히 눈 맞춰가며 걷던 산은 저 앞의 낯익은 옷차림을 발견하곤 저도 모르게 엉거주춤 걸음을 세웠다. 품이 넓은 회색 반팔 티 아래 아이보리색 펑퍼짐한 벌룬 팬츠. 불과 몇 시간 전 공항에서 본, 분명 그였다.
크로스백처럼 메고 있던 가방을 벗어 둑 위로 올려놓은 그는 무심코 돌아본 이쪽을 향해 티 없이 말간 얼굴을 했다. 스치듯 엉킨 시선을 계속 부딪치고 있으니 의아한 듯 갸우뚱 고개를 움직이는 모습이 꼭 경계심 없는 집고양이를 닮았다. 녀석들은 처음 본 손님에게도 곧잘 뺨을 비비곤 하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내 샐쭉 웃으며 한 손을 들어 올린 그가 활짝 편 손바닥을 흔들며 인사해왔다.
“올라!”
그리곤 훌쩍 뛰어오른 둑 위에 쭈그리고 앉은 그를 향해 저도 함께 올라, 인사해 주었다. 하얀 시멘트 바닥을 짚었던 손을 털며 빙긋 웃어 보인 그는 아예 철퍼덕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무언가 두둑해 보이는 제 가방을 안아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저 멍하니 여행용 삼각대와 카메라를 꺼내드는 그를 보고 있던 귓가가 희미해지고, 오직 캄캄한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파도 소리만이 선명했다. 흔히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던가. 저 멀리 수평선으로 오늘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야무지게 세워둔 삼각대를 뿌듯한 눈으로 보던 그가 수줍은 듯 힐끔 이쪽을 쳐다보며 웃었다. 칠흑 같던 아바나 시내를 마치 핏덩이처럼 붉은 태양이 밝게 비추고, 카메라 너머 풍경을 마주하고 있는 낯에도 어느새 붉은빛이 드리웠다. 그때에 산은 아주 잠시 무언가 멈춰버린 듯 고요했던 가슴속에서 별안간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박동을 느꼈다. 말레꼰 최고의 절경이라는 저 일출도,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도. 말간 얼굴 한가득 뜨거운 쿠바의 심장을 뒤집어쓴 그 미소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PM 08:51 CST, 까사 베르데.
이곳 쿠바의 시간은 제가 떠나온 한국보다 무려 열네 시간이나 느리게 흐른다. 해가 떠있을 적에 까사를 나섰던 여행자들이 하나둘 오늘 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올 시간, 종일 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가득하던 안마당에도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한 말소리들이 그새 찾아온 저녁을 알렸다. 해가 지면 어두울 거라 예상했던 실외는 다행히 마당 구석구석 놓인 랜턴 덕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마침 텅 빈 등유 통을 들고 지나가던 주인이 아직도 소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을 향해 부에나스, 저녁 인사를 건네며 물었다.
“¿No estás cansado?”
능숙치 않은 스페인어를 곧장 알아듣지 못하고 갸웃거리자 이번에는 비교적 익숙한 대신 다소 투박한 발음의 영어가 들려왔다.
“No tired?”
모두들 잠든 새벽에 외출했다 돌아온 제가 한나절 내도록 잠 한숨 자지 않고 깨어있던 게 내심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Oh, yes. I’m good, thank you.”
그라시아스, 쿠바식 감사 인사도 잊지 않고 덧붙인 산이 눈을 접어 웃으며 고개를 꾸벅이자 덩달아 고개를 끄덕거린 그녀의 낯에도 푸근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곤 식사는 어떻게 했느냐, 근처에 맛있는 큐반 샌드위치 가게가 있다는 등의 기분 좋은 대화가 얼마간 더 이어졌다. 꼭 먹어보겠다며 노트북을 덮고 일어선 산은 저도 이제 방으로 돌아가 드디어 잠을 청해볼 생각이었다. 이른 아침 일출을 보고 난 다음에야 밀려오기 시작해 여태 참아온 졸음이 곧 한계인 듯 쏟아지고 있는 탓이었다.
하얀 꽃생강 무성하게 핀 안마당을 뒤로하고 안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아치문 지나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하나 보인다. 녹색 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밖에서 본 건물 외벽부터 코발트그린 페인트칠이 되어있는 까사는 내부 또한 어딜 보나 온통 초록빛이었다. 정사각형의 자잘한 타일들이 멜론색과 상록수색 번갈아가며 촘촘하게 붙어있는 벽을 따라 걷다 보면 일직선 복도의 오른쪽 끝에 있는 문이 바로 제가 묵는 방이었다.
연신 터져 나오는 하품과 함께 바지 주머니 속 열쇠를 꺼내든 산은 문턱이 없는 아래쪽 틈으로 새어 나오는 중인 빛을 보고 멈칫 열쇠구멍 앞에 댄 손을 움찔거렸다. 불을 안 끄고 나왔던가? 몇 안 되는 기억을 더듬어도 봤으나 애초에 켠 적이 없는 불이었다. 그러자 오늘 새벽 비어있던 옆 침대를 떠올린 머릿속에서는 아마도 새 투숙객이 들어온 모양이다, 결론이 내려졌다. 어떤 사람이 들어왔으려나, 기왕이면 또래가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잡은 문고리를 돌리자 왠지 모르게 익숙한 뒤통수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
갑작스럽게 열린 문을 홱 뒤돌아본 그는 그렇잖아도 동그란 두 눈을 휘둥그레 뜬 모양새가 어지간히 놀란 눈치였다. 안면이 있는 얼굴이니 그럴 만도, 심지어 그는 모르게 스친 공항에서의 첫 만남까지 제 쪽에선 벌써 세 번째 겪는 우연이었다. 말레꼰에서 함께 일출을 맞은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재회한 이와 같은 숙소 그것도 한 방을 쓰다니, 같은 한국인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면 저 커다란 눈이 얼마나 더 커질는지 퍽 걱정스럽던 참이었다.
“그, 아까……! 아 뭐라 그래야 돼, 우리 아까 봤는데!”
“말레꼰?”
“어 맞아, 말레꼰! 기억하는구나! 유 리멤버 미!”
짝 소리 나게 손뼉까지 쳐가며 반색을 한 그가 벌떡 일어나 마주 선 몸을 가까이 붙여왔다.
“Sure, 아니…….”
“뭐야, 한국인? 한국 사람이에요!?”
네에, 엉겁결에 대답하니 대박,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선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푸스스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말도 안 돼, 진짜? 진짜 한국 사람이에요? 한국에서 오신 거예요, 그럼? 와, 이런 일이 있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우리 아까도 봤잖아요, 말레꼰에서!”
속사포처럼 쉼 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을 멍하니 고개만 주억거리며 듣고 있던 산이 마지막 동의를 구하는 듯한 외침에는 번쩍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그랬죠, 응.
“저는 우영이에요, 정우영.”
“아, 저는 산이에요. 최, 산.”
백두산 한라산 할 때 그 산 맞아요, 하도 자주 해 버릇해 입에 붙어버린 설명을 덧붙이자 눈을 마주친 채 끄덕끄덕 고갯짓을 하고 있던 그가 으하학 경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원래의 크기는 가늠도 안 될 만큼 가늘게 접혀 호선을 그린 눈매가 꼭 신이 난 여우를 떠올리게 했다. 볼록 솟아 동그란 광대 아래 보조개처럼 예쁘게 파인 뺨, 무엇보다도 한껏 크게 벌린 입안에서 깍깍 튀어나오는 소리가 그저 가벼운 미소를 띨 때와는 또 다른 인상을 주었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는 아, 이런 거 물어보면 좀 그런가?”
“아니, 아뇨. 괜찮아요, 저는 스물아홉이요.”
“대박, 친구네!”
그리곤 각자 침대 모서리에 마주보고 앉아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떠드는 내내 바닥에는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그의 캐리어가 활짝 펼쳐져 있었다. 한쪽으로는 크고 작은 카메라들과 함께 용도를 알 수 없는 각종 장비들이, 다른 한쪽으로는 몇 안 되는 옷가지 사이사이 전부 여기 도착해 구입한 것들이라는 포장식품이 가득했다. 몇몇은 스페인어, 또 몇몇은 영어로 된 겉면들을 훑어보고 있으니 개중 더러 있는 위생 백 하나를 달랑 집어 든 그가 저녁식사를 한 식당에서 얻어온 간식이라며 거무튀튀한 튀김 한 조각을 건네왔다.
“바나나 튀김, 몰라? 식당 가면 많이 나오는데.”
“아직 여기 식당을 안 가봐서.”
“밥은 그럼, 뭐 샌드위치? 샌드위치 먹었어?”
“아니, 토스트랑 뭐……. 그냥 여기 조식.”
“점심은.”
“아침을 늦게 먹어서…….”
저녁은, 재차 물어오는 말에 결국 말문이 막혀버린 입술 새로 불쑥 고소한 냄새가 비집고 들어와 물려졌다. 거칠거칠하다 싶던 표면은 침 발린 혓바닥과 닿자마자 수분을 빨아들이며 금세 눅눅해지는 식감이 제법 신기했다. 이내 죽처럼 흐물흐물해진 덩어리를 오물오물 씹어삼키자 부스러기가 묻은 듯 간질거리는 입가로 또 한 번 불쑥 거리낌 없는 손길이 찾아들었다.
“쓰읍, 가만있어 봐.”
순간 당황해 뒤로 물리려던 몸을 짐짓 엄한 목소리로 붙잡아둔 그가 여기 뭐 묻었단 말이야아, 단정한 미간까지 찌푸려가며 찡얼거리는 소리를 냈다. 저도 모르게 경직된 입술을 살살 털어주던 손끝은 쌕쌕 주고받는 숨결이 너무 가깝다는 생각을 할 때쯤 움직임을 멈추고 떨어져 나갔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됐다, 중얼거린 그가 다시 풀썩 제 침대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어때? 맛은 그냥 그렇지.”
“음…….”
응,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니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또 푸하학 손뼉 치며 웃음을 터뜨린다. 웃음이 많은 편인 것 같았다.
“근데 이상하게 자꾸 생각난다? 나중에 한국 가면 먹고 싶어도 못 먹어, 바나나가 종이 다 달라서.”
“더 먹어도 돼?”
“엉? 아아, 응. 너 다 먹어, 자. 이거 어차피 먹지도 못해, 나는. 배불러 죽겠는데 사장님 민망하실까 봐 들고 온 거거든.”
더 먹으면 배 터져 진짜, 그러며 벌러덩 침대 한가운데로 가 누운 그가 부른 배를 마사지하듯 가볍게 통통 두드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산은 얼떨결에 건네받은 바나나 튀김을 봉지째 침대맡 협탁 위에 올려두고는 저도 주섬주섬 잘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안마당에서부터 쏟아지던 졸음도 언제부턴가는 까맣게 잊은 채였다. 사람이 가진 에너지라는 게 이런 거구나, 칫솔을 물고 세안 도구를 챙기는 내내 괜히 자꾸만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AM 09:30 CST, 페리 선착장.
어젯밤 나란히 놓인 각자의 침대 위에서 서로 같은 천장을 보고 누워 한 약속이 있었다. 정확히는 잠들기 전까지 주고받았던 대화 끝에 내린 어떠한 결론에 더 가까웠지만, 아무튼. 내일은 뭐해? 내일도 글 써? 종일 까사 안마당 소파에 앉아 한 일을 들려주었더니 그렇게 물어오던 그는 날이 밝으면 뱃길 건너 까사 블랑까에 다녀올 계획이라고 했다. 허쉬 트레인이라고, 바닷길을 달리는 아주 오래된 전차의 종착역이 거기 있다며. 같이 갈래? 무심한 듯 툭 던져온 제안에 냉큼 응해버린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단지 그냥 그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해 뜨던 말레꼰에서도 본 적이 있는, 탁 트인 바다와 마주한 채 웃는 바로 저 얼굴을 말이다. 산은 막 올라탄 페리의 창가로 가 서는 우영을 느긋한 눈으로 좇으며 뒤따랐다. 약 15분 후 출발 예정인 배는 이곳 선착장을 떠나 저 멀리 예수상이 보이는 건너편에 도착할 테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를 만난 지 이제 겨우 하루가 되었을 뿐인데 이러한 동행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다는 게. 서로에 대해 아는 거라곤 기껏해야 같은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와 이름 몇 자가 전부인 사이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더 알고 싶었다. 투명한 창에 딱 달라붙어 넘실넘실 바깥 풍경을 담고 있는 저 눈동자는, 과연 어떤 쿠바를 찾아 여기까지 온 걸까.
AM 10:01 CST, 까사 블랑까.
아바나 시내보다도 훨씬 낡고 한적한 근교, 까사 블랑까. 뭍에 내리자마자 하얀색 표지판 위 검은 글씨로 대문짝만 하게 적힌 마을 이름이 저들을 반겼다. 동명의 영화 제목으로도 잘 알려진 모로코의 도시와 같은 철자를 쓰지만,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이곳에선 ‘카사블랑카’가 아닌 ‘까사 블랑까’라고 소리 내는 게 맞다. 제 키만 한 표지판을 보고 선 우영은 좀처럼 입에 붙지 않는 된소리를 중얼중얼 발음해보다 이내 멀지 않은 곳에 바로 보이는 한 주스 가게를 발견하곤 외쳤다.
“어, 구아라포!”
그리곤 눈 깜짝할 사이 후다닥 달려가 무얼 주문하는가 싶더니 설레는 듯 발을 구르며 이리 오라 손짓한다. 잔뜩 상기된 얼굴을 보며 습관처럼 피식 웃음이 터져버린 산은 하여간 못 말린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면서도 그가 있는 까페떼리아를 향해 걸었다. 가까이 서기가 무섭게 제 앞으로 내밀어진 유리잔 속에는 희끄무레한 각 얼음 달그락대는 소리와 함께 뿌연 녹갈색 음료가 넘칠 듯 말 듯 출렁거리고 있었다. 안쪽에선 이 와중에도 착실하게 돌아가는 중인 착즙기 소리가 요란했다.
“구아라포라고, 사탕수수 즙인데 한번 먹어봐.”
내가 쏘는 거, 샐쭉 웃으며 한입 가득 음료를 머금은 그가 동그란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엄지를 치켜세웠다. 얼른 마셔보라는 듯 끄덕끄덕 고갯짓을 하기에 빵빵하게 부푼 양볼을 보고 있던 눈으로 손에 쥔 주스를 힐끔거렸다. 떫을 것 같은데, 내키지 않아 혀끝만 살짝 대어본 맛이 예상을 깨고 부드러운 게 의외였다. 오, 작게 감탄을 뱉자 맛있지? 그럴 줄 알았다며 우쭐하는 얼굴이 예뻤다. 그러자 문득, ‘예쁘다’는 표현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지금껏 제 글 속에 이토록 예쁜 사람이 있었던가.
PM 09:47 CST, 엘 플로리디타.
헤밍웨이는 말했다. 나의 모히또는 라 보데기타에, 다이끼리는 엘 플로리디타에. 도수 높은 다이끼리 대신 부드러운 코코넛 크림과 달콤한 파인애플 조각을 띄운 삐냐 꼴라다를 주문해 마시고 있던 산이 우영의 앞에 놓인 ‘파파 헤밍웨이 스페셜’을 내려다보았다. 말이 거창해 스페셜이지 그저 당뇨를 앓았던 헤밍웨이를 위해 설탕은 빼고 럼은 두 배로 넣은 다이끼리였다. 슬러시처럼 걸쭉한 칵테일을 한 모금 맛본 우영의 낯에 은은한 긍정의 미소가 번졌다.
“괜찮은데? 맛있다.”
그리곤 테이블 위 재떨이에 걸쳐진 뚱뚱한 시가를 본다. 궐련도 한 번 피워본 적 없는 그로선 난생처음 본 잎담배였다.
“술은 독하고, 그건 안 독해?”
헤밍웨이를 쫓아 여기까지 왔다면서 정작 그가 즐겨마셨다는 술은 너무 독해 못 마시겠다던 엄살을 두고 한 질문이었다. 굳이 숨기려 들지 않는 속뜻을 단번에 알아차린 산의 입술 새로 하얀 시가 연기와 함께 흘러나온 웃음소리가 푸스스 잘게 부서졌다. 다이끼리도 아닌 삐냐 꼴라다는 이제 겨우 두 잔째인데, 커터로 잘라낸 시가 캡은 벌써 세 개나 되어 사이좋게 재떨이 위를 구르고 있으니 제가 보기에도 퍽 우스운 광경이긴 했다.
“이거 피우려고 여기 온 것도 있어서.”
“그것도 헤밍웨이가 좋아한 거야?”
“시가? 음……. 그랬겠지, 아마도?”
“왜 그렇게 좋아해? 헤밍웨이.”
다른 유명한 작가들 또 많잖아, 덧붙인 우영이 정말로 세계 어디를 가나 알법한 대문호들의 이름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 괴테, 위고, 헤세……. 산은 무수히 떠오르는 더 많은 이름들을 곱씹어 보다 대답했다. 그냥, 그 사람 글을 좋아해. 그러자 유심히 그를 보고 있던 우영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사람은 별로 안 좋아한다는 말로 들리네. 산은 말없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여기 와보니까 어때? 글은 좀 써지는 것 같아? 종알종알 물어오는 입술을 보며 글쎄, 답을 망설인 이유는 하나였다.
“일단 오늘은 한 글자도 못 썼네, 나 때문에.”
샐쭉 웃는 얼굴을 보며 입에 문 시가가 달았다. 분명 담뱃잎 연기를 빨아들이는데 자꾸만 사탕수수 단맛이 났다. 채 두 잔을 비우지 못한 제 삐냐 꼴라다든 다이끼리가 묻은 그의 입술이든, 아무튼 저도 모르는 사이 취해도 아주 단단히 취해버린 모양이었다.
PM 11:26 CST, 말레꼰.
허리춤 높이의 방파제 벽에 기대서자 등 뒤로 캄캄한 파도 소리가 쏴아아 밀려왔다. 실내에 들어가 있던 사이 소낙비가 내린 길바닥에는 군데군데 얕은 물웅덩이가 생겼다. 흠뻑 젖은 길 위로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아른거리는 시멘트 바닥을 내려다보며 종일 안중에도 없던 휴대폰을 꺼내들자 여태 89%나 남아있는 배터리가 아직은 조금 낯설었다.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장소가 한정적인 쿠바에서 스마트폰이니 뭐니 하는 발명들은 죄 무쓸모했다. 저기 길 건너 공중전화의 수화기를 붙잡고 서있는 쿠바나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여기는 좀 잘 터지네.”
“다른 데서도 써봤어?”
“응, 저기 골목 안에도 한 군데 있는데 거기는 잘 안 터지더라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린 우영이 다시금 휴대폰 화면에 집중하는 동안 산은 멍하니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함께 바를 나와 걸어오면서 그가 해준 말들이 여전히 귓가를 맴돌고 있는 탓이었다.
‘나 사실 이별여행 온 거거든, 애인이랑 헤어지고.’
‘원래는 같이 오기로 했었어, 걔가 체 게바라 광팬이라서.’
‘근데 너도 헤밍웨이 때문에 왔다는 거야.’
‘둘 다 쿠바 사람도 아니라며, 여길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
그러게, 나도 그게 궁금했는데. 제 속마음을 들었을 리 없는 그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눈앞으로 들이밀어진 휴대폰 속에는 젖살이 빠지기도 전인 듯 지금보다 앳된 모습의 그가 누군가와 뺨을 맞댄 채 웃고 있다. 화면 밖으로 잘려있는 상대의 얼굴은 알 수 없었다. 다만 행복했을 당시 그의 얼굴만이 가득했다. 사랑을 할 땐 이런 표정을 짓는구나, 문득 제 수첩에도 받아 적어둔 한 쿠바노의 인사가 떠올랐다. 쿠바를 좋아하게 될 거야. 결국 제게 하는 말이었나, 그건. 일이 이렇게 돼버릴 걸 다 알고 말이다.
씁쓸한 미소와 함께 저 바다를 향해 돌아선 그가 만약 제 소설 속 등장인물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상상을 했다. 그랬다면 지금 당장 동그란 그의 뒤통수를 감싸 쥐고, 투명한 머릿속에 오로지 지금 이 순간만을 담게 하고. 산이 우영에게 입 맞추었다, 따위의 문장을 써내릴 텐데. 하얗게 텅 빈 원고를 우리의 이야기로 채우고, 활자를 빌려 한 우리의 사랑에 슬픈 결말은 없을 텐데.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고 선 눈가가 시렸다. 이 세상에 현실보다 더한 소설은 없고, 소설은 늘 이루지 못할 현실임을 알아 아름다운 법이다.
Sugar sweet Cigar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군가 딱 한 사람을 만난 것이,
마치 내 인생을 다시 태어나게라도 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 밤!”
― 체 게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