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게퍼를 부탁해
디어
바야흐로 ‘K-컬처’의 시대, 그저 알파벳 ‘K’만 갖다 붙였다 하면 돈이 되는 세상. 백범께서 말씀하시길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하셨던가. 옛날 옛적 가까운 아시아권에서만 불던 ‘한류 열풍’은 이제 철 지난 유행어쯤으로나 여겨지는 오늘날, 빌보드 차트를 제집 드나들 듯 오르내리는 아이돌 그룹부터 할리우드를 매료시킨 충무로 영화, 그리고 딤섬을 제치며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는 만두까지. 우리는 연일 쏟아지는 국뽕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여기, K-컬처의 본고장인 대한민국 서울에, 차세대 케이팝 스타가 되기를 꿈꾸는 소년들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산과 우영은 트레저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 신분으로 처음 만났다. 당시 1년 남짓 연습생 생활을 한 산에게는 첫 회사였던 반면, 이미 다른 대형 기획사에서 2년을 넘게 지내다 온 우영에게 트레저는 사실 또 다른 유명 기획사로 옮겨가기 위한 환승역에 불과했다. 그러니 지금이야 함께 산전수전 다 겪으며 데뷔 3년 차에 접어든 두 사람에게도 분명 처음엔 서로 내외하듯 거리를 두던 때가 있었다. 오죽 멀었으면 그런 둘을 두고 어색하다는 놀림조차 너무 어색해 꺼내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랬던 두 사람이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은 우영이 결국 트레저에서의 데뷔를 결심한 즈음부터였다.
유난히 추운 겨울, 종일 소리 없이 내린 눈이 많이도 쌓인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연습실 불을 끄고 나온 산은 꼭 제 패딩처럼 새하얀 눈길을 뽀득뽀득 밟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핫팩과 함께 손을 넣고 있던 주머니 속에서 막 진동이 울린 휴대폰을 꺼내들자 숙소에선 언제 오냐는 맏형 성화의 메시지가, 집에선 밥 잘 먹고 다니냐는 아버지의 문자가 도착해있었다. 그러고 보니 새해를 맞은 지 보름이 지나도록 전화 한 통 드리지 못한 게 생각이 나 얼른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참이었다. 어느새 주차장까지 온 아파트의 공동현관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옷차림이 낯익었다.
‘……우영이?’
조심스레 휴대폰 쥔 손을 멈추고 불러본 이름에 고개를 들어 올린 얼굴은 분명 그날 아침 본가에 다녀오겠다던 우영이 맞았다. 하룻밤 자고 올 예정이라던 그의 이른 귀가도 귀가였지만, 산은 무엇보다도 눈물 글썽거리는 그의 큼지막한 두 눈에 놀라 걸음을 보챘다. 왜 그래, 왜 울어. 서둘러 다가가 물으니 금방 또 떨구고 마는 고개에는 평소 그답지 않게 힘이 하나도 없었다. 기어이 계단을 밟고 선 산은 우영의 옆자리에 소복이 쌓인 눈을 깔고 앉으며 생각했다. 자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 집에 무슨 일 있어? 할 말을 고르며 일단 무작정 뻗고 본 손이 본능적으로 그의 검은색 패딩 입은 어깨를 감싸 쥐고 있었다.
‘…….’
‘…….’
잠시간 이어진 침묵을 깨뜨린 건 흐느끼는 듯한 새된 목소리였다. 그래도 1년 가까이 우영과 함께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산은 단 한 번도 그의 눈물을 본 적이 없었다. 기어이 들썩들썩 떨리기까지 하는 어깨를 만져주며 안절부절 눈알만 굴리고 있으니 두꺼운 패딩 탓에 둔한 몸을 꾸물꾸물 움직인 우영이 두 팔 벌려 산의 목덜미를 와락 끌어안았다. 나 또 떨어졌어.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물어보고 싶었어도 이후로는 아주 대성통곡을 하며 울어대는 바람에 통 기회가 없었다. 결국 코알라처럼 매달려오는 우영의 뒤통수와 등허리를 감싸 안은 채 잠잠해질 때까지 다독여주다 자정을 훌쩍 넘겨버렸다. 휴대폰을 넣어둔 주머니 속에선 아까부터 홍중과 성화, 그리고 윤호의 전화가 번갈아가며 빗발치는 중이었다.
‘……들어갈까?’
‘…….’
‘싫어? 좀 더 있다 들어갈까?’
‘왜 안 물어봐?’
본의 아닌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물어오기에 뭘? 하고 되물으니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던 몸을 살짝 뒤로 물리며 웅얼거리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잘 안 들려, 고개 숙여 가까이 귓가를 가져다 대려 하자 아 뭐해, 하며 밀쳐내는 손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우는지 왜 안 물어보냐고.’
‘아…….’
‘아는 뭘 아야, 바보야.’
‘그냥, 너 말하기 싫은 것 같아서.’
우영은 꼭 청개구리 같아서 남이 묻는 말에는 입 다물어도 궁금해하지 않는 눈치면 제가 먼저 술술 털어놓곤 했는데, 사실 회사 관계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가족들마저도 모르게 이곳저곳 다른 기획사 오디션을 보러 다니던 당시에는 누구라도 제 상황을 알고 위로해 줄 만한 사람이 필요했다. 하필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일곱 번째도 낙방해 울고 있던 날 그 상대를 만난 건, 또 하필 그 상대가 산이었단 건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그만큼 운 좋은 일이 제 인생에 또 있을까 싶었다. 그날 우영은 예정보다 일찍 귀가해 대충 둘러대고 만 저와 달리 연락도 없이 늦어버린 산이 홍중에게 짐짓 엄한 꾸지람을 듣는 동안에도 제 이야기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 걸 보며 생각했다. 쟤랑 같이 데뷔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아니, 꼭 쟤랑 같이 해야겠다고.
어차피 모으고 모은 연습생이 채 열 명도 되지 않던 회사에서의 데뷔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이돌 제작 경험은 없었어도 돈이 많았던 대표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 드디어 ‘디자이어’라는 이름으로 데뷔하게 된 여덟은 처음 몇 달간은 꽤나 그럴싸한 루키로서 주목을 받는 듯했다. 비록 낮은 순위에 머물다 금방 사라지긴 했으나 데뷔 앨범 타이틀곡이 유명 음원차트에 진입을 하기도 했고, 회를 거듭할수록 팬사인회장을 채우는 대포들도 눈에 띄게 많아졌으니. 라이브 방송을 켤 때마다 조금씩 늘어나는 시청자 수를 보면서는 다음엔 예고 없이 갑자기 켜보자, 같은 저들 말에 따르면 제법 아이돌스러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제각기 존경하는 선배 그룹들처럼 될 수 있을 거란 자신감, 설렘. 그런 것들은 그러나 누구도 겪어본 적 없던 첫 공백기를 맞기 전, 딱 그때까지만 이었다.
‘형, 안 가요?’
‘어, 작업할 거 좀 남아서. 먼저 들어가.’
‘오늘도 안 들어와요?’
‘보고 연락 줄게, 저녁 너희들끼리 먹어.’
리더인 홍중은 기약 없이 길어지던 공백기에 점점 작업실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눈만 뜨면 연습실에 와 종일 춤만 추다 퇴근하던 게 마치 연습생 때와 전혀 다를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던 멤버들도 말은 않지만 늘 축 처져있던 분위기가 다들 맘속으로는 지난 활동 때 우리가 너무 부족했던 게 아닌가, 자책들 하고 있는 눈치였다. 막 홍중의 작업실 문을 닫고 돌아섰던 우영은 가만히 텅 빈 복도를 보고 서있다 별안간 그즈음 운동에 미쳐있던 산을 떠올렸다. 종일 춤 연습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도 죽으나 사나 헬스장에서 두세 시간을 더 죽치고 있다 퇴근하던 게 대체 언제쯤 컴백할 수 있을는지, 이러다 많지 않은 팬들도 죄 떨어져 나가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뭐해, 안 가?’
‘아, 어. 홍중이 형 늦는다고 먼저 가래.’
‘너는.’
‘……산이 헬스장에 있지.’
우영은 마침 그쪽에서 오는 길이던 윤호가 그럴걸? 하며 고개를 끄덕거리자 무어라 더 말할 새도 없이 곧장 걸음을 돌렸다. 어디 가! 다급하게 물어오던 그를 등진 채 산이랑 같이 갈게! 외치며 달리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그 비결이 궁금해서였다. 모두가 불안해하는 와중에도 동요하지 않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할 수 있는 비결이 뭔지, 넌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건지. 마침내 달음박질을 멈춘 두 발을 세우고 유리문 손잡이를 쥐었을 때, 그러나 우영은 굳이 묻지 않고도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어깨 높이까지만 붙은 시트지 덕에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문 너머로 산이 보였다. 땀이 흥건해 보이는 벤치프레스 머신 위에 걸터앉아, 저로선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어……, 안 갔어?’
큼, 헛기침을 하며 들어서자 그렇게 물어오던 산의 얼굴은 여느 때와 같이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으나 그날만큼은 어째선지 애써 웃는 듯하다는 인상을 느꼈다.
‘운동하게?’
‘어, 뭐……, 그냥.’
숙소에 가려 챙겨들었던 짐가방을 털썩 내려놓은 우영이 쭈뼛쭈뼛 다가가자 산은 흔쾌히 제 옆의 벤치프레스 머신을 가리켰다. 잠깐 앉아, 스트레칭 도와줄게. 얼떨결에 다부진 손길에 제 몸을 맡기게 된 우영은 그가 이끄는 대로 팔다리를 움직이며 눈으로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활동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저보다 어린 티가 많이 났던 것 같은데, 꾸준히 운동을 한 탓인지 몰라보게 살이 내린 얼굴은 특유의 굵직한 골격이 그새 더욱 도드라져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래서 부쩍 어른스러워 보였나……. 뚫어져라 머무는 시선을 느낀 산이 힐끔 그와 눈을 마주치곤 물었다.
‘뭐 묻었어?’
‘어?’
‘계속 보고 있길래.’
그러며 이제는 제가 더 뚫어져라 쳐다봐오는 산에게서 떼어낸 시선을 황급히 바닥으로 처박은 우영이 물었다.
‘안 힘들어?’
그러자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굽힌 채 앉아있던 산이 바닥을 짚고 있던 손으로 이번에는 우영의 허벅지를 마사지하듯 만져주며 되물었다. 뭐가?
‘그냥……, 운동하는 거.’
‘……운동하는 거 안 힘드냐고?’
우영은 정말 겨우 그게 궁금하냐는 듯 올려다보는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이내 다시 피해버렸다. 피식 작은 웃음소리를 낸 산이 쥐고 있던 허벅지를 지지대 삼아 꾸욱 힘주어 누르며 일어섰다. 그리곤 다시금 제가 앉아있던 벤치프레스 머신 위에 우영과 마주 보고 앉으며 말을 이었다. 힘들지, 왜 안 힘들어. 모르긴 몰라도 절대 운동을 말하는 눈치는 아니라 입을 다문 우영이 가만히 이어질 그의 말을 기다렸다.
‘내가 너무 부족했나……, 이러다가 아예 안 하는 거 아닌가 걱정도 되고.’
‘……컴백?’
‘그럼, 너 컴백 얘기한 거 아니야?’
‘…….’
‘근데 뭐, 사실 데뷔도 그랬으니까.’
‘……?’
‘넌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나는, 음……. 연습을 하면서도 막, 그런 거 있잖아. 열심히 하고 있다가도 갑자기, 근데 내가 데뷔를 할 수 있기는 한 건가……? 언제까지 연습만 해야 되지? 이러다가 그냥 군대나 가면 어떡하지, 맨날 그랬거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근데 그걸 티를 내버리니까 더 힘들더라고. 어제랑 똑같이 하고 있으면서도 괜히 더 못 하는 것처럼 보이고……, 뭐 아무튼. 그래서 티를 잘 안 냈지, 그냥 될 거라고 믿고.’
근데 그게 진짜 됐잖아, 지금 우릴 보라는 듯 으쓱거리는 어깨를 보며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을 터뜨린 우영이 맞장구를 쳤다. 맞네, 진짜 됐네.
‘그래서, 그냥 티 안 내는 거야 지금도. 컴백은 언제 하고, 이래서 효도는 언제 하나 싶은데……. 그냥, 내 할 일 하면서 기다리면 다 되게 돼있더라고.’
‘……그래서, 너 할 일이 운동이냐?’
‘아, 연습도 하지 당연히―. 아유, 괜히 또 부끄러우니까 틱틱거리는 거 봐라. 너 지금 속으로 나 멋있다 생각했지?’
‘뭐래, 완전 오글거린다 생각했거든.’
‘거짓말, 맞으면서. 너 지금 딱 팬들이 나 볼 때 눈이었거든.’
‘아, 뭐래 진짜―.’
발끈하면서도 자꾸만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고 있던 우영은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민 산이 꼭 마치 팬사인회장에서 만난 팬들에게 하듯 존댓말까지 써가며 놀려대는 통에 결국 와하하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산이 기왕 너 하는 거 저도 한번 해보겠다던 우영의 개인 트레이너를 자처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연습을 마치면 매일같이 산과 함께 헬스장으로 향하던 우영을 두고 멤버들은 며칠이나 가나 보자며 내기를 하기도 했고, 날이 갈수록 어째 운동보다는 체중 감량에 더 재미를 붙이는가 싶던 우영은 기어이 14kg 감량이라는 꽤나 자랑스러운 결과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벌써 일곱 번째 컴백 무대의 리허설을 앞둔 두 사람은 각자 이름표를 몸에 맨 채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서있다. 늘 보던 장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선 멤버들 사이에서 우영은 어느덧 저보다 반 뼘은 더 자란 산을 올려다보았다. 너 키 자꾸 커? 오늘 굽이 좀 높아. 재수 없어, 너 진짜. 굽이 높은 거라니까. 됐어, 손 놔. 왜 또 심술이야. 놓으라 했다. 알았어, 알았어. 고분고분 놓아주는가 싶더니 냉큼 돌아서려는 우영을 홱 잡아당긴 산이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몸을 꽉 끌어안아 제 품에 가두었다. 아, 최사안! 스읍, 최산 말고 산이. 그러며 다가오는 카메라를 향해 어느새 다시 맞잡은 우영의 손을 흔들어 보인다.
“안녕하세요, 디자이어 우영입니다―.”
“아, 내 인사를 왜 네가 해.”
“그럼 너가 다시 해, 자.”
“흐흥, 싫어. 너 해, 인사.”
“안녕하…….”
“안녕하세요, 얘는 디자이어 산이래요―.”
그리곤 절 돌아보며 씩 웃는 우영의 아랫배를 꼭 끌어안은 채 그의 뒤통수를 쓰다듬어준 산이 푸스스 웃음을 터뜨리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디자이어 우산입니다―.
몇 달 동안 감감무소식이다 이렇게 합작으로 불쑥 인사를 드리게 되어 송구스럽지만, 그래도 모처럼의 낫웡 합작인데 많은 낫웡러 분들과 꼭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주최해 주신 합작주님께 정말 고생 많으셨고, 또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고, 더불어 염치없이 올린 숟가락에 불과한 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번 합작을 기회로 저는 비록 보이지 않는 곳에 있지만 계속 낫웡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또한 이번 합작을 계기로 낫웡하시는 분들이 조금이나마 활력을 얻으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늘 잘 보고 있어요, 여러분. 앞으로도 오래오래 낫웡 잘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