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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앤 쇼, 동경생활백서

대깨

    0. 레이의 본명은 산, 쇼의 본명은 우영. 레이와 쇼는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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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레이와 쇼는 각각 이제 막 3년이 된 밴드 ‘도쿄 세카츠’의 베이스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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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밴드 초창기 도쿄 시내를 돌아다니며 하루에 한 번 버스킹도 겨우 하곤 했던 저희는 어느덧 시부야 교차로 근처의 한 라이브 카페에서 정기공연을, 그것도 주말 피크타임을 책임지는 간판이 되었지만 여전히 가난합니다. 다섯이 나누어내는데도 만만찮은 합주실 사용료에다 레이와 쇼는 신오쿠보의 둘이 함께 사는 아파트 임대료까지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을 부담해야 하니 한 달 생활비가 빠듯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레이는 긴자에 있는 한 헤어숍의 코디네이터로, 쇼는 아키하바라 요시노야의 파트 타이머로 부업을 시작한 지도 벌써 한 해가 다 되어갑니다. 하루 온종일 독한 냄새가 나는 미용약에 덤으로 쫓아온 두통약까지 달고 살게 된 레이도, 극한의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견디며 일 년 새 몰라보게 살이 빠져버린 쇼도. 다들 어째서 그렇게 열심인 거야, 묻고 싶겠지만 좀처럼 답해주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 이야기가, 어쩌면 그에 대한 썩 괜찮은 답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0. 쇼를 알기 훨씬 전 처음 만났던 레이는 지금 지내고 있는 도쿄와는 멀리 떨어진, 제가 살던 섬마을에서는 보기 드문 외국인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왔다던 아홉 살 남자애는 전학 온 첫날부터 유창한 일본어로 동급생 아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심지어는 청소시간에도 찾아와 말을 거는 아이들에게 레이는 일본인 새아버지를 따라 일본에 왔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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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레이의 새아버지, 그러니까 소스케 아저씨는 등대지기 코지 할아버지의 딱 하나 있는 아들이었는데, 유학 보낸 아들놈이 올해도 돌아오지 않을 모양이라며 해마다 늘 성이 나 계시던 할아버지는 무려 15년 만에 돌아온 아저씨를 무척 반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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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다만 레이는, 외국인 며느리와 함께 온 외국인 손자는 끝내 유골이 되어버리신 할아버지께 마저도 환영받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코지 할아버지의 유골함을 모시던 날 저는 신사 건너편 길목에 서있는 레이를 보았습니다. 바로 옆에 주저앉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열한 살 남자애는 다소 무서울 만큼 무표정한 얼굴로 뚫어져라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레이는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를 향해 무어라 말하는 듯 입술을 달싹였습니다. 거리가 멀어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울지 마’라든가, 뭐 아무튼 그녀를 위로하는 말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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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중학생이 되면서 레이는 다행히 또래 친구들은 물론 마을 어른들과도 곧잘 어울리는 듯 보였습니다. 단지 늘 밝은 얼굴로 코지 할아버지의 자전거를 몰고 다니던 열네 살 남자애는 좀처럼 우는 법이 없었는데, 소스케 아저씨를 싣고 나간 고기잡이배가 며칠이 지나도록 소식 한 통 없다 텅 빈 채 파도에 밀려왔을 때도 눈물은커녕 슬퍼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틀림없이 사이좋은 부자지간이었는데,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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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그해 여름, 방학을 맞아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났던 레이가 개학을 고작 하루 앞둔 날에야 돌아왔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를 보러 한국에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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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열일곱 여름, 레이의 가장 친한 친구라던 한국인 남자애가 찾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일본 여행을 왔다 들렀다며, 이름은 우영이라고 했습니다. 낯선 발음이었습니다.
    뱃머리에서 내린 그 애가 발을 삐끗해 넘어지려던 걸 눈 깜짝할 새 이미 달려가있던 레이가 잡아주었습니다. 그리곤 많지도 않은 짐을 제가 다 뺏어들더니 활짝 웃어 보이는 그 애를 끌어안은 채 울었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입니다. 저로서도 처음 본 눈물이었으나 그 애는 익숙한 듯 레이를 달래주었습니다. 훌쩍 커버린 서로를 조금도 어색해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우욘, 이라고 해야 할까요. 마을 사람들 모두 어려워하던 그 애 이름을 레이는 기다렸다는 듯 ‘산’이라고 고쳐주었습니다. 그 애가 레이를 부르는 이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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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성년이 된 레이가 오사카로 떠나기 전, 코지 할아버지의 유골을 모셔둔 신사 서까래에는 그 언젠가 소스케 아저씨 대신 실려온 그물이 묶여있었습니다. 레이의 어머니께서 결국 목을 매신 겁니다. 신성한 곳을 욕보였다며 마을 사람들 중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틀림없이 사이좋은 이웃지간이었는데,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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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도쿄의 대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저는 방학 때도 도쿄에 남아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코엔지 근처 한 피아노 교습소의 스케줄을 관리하는 일이었는데, 보고 싶다며 전화 주시던 부모님을 저도 무척이나 뵙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고향이 그립지는 않았습니다. 빈 집이 되어버렸으니 안을 다 허물어 마을 창고로 쓰고 있다는 코지 할아버지 댁을 도저히 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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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공교롭게도 몇 년 뒤 오사카를 여행하던 중 다시 만난 레이는 그때 그 한국인 친구와 함께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아직은 ‘산’이라 불리고 있던, 오늘날의 ‘쇼’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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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도톤보리의 한 이자카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던 쇼는 유학을 핑계로 일본에 왔으나 대학은 다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레이 역시 난바 유니클로의 파트 타이머로 일하고 있었는데, 둘은 돈이 조금 더 모이면 함께 도쿄에 갈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밴드를 결성하겠다나 뭐라나, 퍽 낭만적인 소리였으나 역시 경치 좋은 도톤보리 노상에서 맥주나 마시며 할법한 얘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 나름대로는 제법 진지한 둘을 향해 저는 예의상으로나마 그것참 멋지다 대단하네, 그렇게 말해주었습니다. 그저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보는 일이겠거니, 웃어넘기고 말았습니다.
    괜찮다는데도 한사코 바래다주겠다 고집을 부리기에 결국 셋이 같이 료칸으로 돌아가던 길,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아 멀쩡한 레이의 부축을 받으며 비틀비틀 걷고 있던 쇼가 지나는 행인이 없어질 즈음부터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제이팝도 잘 듣지 않던 저로선 생소할 수밖에 없는 한국 노래였는데, 다만 낯선 언어로 노래하는 그 목소리가 듣기 좋아 귀를 기울이게 됐습니다.
    인적 드문 골목길,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만 의지한 채 걷고 있던 그 밤과 어울리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러자 한참을 말이 없던 레이가 여기서부턴 혼자 가지 않겠냐 물어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레이는 저를 바래다주겠다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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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여행을 마치고 도쿄로 돌아온 저는 어째선지 차마 물어볼 수 없었던 레이의 연락처는 계속 모르는 채로 대신에 어떻게 알아낸 건지 제 SNS 계정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온 쇼와 자주 연락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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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일본어와 한국어 태그를 함께 달아놓은 게시물이 무려 700여 개나 되는 쇼의 피드를 샅샅이 뒤져 겨우 레이의 흔적을 찾을 수는 있었으나, 게시물 하나 없이 텅 빈 계정에는 팔로잉과 팔로워 목록 어느 걸 클릭해도 쇼의 아이디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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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쇼에게서 ‘우리 도쿄에 가!’라는 메시지를 받은 지 정확히 일주일 만에, 정말로 레이와 쇼가 도쿄에 왔습니다. 한인촌이 있는 신오쿠보에 아파트를 얻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부야와 하라주쿠에서 각각 기타와 드럼 멤버를 구했다며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대체 왜 그랬던 건지는 저도 아직 의문이지만, 마침 교습소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있던 제가 건반은? 하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도쿄 세카츠’, 한국어로는 ‘동경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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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레이와 쇼는 요즘도 서로를 한국 이름으로 부릅니다. 쇼는 그래서 아직까지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헷갈릴 때가 많다며 종종 불평을 하곤 했는데, 레이의 서운해하는 눈치에도 아랑곳 않고 새로 지어온 이름이 바로 지금의 ‘쇼’였습니다.
    쇼가 말하길, 그날 잔뜩 토라져 합주실을 나섰던 레이는 함께 아파트로 돌아가는 내내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뜬금없는 일에 이상한 고집을 부리곤 하는 레이를 어떻게 달래줬냐 물으니 새 이름에 담긴 뜻을 알려줬다고 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비밀이라며 알려주지 않던 ‘쇼’는 영어로 ‘숲’을 의미하는 시어였습니다. ‘레이’는 영어로 ‘햇살’을 의미하는 단어니 둘의 이름을 합치면 햇살 가득한 숲, 이 되는 셈입니다. 친구 사이치곤 퍽 간지러운 뜻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실 레이와 쇼가 친구라는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팬클럽, 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매주 저희 공연을 보러 오는 여고생들끼리는 심지어 둘을 주인공으로 한 *SS 파일까지 돌려읽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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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가 뭐 대단한 아이돌 밴드는 아닙니다만,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0. ‘도쿄 세카츠’는 애초에 밴드 보컬을 꿈꾸던 쇼 혼자만의 계획이었습니다. 밴드 음악은커녕 다룰 줄 아는 악기 하나 없던 레이가 오늘날 베이스 기타를 수준급으로 연주하게 되기까지, 미련할 정도로 독하게 연습했던 이유는 순전히 쇼와 함께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아마 쇼와 함께할 수만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레이는 해내고야 말 겁니다. 다 찢어진 손끝 살점을 순간접착제로 붙여가면서까지 기타 줄을 뜯던 악바리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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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레이는 겨우 8년을 살았을 뿐인 한국을 온통 쇼와의 추억들로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쇼가 가장 좋아하는 불고기, 쇼가 먹고 울었던 김치, 쇼네 가족과 함께 갔던 남산, 쇼와 나눠먹던 달고나, 유치원 재롱잔치 때 쇼와 같이 입었던 한복……. 말하자면 끝도 없을뿐더러 이미 예상하셨겠지만 일본에 대한 기억이라고 딱히 다를 것도 없습니다. 쇼가 없던 섬마을, 쇼를 다시 만난 오사카, 쇼의 꿈을 이루게 된 도쿄……. 쇼를 뺀 레이는 없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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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레이는 쇼가 보는 앞에서만 웁니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예전에는 그저 눈물이 없는 편인 줄로만 알았는데, 별거 아닌 일로도 툭하면 울컥해 눈물을 글썽거리는 요즘을 보고 있으면 아주 울보가 따로 없습니다. 중요한 점은, 쇼가 보지 않는 데선 절대 울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쇼가 없을 땐 오히려 예전보다 메마른 듯 잘 웃지도 않는 게 어쩌면 쇼더러 저 좀 안아달라고 일부러 우는 걸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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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처음 본 사람도 한 시간 만에 질려 하는 쇼의 애교를 레이는 매일 한결같이 귀여워합니다. 정작 레이에게는 툴툴거리거나 빽빽 소리 지를 때가 대부분인데도, 레이는 쇼를 꼭 앙칼진 집고양이 대하듯 너그러운 눈으로 봅니다.

 


    그렇다고 비단 레이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또 없습니다. 제가 쇼였다면 필시 주변인들을 붙잡고 레이가 나를 좋아하는 걸까나, 물어봤을 겁니다. 아니, 물어볼 필요도 없이 이미 알고 있었을 겁니다. 어쩔 땐 쇼가 정말 바보인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0. 쇼는 식당에 가면 늘 레이 옆에만 앉으려고 합니다. 말로는 편식이 심한 레이를 위해서라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레이가 쇼보다 5cm는 더 클 겁니다. 2년도 넘게 다니고 있는 짐에서 매일 두 시간씩 운동하는 걸 모르는 회원이 없다는 레이가 당연히 쇼보다 몸도 더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애인이라면 모를까, 저렇게 건장한 남자의 편식을 걱정하는 친구는 본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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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레이와 쇼의 ‘도쿄 세카츠’는 오늘도 순탄합니다. 레이에게 줄 러브레터를 가져온 여고생을 앉혀놓고 이런 거 쓰고 있을 시간에 필기 한 자라도 더 하라며 잔소리를 하던 쇼가 너나 잘 하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그러게 왜 어린애랑 싸우고 그랬냐며 괜한 말을 얹은 레이가 단단히 토라져버린 쇼를 달래느라 저희 가게의 디저트를 몽땅 계산해가긴 했지만. 뭐 아무튼 이만하면 그럭저럭 평화로운 날에 속하니, 레이와 쇼의 동경 생활은 오늘도 순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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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de Story’의 준말,

주로 2차 창작물을 가리키는 은어.

낫웡 첫 연성을 이렇게 멋진 합작으로 남길 수 있어 영광입니다.

주최해 주신 합작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또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상으로 레이 앤 쇼, 동경 생활 백서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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